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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Apr 25. 2023

여고 시절 3년 동안 기차 통학을 함께 했던 친구

여성시대 신춘 편지쇼에 응모했던 글


  1974년 3월 2일 나는 익산시(그 당시엔 이리시) 이리여자고등학교 입학식에 가는 길이었다. 그날 기차 안에서 그 친구를 처음 보았다. 우리는 빳빳하게 풀 먹인 교복 카라와 배지로 같은 학교에 다닐 거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기차 통학을 하고 있었던 크고 두꺼운 입술을 가진 그 친구가 중저음 보이스로 걸쭉하게 뭔가 얘기하면 주변 친구들은 포복절도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그 친구와 어쩌면 케미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감이 왔었다. 난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도회지 여고로 가는 길이라 낯설고 생소해서 바짝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내 두 귀는 재치 있고 개그우먼 뺨치는 그 친구 이야기를 조용히 쫓아가며 내 입은 그녀의 반응에 따라 실쭉 샐쭉 웃고 있었다. 사실은 그녀도 나의 웃음과 반응을 훔쳐보며 강도를 더 세게 이야기했던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우린 같은 기차를 타고 장장 3년간 통학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통학하는 정읍(이리~정읍) 선 기차는 특이사항이 있었다. 대충 7량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칸칸이 고유의 이름이 있었고 그 이유는 학교 간 싸움이 너무 많아서 나뉘었다고 들었다. 등교 시간에는 맨 앞 칸부터 여학생 칸, 이리 공고 칸, 남성고 칸, 이리고 칸, 이리 상고 칸, 원광고 칸, 대학생 칸으로 구성되었고 하교 시엔 반대로 타면 되었다. 그 당시 다른 칸을 넘나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불문율이었다.


  중학교 시절엔 신작로 돌멩이 걷어차며 아무 고민 없이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먼 길을 걸어 다녔다. 하지만 여고 시절에는 수많은 일들이 통학 기차 한 칸에서 거의 이루어졌다. 학교마다 행사: 소풍, 수학여행, 체육대회, 시험 기간이 달랐다. 시험 기간 중에도 서로 눈치 보면서 수다 떠는 것을 열심히 하였고 웃음기 많은 여고생의 활기가 그 기차 안에 가득 흘러넘쳤다. 하지만 어떨 땐 서로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기운이 감돌아 학교 간 냉기가 흐를 때도 있었다. 나는 원래 긍정적인 성품이라 다른 학교 친구와도 교류를 잘했고 그로 인해 많이 웃으며 행복한 여고 시절을 보냈다. 자연히 학교생활도 기차 통학 시간에 맞추니 흔하디 흔한 떡볶이나 오뎅 국물 한번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여유 있고 평화롭게 다른 친구들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민을 터놓고 미래 모습을 진지하게 토론해 본 적 없이 그냥 기차 시간에 쫓겨 다녔었다.


   조선시대엔 길거리에서 소설을 읽어주며 청중을 들었다 놨다 했던 전기수(傳奇叟)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기차 통학할 때 영화를 읽어주는 그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목사님 딸로 원래 입담이 좋았고 피아노 반주, 그림, 노래까지 잘 부르는 팔방미인이었다. 나는 원래 초저녁잠이 많아서 주말의 명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제2의 번역 작가처럼 나에게 월요일마다 심지어 실제 봤던 영화 러닝타임(상영시간) 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해 실감 나게 얘기해주곤 했었다. 그 덕에 나는 문화생활을 접했고 간접적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오늘날 내가 글을 쓰고 싶은 강한 욕구가 일어나는 것도 알고 보면 그녀의 덕이 엄청나게 크다. 그렇게 그녀는 내 문학의 씨알을 심어 줬고 내 문학의 대모다. 여고 3년 동안 그녀는 나에게 모든 문학이나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문화생활을 일깨워주었고, 심지어 각종 음담패설까지 섭렵해 인도해 주었다. 오직 귀동냥만으로 사춘기 3년을 살 찌운 시기를 함께 했던 친구, 그 고마운 친구는 그리 입담이 좋았고 부산에서 목사 사모님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서 전화하면 정겨운 부산 사투리 섞어가며 말하는데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기분이 들뜨고 좋아진다. 아주 오랜만에 전화해도 어제 만난 듯 다정하고 신선하다. 나는 사월 초파일 신자(건성건성 믿음이 없는 불교 신자를 일컬음)로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그녀의 예술성과 음악성이 부럽고 가끔 전화 통화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집 남편은 건설 현장 감독이라서 이동이 잦았다. 언젠가 남편이 김해 현장에 있었고 두 딸 유치원 방학 동안 우린 그곳에서 한 달 살기를 했었다. 무더운 날씨에 비좁고 낯선 곳, 방 한 칸에서 네 식구가 북적대는 것을 생각만 해도 열이 뻗치고 힘들었다. 난 두 딸을 앞세우고 믿음과 별개로 무더위와 무료함을 피해서 김해에서 부산까지 그 친구 교회 여름 성경학교에 참석했었다. 그때 그녀는 나의 외로움, 낯선 곳에서 힘듦을 넓은 품으로 감싸주었고 우리 딸들도 재미있어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믿음을 강요하지 않아서 더 고마웠다. 그 후 나는 크리스마스만 되면 고마웠던 그 친구가 생각나 전화하곤 했다.


