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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Sep 18. 2023

아슬아슬한 휴가



  휴가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렘으로 날짜를 세며 즐거워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시부모님 포함 대가족 20명 이상씩 이동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형님 부부가 짜놓은 계획에 맞추어 쫓아다니기만 하면 됐다. 그것도 힘들다고 불평했으니 ‘우리 형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부끄러움과 감사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그땐 엄청난 대식구 이동임에도 즐거운 휴가였다. 그때도 누군가, 특히 우리 형님의 정성과 희생,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두 딸이 결혼하니 이젠 우리 부부가 개별적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노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시간 주며 놀라고 해도 갈팡질팡한다. 무작정 어딘가로 계획 없이 떠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남편. 가장 기본적인 숙소라도 예약해야 그나마 불안감이 적다고 생각하는 나. 남편의 성향에 쫓아가자니 버거워서 여행 갈 때마다 충돌이 잦다. 우린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그런 부류의 불편함 때문에 자주 입을 꾹 닫게 된다. 손주 돌보느라 번듯하게, 아무 때나,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항상 아쉽다. 올여름 손주들 유치원 방학으로 나에게 약 10일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무슨 일이든, 어디로 가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이렇게 주어진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는 것은 아니지. 난 몇 주 전부터 남편에게 휴가 날짜를 알려주며 계획을 짜라는 무언의 압박을 했다. 도무지 무슨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 두고 나 홀로 휴가를 떠날 명분이 없다. 우리는 부부란 의리 있는 동지라며 생각하며 산다. 그런데 동지끼리 그럴 수는 없다. 사실 나도 우물쭈물 나 혼자 계속 여행사 예약 코너만 스캔하고 있었다.



  

나이가 드니 사실 우린 서로 멀리 떠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그분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서 예약해 정해진 곳까지 가는 것 자체를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예약은 왜 해야만 하는지? 의문시하는 구 인류, 남편이다. 그리고 패키지로 가는 것도 무척 싫어한다. 그럼 어쩌라고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모든 곳을 자가운전으로 가려하니 몸이 따라 주지 않을까 봐 미리 걱정하는 눈치다. 날짜가 가까워지자,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정확히 말했다. 난 울릉도도 가고 싶고, 천상 낙원 야생화 군락지 곰배령도, 화담숲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울릉도는 태풍 온다고 싫단다. 곰배령은 운전하기 너무 힘들단다. 난 운전하지 말고 여행사 예약하면 해결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몇 시간 등산로를 걷지 못한단다. 딱 말문이 막혔다. 사실 나도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렸다. 그제야 우리 부부의 공통 취미인 골프 라운딩을 가잖다. 시원스럽게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난 내가 생각해도 참 속이 없다. 라운딩만 간다면 어디든 좋아하니. 편리한 앱을 동원해 조금 시원할 것 같은 강원도에 있는 골프장에 신속하게 조인했다. 오후 2시 라운딩이니 바람 한 점 없고 땀은 비 오듯 해서 쓰러질까 봐 바짝 긴장되었다. 하루 종일 폭염 경보로 온열 환자가 속출하니 노약자는 집에 안전하게 있고, 야외활동 금지라는 재난경보가 핸드폰에 계속 뜬다. 우리도 노약자인데. 이런 판국에 마지막 홀까지 다 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무사히 라운딩이 끝나서 편안히 저녁 먹고 숙소 찾아 나서면 딱 좋을 시간인데~~~.

평창에서 휴가 중인 딸네 치킨 사주러 가잔다. 또 한 시간 운전한다. 뙤약볕에서 다섯 시간 동안 골프하고도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운전대를 남편이 쥐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 리조트는 어마어마하게 큰데 주차할 공간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몇 바퀴를 돌다가 아슬아슬하게, 옹색하게 주차하고 손주들을 만나니 좋긴 했다. 이래서 힘든 길을 자처했나 싶었다. 치킨으로 저녁을 때우며, 반가움에 온 식구들 목소리가 커지고 할머니를 끌어안고 난리다. 타지에서 예기치 않은 만남은 우리를 더 끈끈하게 이어줬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불편했다. 자기네 방에서 자고 가라고 팔을 잡아끄는 손주들의 간절한 청을 거절하고 떠났다. 하지만 그렇게 눌러 그곳에서 잠을 자기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체면이 서지 않았다. 다시 다음날 예약해 둔 골프장 주변으로 향했다. 무리한 일정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숙소를 찾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무인텔 몇 군데만 눈에 띄었다. 평소에 무인텔을 지나치긴 했지, 들어가 본 적이 없었고 첫 경험이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지금껏 해왔던 경험치와 다르니 어떨 떨 했다. 간신히 문자 해독하고 방에 입성했다. 밤 11시쯤 도착해서 잠만 자고 새벽 6시에 나가면 됐다. 그러나 그 잠깐도 사방이 막히고 창문이 없어 보여 바깥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기분이 묘하고 마음이 힘들었다. 마치 사방이 막힌 독방에 갇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단지 몇 시간 잠만 자면 된다고 생각해도 불안감이 훅 끼어들었다. 다음 날 새벽 예정보다 더 일찍 서둘러 나왔다. 셔터만 열어도 공기의 밀도가 확연히 달랐다. 답답증이 사라지고 안도감이 들어 편안해졌다.



  집 나서는 순간부터 밥은 어디에서, 몇 시에,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계획을 시간 별로 일목요연하게 짜는 사람이 있다. 그런 분은 그렇게 해야만 모든 가족이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첫 목적지와 큰 그림만 정하고 발길 닿는 데로 떠나자는 우리 남편 같은 사람도 있다. 돈만 들고 가면 모두 해결된다는 생각이 울퉁불퉁한 사람을 무작정 따라나서는 것이 좋은지? 이런 생각을 가진 남자와 여행하는 것은 항상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다. 이런 사람은 주변 사람, 특히 나같이 미래에 불안이 많은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두 부류의 중간 어디쯤. 계획적이지만 여유도 있는 여행이면 편안할 텐데~~~. 다 성향이 다르니!



  사실 우리 부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 일을 열심히 챙겨서 하는 것,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한다. 간섭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더 센 남편의 자유로운 영혼이 조금은 널널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나를 항상 이긴다.  나는 그 사실에 자주 기분이 상한다. 아무리 골프를 좋아한다 해도 하루 더 라운딩 하자는 남편이 툭 던진 제안은 날씨 좋은 날 하자고 남겨두었다. 아슬아슬한 우리의 건강 상태, 순간의 달콤함에 무리하게 진행해서 탈랄라! 그러면 절대로 안 되는 상황이다. 다음 주부터 본 업무인 손주 돌봄이 일에 복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탈 없이 집에 도착한 것에 감사하다. 며칠 지났음에도 아무런 사고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다시 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그나마 우리 부부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서 감사하다. 휴가, 여행은 또 기회를 만들면 된다. 무더운 날씨라 집에서만 견뎌내는 것도 좋은 수는 아니다. 여행을 통해 배운 지혜와 여행지에서의 추억 한 아름 담아 올 여유를 챙기자. 밖으로 나가 타인의 삶도 들여다보며 웃을 수 있는 여유로움도 챙기자. 그래서 다가오는 버거운 일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 힘을 비축해 두자. 몸 상하고 마음도 상하는 아슬아슬한 휴가는 이제 그만하자. 휴식으로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힘들 때 추억 하나씩 곱씹으며 다음 휴가 때까지 살아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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