균형 잡힌 삶은 몸과 마음의 안정감을 준다.
맨발 걷기가 유행이다. 땅을 맨발로 밟으면 발바닥이 지압되는 효과가 있어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몸의 장기들이 발바닥과 연결되어 있다는 한의학적 발상에 기반하고 있는데, 맨발 걷기로 온갖 병을 치유했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맨발 걷기의 효능이 ‘발 지압’에 있다면 지압 신발을 신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 다양한 제품 중 유독 지압 면이 강력해 보이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강가에서나 볼 수 있는 자갈돌을 신발 밑창에 접착시킨 형태로, 보기만 해도 발바닥에 통증이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찌릿찌릿함에 이끌려 한 켤레를 주문했다.
며칠 뒤 도착한 지압 신발의 자태는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 공격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자갈돌 위에 선뜻 올라서기가 무서웠지만, 오장육부를 자극할 생각에 꾹 참고 신발을 신었다. 예상과 거의 비슷한 통증이 발바닥에 전해졌다. 시원함인지 고통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으나 맨발 걷기를 체험한다는 생각에 꾸준히 신기로 다짐했다.
딱 일주일 뒤였다. 발바닥에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지압 신발을 신는 동안 느껴지는 통증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신발을 벗고 나서도 왼쪽 발바닥에 묘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밤이 되자 왼쪽 발이 붓고 고통이 심해져 바닥에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팠다. 걸음걸이의 균형이 깨져버렸다. 오장육부 한번 자극해 보겠다고 왼쪽 발을 잃었다. 다음날 정형외과에서 진단해 준 병명은 ‘족저근막염’이었다. ‘족저근막염’…. 병명을 되뇌는 데 묘하게 입에 잘 붙는다.
여하튼, 소염제와 진통제가 들어간 약을 처방받고 푹 쉬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들어야 했다. 왼쪽 발을 한 걸음도 디딜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목발을 샀다. 어릴 때도 해보지 않은 목발을 사십이 다 돼서 써보게 되다니. 목발을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목발 양쪽과 오른발은 마치 삼각편대를 이루듯 번갈아 가며 내 체중을 지탱해 주었다. 그럴수록 양쪽 겨드랑이는 심하게 화끈거렸다.
‘족저근막염’을 얻고 한쪽 발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몸의 균형이 깨지고 일상이 멈췄다. 그렇다. 뭐든 균형이 중요한 법이다. 균형이 깨지고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무슨 탈이 나도 나는 법이다.
삶의 균형이 깨지는 상황은 일이 잘 풀리는 때에도 발생한다. ‘잘될 때 바짝 정신 차려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잘될 때 노를 저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과몰입하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인생을 갈아 넣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과부하가 걸려 고장이 나버리는 기계처럼 어딘가 고장이 난다. 삶의 균형이 깨져버리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첫 책의 출간계약을 마치고 들뜬 마음에, 출판사에서 초고 원고의 검토를 마치기도 전에 자체 퇴고를 시작했다. 그것도 쉬지 않고. 정말 자지 않았다. 쉼 없이 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출간 과정을 떠올리며 고쳐 쓰기를 반복했다. 며칠 쪽잠을 자며 과몰입을 한 결과, 눈에 핏줄이 터져버렸다. 6살 딸아이가 아빠가 괴물이 됐다며 놀려댔다. 처음에는 걱정해 주던 아내도 핏줄이 터져버린 내 눈을 보며,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뭐든 적당히 하라.’는 말은 현실에 안주하라는 뜻 같지만, 적당히 해야 오래 할 수 있고 오래 해야 성공할 수 있다. 꾸준히 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니 말이다.
지금 무언가에 푹 빠져 있다면 자신을 한번 점검해봐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과몰입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말이다. 몸과 마음에 이상 신호가 찾아오기 전에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나도 쉼이 필요해. 나도 쉼이 필요해.’ 아이가 즐겨 부르는 동요의 가사이다. 그 어린아이에게도 쉼이 필요하다고 하니, 머릿속이 더 복잡한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뭐든 과함을 요구하는 시대다. 그게 아니면 누가 바라지 않는데도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세상에는 조금 천천히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일이 많다. 한번 생각해 보라. 별다른 다음 일정이 없는데도 지금 하는 일을 마감이 있는 것처럼 몰아치지는 않는지를.
지금도 너무 열심히 하고 있다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느리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 느리게 걷고, 더 느리게 생각하고, 심지어 더 느리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를 줄 알아야 한다. 운전 중 신호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정차하는 순간을 답답해할 필요 없다. 한 번의 운행 중 무수하게 마주할 신호의 하나일 뿐이고, 그곳에 정차했기 때문에 다음 신호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 되든 잘 안되든 당신의 생각보다 천천히 해도 된다. 그래야 균형 있게 더 오래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