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통의 월간지에 실린 내 글, 덕분에 계속 쓰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내 인생의 롤 모델이다. 어느 봄날, 문득 선생님께 전화하고 싶었다. 선생님을 불쑥 찾아갈 수도 없어서 그저 전화로 안부만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네 글, 책과 작가에 관한 이야기가 <경향 잡지>에 실려서 내가 지금 읽고 있다. 너도 알고 있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부인했다. “선생님, 저는 아니에요. 저처럼 황혼육아를 주제로 글을 쓰고 출간한 작가들이 많아요.”
“아니야. 최○○ 작가 이름이 정확히 나와 있어. 출간 책에 관한 것도, 브런치 북에 관한 것도 자세히 쓰여 있어. 우리 며느리가 ‘어머님, 이 책에 나온 글이 꼭 어머님 제자분 같아요.” 하며 책을 가져다주었어.”라고 말씀하셨다.
내 책과 나에 대한 글이 블로그나 브런치 스토리, Instagram 같은 SNS가 아니라, 120년 전통의 월간지에 실렸다니! 그것도 제일 존경하는 은사님을 통해 이 소식을 듣게 될 줄이야!
선생님이 시끌벅적하니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무례하게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이라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 “확대해서 잘 봐라.” 하시며 사진을 보내셨다. 선생님께 다시 전화할 상황이 아니고 궁금해서 ChatGPT에게 물어봤다. “<경향 잡지> 주소와 전화번호 알고 싶어.” 그렇게 전화번호와 한국 천주교교회 간행물을 발행하는 곳이라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 작가님이 어떤 경로로 내 글을 접했는지 모른다. 최근에 출간한 책일 수도, 브런치 스토리에 쓴 글일 수도 있다.
글은 원래 그 순간의 상황 감정 관계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2023년 10월에 발행했던 브런치 북 표지 사진이 선명하게 실려서 더욱 놀랐다.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본 것 같은 글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고개가 저절로 숙어지고 글을 읽는데 울컥했다. 눈이 뻑뻑해지며 시야가 흐려졌지만, 내 마음이 기쁨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렇게 나와는 아무 관계도 인연도 없는 사람이 내 글과 책을 정성껏 소개해 준 것은 처음이었다. 글 한 꼭지 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분한테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대표 전화로 여러 절차 끝에 편집장님과 통화를 했다. “김○○ 작가님이 2026년 1월 호에 < 첫걸음을 떼면.>라는 글에 제 글과 책, 그리고 저를 정말 훈훈하게 소개해 주셔서 인사하고 싶어요.”
내 이름을 밝히자 반갑게 응대해 주셨다. “아 브런치 북에 나온 최 ○○ 작가님이시군요.”
나는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제가 그 작가님께 감사 인사를 전해도 될까요? 그 잡지를 받아볼 수 있을까요?” 전화기 너머로 다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소를 알려주시면 책도 보내주고 그 작가님에게 메일을 전해주겠습니다.”
책을 읽고 아무 이해 관계 없이 서평을 써주는 작가님들도 많이 계신 줄 안다. SNS로는 많이 봐왔고 서로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감사 인사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120년 전통의 월간지에 내 이야기가 실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울림이었다.
만약 우리 은사님과 그 며느리가 이 책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내 이야기가 어떻게 담겼는지도 모른 채 지나갈 뻔했다.
이 인연은 어쩌면 이렇게 이어지려고 했던 것일까. “선생님, 소중한 인연 묻힐 뻔했는데. 선생님과 며느님 덕분에 작가님의 귀한 글이 제게로 왔어요.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소식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한테는 어떤 보석, 어떤 말씀보다도 더 큰 선물이고 응원이었다. 나도 앞으로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정성스러운 글을 써서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곧바로 작가님한테도 메일이 왔다.
“최○○ 작가님 안녕하세요? <경향 잡지>에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는 김○○ 작가입니다. (중략) … 작가님의 글을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고, 그 마음을 나누고 싶어 신년호 칼럼에 소개했습니다. 이렇게 작가님께서 직접 읽고 반가워하셨다니, 더할 나위 없이 보람 있고 감사합니다.”
브런치 스토리 플랫폼에서는 매년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바라며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나도 매년 브런치 북을 발행했다. 3년 전에 발행한 브런치 북을 읽고 글을 쓰신 거였구나! 그때는 1년에 한 권씩 브런치 북을 엮어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
꾸준히 손주와의 일상을 기록하고 콘텐츠로 바꿨기 때문에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작품을 준비할 땐 수없이 스스로 의심했다. ‘되지도 못할 것을 하면 뭐해? 내가 과연 될까? 괜한 짓 아닐까?’
그러나 오늘처럼 뜻밖의 선물을 받고 보니 알겠다. 특별하게 바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하다 보니 이런 좋은 선물도 받는구나. 나는 ‘꾸준히, 항상, 늘, 변함 없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 내가 조금씩 진화하고 성장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좋다. 이런 작은 실천이 결국 작년 11월에 책을 출간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모든 작품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음악 미술 문학 작품은 수많은 산고 끝에 태어난다.
출간 이후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작은딸 남매 하원만 돕던 일상이, 올해부턴 큰딸 삼 남매 등원시키려 일찍 나가니, 루틴이 완전히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의 글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이 번쩍 들어 올려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것 같다.
글쓰기 동아리 후배가 말했다.
“우리 ○○샘, 약간 잔 다르크 같지 않나요?”
나는 문득 생각했다. 잔 다르크의 상징은 뭐였지?
‘앞에서 길을 열어주는 사람?
확신하고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
열정적으로 판을 깔아주는 사람?’
그렇게 누군가의 등을 밀어주던 내가 오늘은 한 편의 글 덕분에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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