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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Jun 13. 2023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향기 나는 친구

   나는 한 여고 친구를 가끔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녀는 말이 느리다.

그러나 행동은 더 느리다.

그렇지만 내 눈엔 귀엽게만 보인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그녀와 단 한 번도 말을 섞어 본 적 없었다.

그러나 졸업 후 30주년 동창회 때 우린 1박 2일 동안 함께 보냈다.

신 새벽 구름 위를 산책하듯 몽롱한 아침 안개를 헤치고 한참을 걸었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 몰라봤던 것을 한풀이하듯, 몇십 년 동안 참아왔던 웃음을

아침 바람에 실려 보냈다. 그리고 그날만큼은 일상탈출로 모든 걸 잊을 수 있었고

해방감에 속이 후련했다. 그렇게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그녀가 동창 카페에 올려주는 향기 진동할 것 같은 노란장미꽃다발은

우리 친구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나는 그녀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아마도 그녀는 그림 그릴 때 직접 생화를 사다 놓고 그리지 않을까?’라고 상상했다.



  그녀라면 아침부터 조신하게 드레스 엎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이

꽃 시장에 들러 이 꽃 저 꽃 세밀하게 향기를 맡아보았을 것 같다.

쭈욱 훑어본 후 노란 장미를 살까?

니면 빨간 장미를 살까?

니면 깜장 씨앗이 올올이 박힌 해바라기꽃을 사볼까?

고민하고 설렜을 것 같다.

그러곤 꽃을 한 아름 안고 해맑게 웃었겠지!

그리고 우아하게 작업장에 들어가는 과정부터 퍼포먼스를 즐기며 꽃을 그렸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녀의 그림 속에 나오는 생생한 장미 가시랄지,

그녀를 닮아 꼿꼿하게 날 세운 이파리며, 줄기는 그녀의 자존심을 닮았을 것이라는

 상상이 그냥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답 글을 보니, 그녀는 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저리 상상하며 즐거워했을

그런 친구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면 아주 작은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런 작은 차이를 잘 살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난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다방면; 음악, 스포츠, 라인댄스,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그래도 뭐 하나 똑 부러지게 하는 게 없다.

음주. 가무는 언제든지 뛰쳐나가 합류할 수 있는 준비 자세가 항상 장전되어 있다.

몸으로 하는 각종 운동도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다.


  그런데 내 기를 팍팍 죽이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림 그리기다.

중학교 3학년 때 미술 수업에서 이론보다는 실기에 진심인 선생님이 오셨다.

그때 손 모양 데생 실기시험을 봤고 나는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그 충격으로 그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대한 자신감이 완전상실 되었고 회복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릴 때 상처는 커서도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친구는 그림 전공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인생이 무상하고 허무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딸의 미술학원에서 자신만의 그림 배우기를 시작했단다.

그녀의 그림과 그녀의 도전 의식은 나의 그림에 대한 부족함과 자신감을 치유해 주는 듯했다.

난 무조건 예술 하는 사람은 한 없이 좋아하는 편력이 있다.

그래서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림 그리는 데 빠져 있을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한없는 만족감, 아니 대리만족으로도 행복했다.


  친구야 이젠 넌 빼도 박도 못 한다.

우리 친구들이 너의 다음 산고를 겪고 나올 출산 물을 고대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간 전시회도 예상하고 있겠지?


멋지다! 우리 친구!


  힘 떨어지면 그림 그리는 손이 떨릴 수도 있으니 보약도 간간히 먹어가면서 그려야 쓰것다.




  나는 우리 친구가 그림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향기를 뿜뿜 발산하고 있는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무엇인가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요리, 퀼트, 뜨개질, 기타 연주, 그림 그리기, 글쓰기, 춤추기 등등.


우리는 세상 살아가는 데 힘든 상황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숨구멍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방황하며 여러 가지 시도하고 도전하며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숨 쉴 숨구멍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요즘 나는 육체 건강을 위해선 춤을. 정신 건강을 위해선 글쓰기를 통해서

나만의 고유한 향기와 색깔을 뿜어내고 싶어 연습하고 있다.

내가 도전하고 있는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맑은 하늘에서 감 떨어지기만 바라는 것보다.

날마다 책을 읽고, 조금씩 사유하고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면 나만의 고유한 향기,

나만의 세계가 조금씩 쌓여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노력한 흔적을 발견하는 것 또한 계속 내가 글 쓸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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