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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Feb 28. 2023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나, 다니얼 블레이크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전부터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단지 한 노인이 공중으로 펄쩍 뛰는 포스터를 보고 저건 뭐지? 호기심이 생겼다. 이 영화는 2016년 개봉작, 그러니까 한 6년 이상 마음속에 품어왔던 작품이다.


  어느 여름날 아침 7 시, 아침부터 더워서 헐떡거리며 딸 집에 가는데 횡단보도 옆, 고물상에서 막 파지 팔고 나오는 내 또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 할머니는 더워 죽겠다며 머리부터 물을 붓더니 등짝, 겨드랑이에 물을 뿌리고 계셨다. “날이 참 덥네요. 힘드시죠?”하니? “이 일이 돈이 들어오니 할 만은 한데 딱 골병들기 쉽다." 며 크게  웃으신다. 그래서 한 3~~4분 걷는 동안 노령연금 타시냐고 물으니 자기가 25만 원 국민연금을 타서 대상이 안 된다고 하신다. 요즘 법이 바뀐 거 같으니 꼭 행정복지 센터 가서 상담해 보시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현금 2~~3천만 원 있는데 어찌 되냐고 묻기에 그것도 일단 행정 복지센터에 가서 상담하라고 끝까지 가시는 길에 큰소리로 “꼭 동사무소에 가보세요.” 하고 소리쳤다. ‘빈 걸음이더라도 가시긴 했는지? 그런 것이 꼭 수급자가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몰라서 또는 법이 바뀌었는데 대상자가 아니라고 생각해 기회를 놓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자료. 보건복지부/ 조선일보)


  며칠 전 또 뉴스에서 76세 노인이 질병수당을 받으려고 서류 신청하는데 5가지 서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뱅뱅 돌다가 결국 질병수당 받는 것을 포기했다는 내용이다.

1. 처음에 본인 통장 사본 복사해오라 해서 은행에 가서 복사해서 냈다.

2. 이번엔 1년 치 통장 거래내역서 떼어오라 해서 은행에서 떼어다 제출했다고 한다.

3. 부양의무자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에 큰 아들 서명받아오라고 해서 냈다.

4. 이번엔 딸 서명받아오고 해서 간신히 아픈 다리 끌고 요리조리 다녀와서 제출했다.

5. 이번엔 자녀, 손자들 이름을 한자로 병기해 오라고 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는 기사를  봤다.


  병수당 받는데 자녀, 손자이름을 한자로 써오라는 것은 무슨 정책에서 나왔는지 한심하고 이것이 시민을 도와주려는 것인지 못 받게 하는 장치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뭔가 수급 신청을 하려면 핸드폰이나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60~~70대 노인이고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리저리 공무원들 행정상 편의를 위해 그런 건지, 노인들 특히 아픈 노인들 세상 살아나가기 힘들다. 이런 것은 정부가 나서서 메뉴 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수급자를 도와주든지, 알바 생이라도 고용해서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이런 뉴스를 보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위가 다운로드하여준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가 보고 싶었다. 한 번에 볼 시간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룬 그 영화를 3번에 나누어 봤다. 평생 목수 일만 성실히 해오고 늙어서는 미친 아내 간병하고 인생에서 삶다운 삶도 살지 못한 것 같은데 설상가상으로 심장병까지 생겼다. 수년간 돌본 아내는 죽고 자식도 없는 주인공, 댄은 심장병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단다. 의사 소견으로 질병수당을 받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얘기다.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만 신청해야 하고 전화통화라도 하려면 대기시간만 1시간 50분 이상 걸리는데 그것도 시원한 답은 못 듣고 무미건조한 상담자의 음성만 암막 뒤에서 들린다. 물론 인터넷으로 신청할 때 도움 주는 착한 사람도 있지만 컴퓨터 ㅋ자도 모르고 스크롤바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내담자 손을 같이 잡고 꾹 꾹 눌러줘도 모를 판에 인터넷 사용시간까지 제한되어 다니엘은 결국 질병 수당 신청을 못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심사관은 심장병 걸린 사람에게 “ 팔은 귀밑까지 올릴 수 있나요? 글을 읽고 무슨 얘긴지 이해가 되나요? 5미터 걸어갈 수 있나요?” 이런  내담자의 상황과는 무관한 질문을 척도로 몸이 아무렇지도 않으니 구직활동을 해야 하고 질병수당은 못 받는다고 한다. 어디에나 진짜 착한 사람은 있다. 착한 도우미가 도와주려고 해도 윗사람이 선례가 된다며 도와주지 못하게 하는 비정한 상황이 벌어진다.


  거기서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엘의 이웃집으로 이사 온 젊은 싱글 맘, 케이티가 생계수당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으니 해결책을 찾으며 도와준다. 케이티 아들은 이사 오기 전 열악한 상황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이리저리 날뛰는데 다니엘을 만나고 나서부터 차분해지고 웃음도 찾아간다. 정부로부터 도움을 못 받는 여자가 힘들어하고 우울할 때 “우리는 기댈 바람이 필요하다.”며 위로한다. 세상으로부터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싱글 맘을 위로하고 질병수당 받는 건에 항고를 해도 해도 기각되니 “사람은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며 결국 항고를 포기한다. 그 길로 나와서 페인트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쓰고 상담 대기음 줄이라고 1인 시위를 하다가 결국 기물파손 죄로 경찰서에 간다.  결국 장애인 변호사와 이웃 젊은 싱글 맘, 케이티가 동행해 줘 심사관이 한 마디만 하면 질병수당 받을 자격이 통과될 수 있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니엘은 갑자기 화장실에서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사는 게 서러웠는지 ……. 케이티는 다니엘 블레이크의 장례식장에서 평소에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한 서러움을 허공에라도 외치고 싶어 적어둔 다니엘의 글을 담담하게 읽어간다. 그녀는 “오전 9시는 가난뱅이 장례식이라 부른다. 값이 가장 싸니까 하지만 다니엘은 우리에겐 부자였다. 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우리에게 무한이 주었다.”며 평소 다니엘이 항고 때 재판관 앞에서 읽으려고 준비한 글을 읽는다. 케이티는 다니엘은 끝내 “자기가 써둔 글을 재판관 앞에서 자기 목소리로 읽을 기회를 잃어버렸다며 시민을 도와주고 살려야 할 정부가 더 일찍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애통해하며 읽어간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신 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

My name is I, Daniel Blake.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I am a man , not a dog. 나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As such, I demand my rights.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I demand you treat me with respect.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I, Daniel Blake, am a citizen, ,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nothing more and nothing less.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

이렇게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예전에 무덤덤하게 지나쳤던 남의 일만 같았던 사건들이 내 일인 듯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과연 나도 이렇게 내 의지와는 다른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이 깊어진다. 그때는 또 다른 대처 능력이 생겨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니엘이 재판장에서 그동안 질병수당 받기 위해 가슴 아팠던 기억들을 연필로 꾹꾹 눌러써놓은 메시지를 나도 내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아둘 마음으로 스크린 정지 버튼을 눌러가며 옮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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