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취미 활동권리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기적이고, 너도 이기적이고~~~. 아니 다분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행동한다. 그것이 인지상정이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아주 가까운 내 주변에 진짜 이타적인 사람이 있다. 가끔 뉴스로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 그들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것이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다. *노인의 종류에는 No 人, 어르신, 액티브 시니어, 선배 know 人, 이렇게 네 종류의 노인이 있다고 한다. 꽤 설득력 있고 재미난 분류다. 나는 어떤 종류의 노인으로 살 것인가? 내가 생각해도 누가 봐도 나는 액티브 시니어이고 사실 액티브 시니어나 선배 know 人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인지적, 신체적, 사회적, 정신적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리 야무지게 액티브 시니어나 선배 know 人이 되고 싶다고 준비하고 외쳐도 대책이 없다. 게다가 삶의 질이 확 떨어져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내 의지와는 다르게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할 것이다. 솔직히 그런 삶을 원치 않는다. 원치 않는다고 일어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 닥칠 수도 있다.
한 후배는 내가 취미 부자라며 부러워한다. 취미 부자라는 말은 맞다. 내가 지금 하는 취미활동은 글쓰기 동아리 활동, 골프, 라인댄스이고 기타 레슨은 잠깐 쉬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악기 연주 하나는 다시 하고 싶다. 여러 가지 취미 활동에 입질은 하고 있지만 무엇 하나 똑 부러지게 하는 것이 없어서 늘 고민이다. 취미는 그저 취미일 뿐 한계를 넘어서기가 여전히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미가 업이 되는 사람도 봤다. 그런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들도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검증되었다. 취미 활동 중에서 골프는 상당히 까다로운 운동이고 도저히 교만해질 수 없는 운동이다. 게다가 돈, 시간, 건강, 친구까지 4박자가 맞아야 하니 사실 내 힘에 부친다. 그러나 재밌는 걸 어떡해! 무슨 일을 하든지 재미는 못 이긴다.
매년 2월쯤 골프 모임에서 연 부킹 신청자를 모집한다. 가입비, 연회비를 내고 매달 참석 가능한지 타진해서 가입해야만 한다. 심지어 나는 어떤 골프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 1년을 대기했다. 뽑는 인원이 워낙 적어 간단한 설문조사, 일종의 면접을 봤다. 구력이 몇 년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평균 타수는 얼마인지? 모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인지를 가늠하는 듯 기재하는 난이 있어서 나이와 평균 타수를 살짝 줄여서 적었다.
2022년은 둘째 딸이 육아 휴직이어서 그 한해가 나에게는 프리 타임, 황금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덜렁 두 개 골프 모임 연 부킹을 신청했다. 하나는 여고 동문 골프 모임이고 또 하나는 골프연습장 내 모임이었다. 두 개 연 부킹을 신청하고 40여만 원씩을 선납했다. 그땐 나도 프리하게 라운딩 갈 수 있어서 한껏 꿈에 부풀어 있었다.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바깥사돈이 삼 남매 돌보는 큰딸네와 이제 10개월 된 손자와 5살 손녀를 키우고 있는 작은딸. 그들에게 미안해서 뒤통수가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다행히 사돈어른이 손주 돌보는데 재미있다며 흡족해 하셔서 나의 자유로움은 더 달콤하고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바깥사돈이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1년 6개월 동안 삼 남매를 돌보시더니 허리가 아프다고 더 이상 오시지 못 한단다. 당장 그 화살은 친정어머니인 나에게 돌아왔다. 큰딸은 갑자기 학기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나니 멘붕 상태로 난감해하며 잠깐 프리한 친정어머니한테 부탁한다. 노는 일도 아니고 일해서 돈 벌겠다는데 딱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으면 부모와 자식 관계가 평생 원수지간이 될 수도 있어 난감했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고 딸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일단 승낙은 하고 나의 스케쥴표를 월 단위 주 단위로 그려서 딸과 사위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다른 것은 내가 다 조절할 수 있다. 다른 강연은 예약을 취소하거나 요일이나 시간을 조절해서 참여하면 된다. 그런데 한 달에 두 번 가는 골프 라운딩 보장 가능할까? 일단 돈을 냈고 한참 진행이 된 뒤여서 환불도 어려웠다. 그것은 나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다행히 여고 골프는 손주들 어린이집 등원 후라서 딸이 조퇴하면 되는데. 손주들이 아플 때가 가장 큰 문제였다. 골프연습장 연 부킹은 아침 6시 출발이라서 사위가 연차를 내야만 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처음에 계획을 타진할 때는 딸과 사위가 다 가능하다고 필요할 때 연차를 낼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드디어 바깥 운동하기 딱 좋은 9월이 되었다. 푸른 잔디에 가볍게 올라앉은 골프공을 시원하게 날려 보내면 10년 묵은 체증이 싸악 사라질 것 같았다. 이번에도 골프 라운딩 예약 때문에 먼저 사위에게 연차 낼 수 있는지? 물었다.
“김 서방, 9월 7일 골프 라운딩 있는데 연차 낼 수 있는가?”
“어머님~9월 7일은 추석 연휴 전이라 약간 힘들 것 같고요.^^
혹시 연휴 뒷날 붙여서 13일 정도에는 괜찮으신가요?
그날 쉬는 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젊은 사람 직장 생활하는데 힘들까 봐,
“그렇게 할게.”
사람이 똥 누러 갈 때 다르고 똥 누고 나서 다르다던데. 이기적인 나는 연회비로 거금을 내놓고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가 뭔가 결정할 때 빙빙 돌려 말하거나 밍기적거리면 딸들은 항상
“그러니까 엄마의 needs가 뭐예요?
빙빙 돌리지 마시고 엄마의 needs를 정확히 말하세요.”
라고 했던 말이 순간 딱 떠올랐다.
“김 서방? 내가 2022년 2월에 연 부킹을 신청한 거야.
매월 첫째 주 수요일에 고정된 날짜라서 9월 7일 연차 낼 수 있는지?
확인한 거야, 좀 그러네.”
“아~~그러시구나! 어머님! 그럼 9월 7일 비워볼게요. 하하”
이렇게 나의 needs를 정확히 말해서 나는 나의 취미 활동권리를 보장받고 웃음이 났다. 처음엔 사위도 연휴 전이라 연차내기 어려웠나보다 생각했는데 혹시 사위도 연휴 뒤에 하루 더 쉬는 것이 편했던 건가? 장모님은 아무 날이나 라운딩만 가시게 해주면 되는 줄 알았나 보다. 나중에 만나면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말해야겠다.
이렇게 워킹 맘 딸 손주 돌보며 자기 취미활동 권리를 따내려 아등바등하는 장모님도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손주를 가늘고 길게 보고 싶다. 그래서 지혜롭게 손주들 훈련시키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손주가 안아달라고 하면 소파에선 안아줄 수 있다며 소파로 얼른 가서 숨 막히도록 꼬옥 안아주며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들이 가끔 도움을 요청하면 도구를 사용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제안하고 같이 해본다. 손주를 돌보지만 그것에 매달리지 않고 나 하고 싶은 것 못해서 우울하게 보내는 삶은 싫다. 육체와 정신이 온전히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머리 쓰며 살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식과 부모 사이지만 서로 도움 되고 현명한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딸과 손주를 무척 사랑하지만, 나는 나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고 싶다.
*[100세 인간] ③ "어떤 노인으로 살 것인가?". 4가지 노인의 유형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