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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Aug 18. 2023

큰손자 사랑 값 찾아주기



  매년 4월 정읍시 덕천면, 남편이 태어난 고향 집에서 시댁 가족 모임이 있다. 

우리는 코로나로 3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올봄 시부모님 돌아가신 뒤, 

형님 부부가 관리하시는 시골집에서 모였다. 20여 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였고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나는 이튿날 새벽 모두 잠든 틈을 타 큰손자인 성호와 단둘이 온 사방이 벚꽃으로 휘청거리는 

정읍 천변을 산책했다. 벚꽃축제는 이미 끝났지만, 작은 바람결에도 벚꽃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야말로 꽃비였다. 성호는 꽃잎을 잡으려 손을 내밀다가 동생이 둘이라서 사랑을 뺏겨 

허전함을 느끼고 있는 듯이 운을 뗐다.

“할머니, 요즘 엄마, 아빠가 성규, 성은이만 예뻐하는 것 같아요.”

“그래? 난 우리 성호가 가장 멋지고 듬직한데?”

요즘 동생들이 치받고 대드니 힘든가 보다. 

동생들과 싸우다 보니 더 자주 혼도 나겠지. 

내리사랑이라 동생들이 더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부쩍 드나 보다.


   예전부터 동생과 싸운 후 힘들어하고 울분을 토해냈던 큰손자를 여러 번 봤다.

 나는 혼자서 사랑 값이라 정의하고 큰손자가 아주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조곤조곤 

설명해 주고 싶었다. 물론 사랑을 값으로 정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 손자에게 숫자(양)로 설명해 주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성호야? 너는 태어나자마자 온 가족으로부터 100퍼센트 사랑을 3년 동안 받고 컸지? 

그럼, 몇 퍼센트 사랑받은 거야?” 

“300퍼센트요.”

“그럼, 우리 성호의 사랑 값은 300퍼센트야.”


  "성규는 둘째라 원래 100%인 사랑 값을 형인 너와 나누어야 해서 태어날 때부터 반만 받지? 

그럼, 성규 사랑 값은 얼마야?”

"50퍼센트요.”

"성은이가 태어날 때까지 4년이면 성규는 몇 퍼센트 받은 거야?”

"200퍼센트요.” 

"그럼, 성규의 사랑 값은 200퍼센트.

그런데 너는 첫째라 그때도 자동으로 50퍼센트씩 받은 거 알아? 

그때도 너는 성규랑 똑같이 200퍼센트 사랑 값을 받은 거야. 

엄청나지?”


  "그럼, 성은이는 셋째니 몇 퍼센트 받을까?”

"33.333퍼센트요.” 

"그렇지~~~.

성은이는 태어날 때부터 33퍼센트만 받는 거야. 

그럼, 성은이가 4살이니 몇 퍼센트일까?”  

"132퍼센트요.” 

"성은이의 사랑 값은 132퍼센트야. 

하하, 성호야! 너는 그때도 자동으로 4년 동안 33퍼센트 계속 받는 거 알았을까? 

이번에도 너의 사랑 값은 132퍼센트 받은 거야.”

  "성호야, 너는 11살, 11년이니 너의 사랑 값은 632퍼센트.

성규는 8살, 8년이니 성규의 사랑 값은 332퍼센트.

성은이는 4살, 4년이니 성은이의 사랑 값은 132퍼센트.”


 "누구의 사랑 값이 가장 큰가?  

  머릿속에서 환하게 그려지니?”

 "너희 삼 남매 사랑 값이 객관적으로 정해진 바퀴 세 개가 계속 돌아가고 있는 거야. 

그다음부터 누구의 사랑 값이 클지는 너희가 노력한 대로 받지 않을까?”

나는 성호에게 계속 질문하고 답하게 했다. 수학적 사고를 열어 문제 풀이 식 질문을 계속했다. 

성호는 할머니의 질문에 사칙연산을 써가며 계산했다.

성호의 암산 실력이 대단했고 척척 대답을 잘해서 더 놀랐다. 폭풍 칭찬을 하니 입꼬리가 올라가고 

헤벌쭉 웃는다. 우리는 손 꽉 잡고 성큼성큼 걸었다. 덩달아 발걸음도 신나고 경쾌해졌다. 

그렇게 할머니는 성호에게 자신의 사랑 값을 스스로 찾아 답하게 했다.

“할머니? 사랑 값 찾아가는 과정이 재밌고 웃긴데요.”


  그리고 나는 확실히 믿음 가는 한마디를 더 해 주었다. 

"성호야? 사람에게 첫사랑은 항상 머릿속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특별한 추억이란다. 

너는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손주지? 그래서 네가 태어나던 날 신촌 할머니와 이 할머니는 화살기도를 했어.”

"화살기도가 뭐예요?”

“세상일을 하면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순간적으로 받칠 수 있는 기도야.

산모와 아기, 모두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지.”

그리고 얼마 후 ‘응~~ 애 응~~ 애’ 세상을 향한 너의 우렁찬 첫 울음소리를 들었지. 할머니들은 두 손을 맞잡고 울먹이며 크게 안도의 숨을 쉬었단다.

“너와의 첫 만남은 경이로워서 눈물이 났어.

사람이 너무 감동하면 눈물이 나거든. 

첫 손주와 첫 만남이기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쫘~~~ 악 끼치더라고. 

성호야? 너에 대한 부모님과 두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은 예전에도 지금도 각별해. 

물론 동생들에 대한 사랑도 또 다른 모양으로 각별하지. 알았지?” 


  오늘 할머니와 대화의 기운이 말속에 씨앗의 형태로 숨어 있다가 훗날 무럭무럭 자라 

나름의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런 고민을 할머니와 말해주니 더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러웠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고비고비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난다.

자기 고민을 들어주고, 보듬어 주고, 도움까지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것은 행복하다. 

누군가 고민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상당히 도움이 되고 해결책이 보인다. 

옳든 그르든, 모든 결정은 결국 본인이 내리고, 

책임도 본인이 온전히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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