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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May 24. 2023

남달랐던 조카


 "언니?

언제 갈지는 모르겠는데,

둘째가 이모 집에 가고 싶다네. 괜찮은가? “

“물론 괜찮지.

아무 때나 오라고 해. “

경북 영천에 살고 있는 조카(여동생 아들)가 사촌 형 집에 며칠 머물다가 우리 집에

온단다.



그 나이쯤 되면 자식이지만 부모도 가교 역할을 할 뿐 쥐락펴락 통제해서 되는 것은

더 이상 아니다.

그래도 이상한 곳에 가지 않고, 사촌 형 집, 이모 집에 와서 잔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 후 잊을 만하니 조카한테 전화가 왔다.

“이모, 오늘 가려고요.”

조카는 우리 집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것도 밤 12시가 다 되어갈 무렵.

늦은 시간이었지만 처음으로 이렇게 가깝게 만나니 그냥 자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사람들과 특히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

보통 다른 조카들은 밥상에서 같이 밥 먹는 것조차 불편해하고, 슬금슬금 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런데 그 조카는 이모부가 묻는 질문에 심도 있게 대답하니, 한밤중임에도 남편은 신났었다. 그러나 다음 날 출근 때문에 유혹을 물리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 대학 다니다가 전역 후 남는 시간에 서울 사는 친척 집을 방문한다는 큰 그림을 그린 듯 보였다. 보통 젊은이들이 유럽 여행, 전국 무전여행,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우리 조카는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만나보고 싶은 건가?’

다음 날 짧은 아침 식사 시간에도 우리 셋은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조카는 영천에 살아서 물리적 거리가 있다 보니, 심리적 거리감도 생기게 되었다. 그동안 직접적으로 오롯이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요즘 젊은이와는 확연히 다른 자세와 생각, 의견을 나누는데 제법 의식 있어 보였고, 재미까지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 부부는 젊은이와 대화라는 걸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남편은 항상 두 딸과도 판 깔아 놓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지만, 딸들은 피곤하고 잔소리 같다고 피하기만 했었다. 이야기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 남편은 조카와 담론을 즐기고 있었다. 시간 있으면 더 이야기하면 재밌겠다 싶을 정도로 매력 있는 조카를 두고 출근했다


   조카와 짧은 만남 후

순간 난 유길준의 <서유견문 록>이라는 제목이 생각났다.

조카가 서울견문 록을 쓰기 위해 사전 탐방한 듯한 느낌이 그냥 들었다.


서울 사는 친척들은 어떻게 사는가?

어떤 분위기일까?

자기 집, 자기 가족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태도, 먹는 것, 집안 특유의 문화, 분위기 등

궁금한 점을 직접 눈으로 담으러 온 듯한 느낌이랄까? ‘

 

그리고 조카는 훌쩍 떠났다.



  그런데 그 조카는 글 쓰는 재능이 있었다.

조카는 시, 에세이 등, 자기 나름의 세계를 구축해 오고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

몇 달 전 ~~~ 운문 부문 은상, 1000여 명이 넘게 응모한 “ ~~ 푸드 에세이 공모전”에서 청년부 장려상을 받았다.

사실 나도 글쓰기 동아리 회원들과 합심해서 여러 곳에 글을 응모했었다. 누구든 한 명이라도 입상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아무도 입상하지 못해  낙담하던 차에 조카가 입상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도대체 입상한 글은 어떻게 다른지 몹시 궁금했다. 바로 동생한테 전화해 조카 글을 받았다.


  조카의 글은 나에게 아주 좋은 글쓰기 모델이 되었다.

쉽게 읽히고 기승전결이 뚜렷해서 완성도가 높은 글이었다.

여러 번 읽고, 또 읽으면서 나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나는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내 이야기만 줄기차게 썼던 것이다. 보편적인 생각, 나를 모르는 독자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무엇인가가 부재했던 것이다.


  일단 조카의 글 제목도 트렌디하고 젊었다,


   "산티아고라면 초밥을 상상하세요. “

 

  젊은 사람들은 제목부터 이렇게 통통 튀고 싱싱하게 쓰는구나!

그래서 눈길을 끌게 되는 것이었다.

글 제목에 라면, 초밥이라는 음식이 분명히 들어 있었다. 하지만 글에는 라면이라는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뭐랄까? 제목이 확 띠었고, 라임을 맞춘 듯, 건너뛴 듯, 중의적인 의미를 부여한 나름의 전략처럼 보였다. 다른 응모자들의 제목도 마찬가지로 신선하고 눈길을 끌었다.


  조카의 글에는 본인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내적 갈등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었다.

형은 연거푸 취직 시험에  낙방하여 힘들어하는 동생에게 초밥을 사주면서


" 초밥은 약하게 쥐어 만들면 젓가락으로 집을 때 밥이 부서져 버리고, 세게 쥐면 밥알이 딱딱하게 뭉쳐져 맛이 떨어진다. 인생을 너무 힘주어 살지 마라. 적당히 느슨하게, 현재의 너도 챙기면서 살 때 최상의 효과가 난다."라는 조언에 해결책을 찾은 부분에선 띵하고 한 대 얻어맞은 듯, 강한 울림을 받았다.

형제간의 깊은 우애가 여실히 드러나 감탄했다.

그래 글은 저렇게 전개하는구나!’ 

난 두 형제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결말이 더 빼어났다. 그 해결책을 본인만 알고 본인만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자기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취준생, 동료, 친구를 만나면 초밥을 대접하며,

고민을 들어주겠다는 그런 젊은이가 내 조카라서 가슴이 더 설레었다.


   글로도 선한 영향력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조카의 글에서 받았다. 그리고 이모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 중 한 명인 독자로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난 그날 저녁 조카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지금 직장은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괜찮단다.”


절대 글 좀 써서 입상했다고 풍선처럼 부풀어서 직장 그만두지 마라.

반듯한 직장 생활하면서 글을 쓸 때 너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 “

 

“그리고 한 작품이 뜨려면 몇십 년 걸릴 수도 있고, 영원히 흙먼지 속에 묻힐 수도 있다.

네가 쉬지 않고 글을 쓴다면 너에게 더 많은 기회의 땅이 펼쳐질 것이다.

작가로서. 강연자로서 부캐를 만들면 더 좋겠다고 이모가 노파심에서 당부한다고. “

말했다.


나만 혼자 너무 진지하고 앞서갔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뻘쭘하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그래도 난 미래의 작가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뿌듯했다.

내가 아는 사람, 그것도 내 조카가 입상했다니 달리 보였다.

젊고 글 쓰는 재능이 남다르니, 꾸준한 태도로 좋은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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