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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밤 Jan 05. 2024

그 개미의 사정

개미 한 마리가 열심히 건물 벽을 오릅니다. 오래된 벽은 작은 타일을 이어 붙인 구조로, 개미는 그 타일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따라 오릅니다.

‘저 개미는 어디로 가는 걸까?’

건물 옥상에 개미집이 일을 리도 없는데 개미는 자꾸만 위로 향합니다. 아마도 길을 잃어 타일 사이에 난 좁은 길을 생각 없이 오르는 듯합니다. 그런 개미를 보며 잠시 공상에 빠져봅니다.

그 개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알 수 없는 호르몬에 이끌려 땅 속으로 먹이를 나르고 또 날랐습니다. 그러던 중 늘 가던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정해진 길을 벗어나 건물 벽 타일 사이에 난 길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건물 옥상에 다다른 개미는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보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몽롱한 정신으로 먹이만 찾아다녔던 지난날의 자신은 ‘죽은 개미’였다고 말입니다. 넓은 세상을 한 번 본 개미는 더 이상 먹이를 찾아다니지도, 그 먹이를 땅속으로 나르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자유의지로 죽을 때까지 그 넓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밟아보기 위해 여정을 떠납니다.


공상을 끝내고 벽을 오르는 개미를 다시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응원하기 시작합니다.

‘꼭 건물 옥상까지 오르기를,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한 번이라도 눈에 담아보기를.’

물론, 지금 개미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한 발 내딛기를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개미에게 투영하자, 개미의 ‘위기상황’이 하나의 ‘아름다운 도전’으로 여겨집니다.

늘 같은 길을 가고, 늘 같은 직장으로 출근하고, 늘 하던 취미를 즐기는 일이 마치 ‘개미가 평생 먹이를 찾아다니는 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어 붙인 타일 사이에 좁게 난 길을 오르는 개미의 도전을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앞으로 한 걸음 내딛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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