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게 쏟아붓는 빗줄기에 자동차 와이퍼를 작동시킵니다. 그러자 차 앞유리에 반원을 그리며 오르는 와이퍼와 함께 듣기 불편한 소음이 전해집니다.
‘뽀드득, 뽀드득.’
이 놈에 와이퍼 소리는 도무지 잡히질 않습니다. 여러 종류의 제품으로 교체를 해봐도 얼마 안 가 불편한 소음이 다시 시작됩니다. 관련 영상과 전문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찾아봐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뽀드득, 뽀드득’하는 소리에 귀를 적응시키는 게 더 빠를 듯합니다.
그러다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하러 들른 집 앞 작은 카센터에서 이 난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사장님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으로 말수가 적었습니다. 타이어 상태를 점검해 달라는 나의 요청에 사장님은 말없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타이어 점검을 마친 사장님이 갑자기 와이퍼를 작동시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여지없이 ‘뽀드득’하고 와이퍼가 시끄럽게 신경질을 냅니다. 사장님은 저에게 가타부타 말도 없이 차 와이퍼의 앞부분이 아닌 차량과 연결된 기둥 부분을 손으로 잡고는 이리저리 구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와이퍼 마사지는 몇 분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모든 의식을 마친 사장님은 시크한 표정으로 와이퍼를 다시 작동시켰습니다. 그러자, 수개 월을 괴롭히던 ‘뽀드득’ 소리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너무 놀라 사장님의 옷깃을 붙잡고 그 비법을 묻자, 사장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한마디 합니다.
“와이퍼는 기둥을 바로 잡아야 하는 법이죠.”
맞습니다. 그동안 ‘뽀드득’ 소리가 차 앞유리와 맞닿은 부분에서 났기에, 와이퍼의 앞쪽 부분만 계속 점검했었던 겁니다. 정작 소리의 원인은 '차 앞유리의 기울기'와 '와이퍼 기둥의 기울기'가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말이죠.
우리는 때로 작은 문제 하나를 바로 잡고는 일이 술술 풀리기를 바랍니다. 물론 맞닥뜨리는 문제를 그때그때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틀이 어긋나 있다면 문제라고 여기는 그 지점 자체를 잘못짚을 수가 있습니다. 마치 와이퍼 소리의 근원을 전혀 다른 곳에서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왠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당초 계획상의 큰 틀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소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 보다 와이퍼의 기둥이 휘지는 않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비가 옵니다. 그래서 차의 와이퍼를 켭니다. 이제 ‘뽀드득’ 소리는 나지 않습니다. 왠지 모르게 김연우의 ‘이별택시’의 가사가 떠오르네요.
‘와이퍼는 뽀드득 신경질을 내는데’
지금 막 연인과 이별한 한 남자가 빗속을 헤치고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마침 와이퍼가 ‘뽀드득’ 신경질을 내네요. 택시 기사님이 와이퍼 마사지 기술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 남자는 ‘소리 없이 말끔해지는 유리창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 와이퍼 마사지도 기술자가 해야 가능한 일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