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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Jan 29. 2023

우리 집만의 명절 이야기(1)

손주들의 장기 자랑

  새해가 지나고 또 한 번의 명절 설이 다가왔다.

몇 년 전부터 치열하게 다녔던 귀성길에 합류하지 않으니 시간이 넉넉해졌다. 호기심 천국인 나는 새로운 즐길 거리를 찾아  4~5년 전부터 설날 세배 봉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해마다 아이디어가 엎 되어서 못 그리는 그림도 바늘귀만큼 발전되어 기분이 상큼하고 마냥 좋다.


        2022년 손주들에게 그려준 세배봉투, color pencil & brush pen.


    2022년 띠별 운세로 만든 딸, 사위, 우리 부부 세배봉투, color pencil & brush pen.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손주들, 딸, 사위들에게 그냥 기쁜 마음으로, 의례적으로 세뱃돈을 일방적으로 주기만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뱃돈도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되면 더 재밌고 색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동적,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서 받아갔으면 하는 할머니만의 욕심이 생겼다. 그 방법으로 장기자랑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번 설에는 이벤트로 장기자랑이 있다고 딸과 손주들에게 한 달 전부터 공지했다. 우리 이쁜 손주들, 할머니 만날 때마다 공연할 것에 언질도 주고, 연습 장면도 보여주고, 고민도 하니 서로 말할 거리가 있어서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하다. 할머니 만날 때마다 손주들 공연 작품이 수시로 바뀌고 나름 열심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요즘은 그림을 그릴 때도, 영어로 말할 때도, 글을 쓸 때도 특별한 스토리가 있으면 한결 풍성해지고 상상력도 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보고, 맛보고, 발표한 경험, 특히 성공 경험이 있다면 더 리얼리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도 어설프지만 포스터도 만들어 붙이니 story telling 할 거리가 더 많아서 손주들 기대도, 웃음도 더 증폭되었다.

        장기 자랑 포스터


  10살 손자는 피아노 연주, 리코더 연주한다고 미리부터 정하니 한결 편안해 보였다.

5살 손녀는 다른 관객들의 반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녀 특유의 내공으로 병원놀이도 보여 주고 인형으로 육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3살 손녀는 자기 집에서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더니 정작 발표 시간에는 도망쳐버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제일 걱정이 많은 7살 손자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어를 한다고 날마다 외우고, 두 번째 공연은 태권도 자세를 크게 외친다. 처음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혼자 큰 소리로 하니 어색하고 멋 적어서 큰 눈을 깜빡깜빡하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면서도 끝까지 다 마치고 엉엉 우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할머니도, 이모도 숨죽이며 함께 울었다. 엄마는 대단하다며 으스러지게 안아주고 감동하여 울었고 다시 한번만 더 보여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특히 우리 손주들 자주 만나지 못한 이모부 앞에서 장기 자랑을 하는 것은 더 힘들었을 거 같다.


  그렇게 몇 시간을 떠들썩하게 보내고, 손주들 윷놀이도 하고, 젠가 게임도 하고, 때론 티격태격 싸우다가 혼도 났다. 손주들도 이모부,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예쁜 세배봉투에 세뱃돈도 넉넉히 받고, 맛난 것도 먹었다. 그러고 나니 울먹이며 태권도 자세를 외쳤던 그 친구는 어느샌가 소파에 앉아 사촌동생을 돌보고 있는 이모부 팔짱을 슬그머니 끼고 있었다. 이런 모습 정말 인상적이었고 ‘아하 이런 그림도 그려지는구나! 이런 게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뿌듯하고 한없는 행복감이 밀려들어왔다.


  우리 손주들 이번 처음 시도한 장기자랑으로 심장이 쫄깃쫄깃하고 조금 더 커졌으리라 믿고 싶다. 제일 걱정 많았던 그 손자는 모든 게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엄마, 내년에는 장기자랑 뭐 할까?” 벌써 고민하고 갔다. 손주들과 함께한 이번 명절도 시끌벅적하니 엔도르핀이 팍팍 돌았고 정말 재미있고 신났었다. 내년 설에는 무엇으로 또 이렇게 원 없이 웃을 수 있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벌써 내년 설이 기다려진다.


壬寅年 새해 '띠별 운세'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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