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다. 인간적으로 무언가를 해볼 만한 구실을 찾기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거의 한 달 동안 텃밭에 가지 못했다. 잡초가 무성하다 못해 사람 잡을 기세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맹랑하게 나를 노려본다.
그래도 비가 흠뻑 온 뒤, 자연의 힘을 빌려 잡초를 뽑으니 한결 수월했다, 고추나무도 시원한지 헤헤거리며 웃는다. ‘얘들아, 잡초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옛 어르신들은 말씀하셨어. “머리 벗어질 정도의 무더위가 털썩 주저앉아 엉덩이를 들이민다. 하지만 삼베 적삼 사이로 바람이 살랑살랑 스며들기 시작하면 지들도 별거 있간디!” 텃밭의 잡초를 없앴더니 농작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드는 것 같아 내 마음까지 후련했다.
내가 이렇게 시원한데, 농작물 너희는 얼마나 더 시원할까? 고추 토마토 가지도 시원하게 불어주는 늦바람에 훨훨 날아갈 듯 보였다.
제때 잡초를 뽑아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숨이 턱턱 막힐 듯, 뜨거운 날엔, 그저 가지 오이 고추와 방울토마토만 따서 작렬한 태양을 피해 도망치듯 나왔다. 수확물만 챙기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인간이 얼마나 얄미웠을까? 얼마나 욕심쟁이처럼 보였을까? 제때 물 한 바가지 쏟아부어준 적도 없이 빼앗듯 내빼는 행동이 괘씸했을 것이다.
그래도 며칠간 소복이 내렸던 비 덕분에 잡초를 뽑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니 일이 한결 부드러웠다. 땡볕에 잡초를 뽑았다면…. 먼지는 풀풀 날리고, 몸까지 빨려 들어갈 정도로 깊게 뿌리내린 너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마 열병이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 견뎌내고 인간이 하는 대로 지켜봐 준 너! 참 고맙다. 그리고 많이 미안해.
어쩌면 잡초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농부님들 힘들다고 넋 놓고 있을 때, 나는 나대로 땅을 넓혀 나갔지요. 그런데 이제 좀 선선해지고 살만 하니까, 내 땅을 빼앗아 가려고 안달하시는군요. 안 되지요? 그러면 안 됩니다. 나도 나름대로 다 계획하고 일구어낸 땅덩이요.’ 맹랑하게 쏘아보는 잡초의 눈초리가 목덜미에 내려앉은 듯 스멀거렸다. 우리도 무더운 날씨에 마음 몸 망가지면서까지 너를 뽑아낼 수는 없었어. 우리의 게으른 행동이 상처가 됐다면 용서해 줘. 지금이라도 농작물 아랫도리에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니, 채소들의 얼굴이 활짝 폈구나.
잡초를 다 뽑고 나니 고추나무 밑동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잎사귀 사이로 바람이 살살 기어들었다. 그 바람이 스치자 고춧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살랑거렸다. “헤헤, 이제야 좀 시원해서 살만하구먼요.” 그제야 나도 마음 놓고 허리를 쭈욱 펴서 앞산을 올려다봤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숲의 물결로 온 산이 춤추는 듯했다. 잡초를 뽑는 일은 고된데, 바람이 스며드는 순간엔 내 마음도 환해진다.
사실 우리는 잡초한테도 “이곳은 네 영역이 아니니까 침범하지 마라.”라는 신호를 줬어야만 했다. 아무 말도, 아무 몸짓도 없으니, 잡초는 마음 놓고 자기 땅인 양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나름 계획도 세우고 세를 확장해 놓은 땅이었는데,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빼앗다니! 잡초 입장에서 보면 참 불공평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은 생명체는 마구 없애도 되는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잡초도, 농작물도, 인간도 결국 같은 흙 위에 기대어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잠시 자리를 나누어 쓰는 공동체다. 오늘 내가 뽑은 잡초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람 속으로 흙 속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거들겠지. 삶이란 어쩌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인간도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가? 그래서 우린 자주 ‘잡초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잡초는 생명력이 강하고 회복력이 높다. 누가 밟아도 꿋꿋하게 일어나고 누가 베거나 싹둑 잘라서 뽑아내 버리지 않는 이상 의연하게 다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난다.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틈새를 공략하면서 생명을 유지해 가는 나름의 전략이 있다.
잡초는 햇빛, 수분, 양분을 작물과 경쟁해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리고 해충이나 병균이 번식하기 좋은 공간을 제공한다. 게다가 잡초를 뽑아내는 데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질기게 뿌리내린 잡초 덕에 홍수나 폭설 산사태가 일어날 때, 흙도 유실이 덜 된다. 그리고 촉촉한 땅을 유지해 줘 각종 미생물이 살아날 수 있게 도와준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잡초는 자연에게 이로운 일도 꽤 많이 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항상 ‘잡초는 뽑아버려야 한다.’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억울할까.
겉보기엔 귀찮고 쓸모없는 식물 같지만, 잡초는 자연이 자유롭게 순환하도록 도와준다. 결국 인간도 잡초와 함께 더불어 살 수밖에….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9198#n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