  우리 고향 고등학교들은 Home-coming day(모교 방문 행사)라고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동창회를 아주 거창하게 한다. 그 친구는 우리 여고 30주년 동창회 날에 아침부터 목사님 남편과 함께 직접 풍선을 불어 풍선 드레스를 만들었다. 친구들, 선. 후배님에게 눈요기 확실히 해줘야 한다며 풍선 드레스 입고 수백 명이 참석한 동문회 기념식장을 과감하고 유쾌하게 행진했었다. 그녀의 발걸음에서는 장군 같은 기백과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여고 졸업 30주년 기념행사 때 풍선 드레스 입고 행진한 친구 모습)


  이 쑥스러운 행동을 스스럼없이 한 친구 “난 50살 먹은 아줌마다.”라며 외쳤고 교정에서 후배들도 서로 사진 찍으려고 줄 서기 쟁탈전을 벌였다. 그 친구는 걸쭉한 목소리로 "니들은 공부 열심히 해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나처럼 이상한 아줌마 된다."며 훈계까지 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더욱 업 되었고 그 친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웃음 유발자였다. 그 특별한 추억은 고개만 하늘로 향하면 찾을 수 있는 구름처럼 상당한 기간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현재 나는 손주 돌보미를 하느라 매여 있는데 이번 2월 나에게도 잠깐의 휴가가 있었다. 난 그녀를 만나는 것을 첫 번째 계획에 넣었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더 바쁜 그녀와 일정을 조정해 날짜를 잡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간신히 교집합을 찾아 날짜를 잡아 다른 친구랑 같이 부산행 기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부산역 관광 안내소 앞에서 남편이랑 같이 마중을 나왔다. 졸업 후 30주년 때 만나고 또 15년 만에 재회였다. 우린 보자마자 서로 얼굴을 비비며 얼싸안았고 로맨틱 가이 친구 남편은 노란 장미 한 송이씩을 안겨주었다. 점심 후 우린 카페에서 내가 자주 쓰는 감사 편지와 더불어 Name Poem(삼행시처럼 친구 영어 이름 첫 글자로 시작하여 편지를 쓰는 방법으로  내가 Name Poem이라 생각함)을 전달했다. 나는 스케치북, 36색 색연필, 붓펜과 도서관 수업받으며 수강생들과 공저해 출간한 나의 자서전 책을 선물했다. 내가 오랫동안 친구를 생각하면서 준비한 편지를 직접 전해주니 더욱 가슴이 벅찼고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친구는 내 선물에 감동하며 우리의 우정은 더 돈독해졌다.



( 아트지로 된 달력 그림과 뒷면을 이용해  Name Poem 편지를 씀. )


  그래서 이번 부산 만남이 더 의미 있었고 값졌다. 하지만 여건이 좋지 않아 우리에겐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되었고 내 귀에 대고 "나도 너희랑 함께 놀고 싶은데~~"라며 헛웃음 지으며 떠나는데 너무 아쉬웠고 허망했다.

  사실 그 친구는 변비가 심해 오랫동안 화장실에 머무는데 어느 날 문득 새끼손가락에 힘주어 핸드폰 그림판에 디지털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친구의 그림에는 현재 시대 상황, 시간, 장소에 어울리는 메시지가 담겨있고 특이하며 재미까지 있다. 또한 익살스러운 표정, 따뜻한 유머, 감정, 온도가 담겨있어 창의성이 반짝반짝 빛난다. 나는 그녀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 그림과 글을 차곡차곡 올려서 기록을 남기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에게 밝은 기운과 웃음을 주며 재능을 묻어두지 않고 새로운 창작의 발판 삼아 지속적이고 활발하게 활동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아직은 바쁜지 관심이 없어 보여 아쉽다.


 나는 가끔 재능도 없는데 글쓰기 욕심을 내니 너무 힘들다고 그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친구야!

성공은 재능이 아니라 태도(Attitude).

은근과 끈기, 집중력과 성실함으로 결정된다.

너에게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꾸준함과 성실함이 있잖아! "라며

정감 있는 부산 사투리 섞어 가며 칭찬과 격려로 나를 붙들어 주곤 했다.




노란 원피스를 입고 꽃다발을 안은 소녀, 코로나가 한창일 때 놀라며 백신 맞는 모습 친구의 디지털화

 며칠 후 그 친구는 내 자서전을 읽었다며 매화 그림과 편지를 보냈다.


윤순아!

너의 자서전을 읽었어.

그 많은 사연 속에 한 컷을

내가 차지하고 있네. 고마워~!!

너의 인생은 장밋빛은 아니지만 향기가 은은한 매화 같구나!

살아온 것도 매화 같고~

그러나 삶은 비교의 대상은 아닌 것 같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지!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서 산다는 것이 축복,

그 자체인 것을 늙어갈수록 느낀다.

오늘 내게 준 선물 너무나 고맙고 사랑이 묻어있어서 귀하다.

고맙고 사랑해~!



난 항상 너를 가슴속에서 잊지 못하고 살 것 같다.

너의 호탕한 웃음도 좋았고 너의 무한한 문학적 감성 전달도 좋았다.  

진짜 영화보다 더 많은 상상의 나래로 나를 이끌어주었던 너의 또 다른 번안 작가 같은 전달 능력자 내 친구, 난 네가 항상 그립고 보고 싶다.

친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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