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조소앙은 50년 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로운 국민의 의사로 선출되고 국제적 승인을 받았으며, 대한민국건국강령의 삼균주의가 상당 부분 수용된[1] 제헌헌법을 긍적으로 평가하여 대한민국을 민족진영의 아성으로 인정하였다.
다음은 조소앙이 창당한 사회당의 ‘5.30총선거와 나의 정치관’이다.(잡지<삼천리>에 발표)
본 당은 민족진영의 재편성과 현실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자주 및 통일을 완성할 것과 균지(均智), 균권(均權), 균부(均富)의 균등사회건설을 목표로 한 노.농.학.상 각계 각층의 총단결체인 것이다.
이 사회당의 정강.정책의 실천을 위한 현실은 무엇이냐. 독립운동사상의 대한민국은 그 건국강령에 표시된 바와 같이 복국(復國)과 건국을 6단계로 나누어, 중경시대의 대한민국으로서 해외임무의 결속과 국내 건국의 단계적 교량 역할과 통일정부의 방식문제까지를 14개조의 당면정책으로 채정하고 복국하여 건국에 노력할 때가지의 독립운동의 최고기관이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망명 대한민국정부의 영웅적 투쟁의 결과이며, 5천년 독립민족의 최고 조직체인 것이다. 정부와 인물과 정책이 변화할지라도 국가의 본질적 생명은 계속되는 것이며 입각된 인물론과 집행되는 정책론을 초월하여 태극기를 고집하고 대한민국을 최고도로 발견케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특히 구주에서 맹렬히 전개되는 냉전의 전화는 동아에 집중되며 적색 세력은 중국을 석권하며 나아가서는 동남아시아에 뻗쳤으며 각처에 38선을 형성하고 있는 형태이니 세계냉전의 최첨단에 서 있는 우리 한국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며 또 민족진영의 아성인 대한민국정부의 사명과 역할은 실로 중대한 바가 있다. 민족진영의 존망, 아니 한국민족의 민족적 운명은 대한민국 육성.강화 여하에 있는 것이다.
이 30유 여년의 법통을 계승하고 혁명선열의 피와 죽음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우리는 육성.강화할 책임을 느끼는 바이며, 그 육성.강화의 일익을 담당하려고 금번 나는 새로운 충성된 결의를 국민 앞에 하는 바이다.[2]
제헌국회와 초대내각에는 친일파가 없다
북한정권과 마찬가지로 남한도 친일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의식하여, 제헌의회에서는 국회의원선거법으로 고위직 친일파에 대한 피선거권을 박탈하여 의회진출을 막았다. (미군정 법령 제175호, 48년 3월17일 공포)
제2조 左의 1에 해당하는 자는 선거권이 없음.
1-3(생략)
4 일본 정부로부터 작(爵)을 받은 자.
5 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
제3조 左의 1에(필자-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피선거권이 없음.
1 본법 제2조에 의하여 선거권이 없는 자(이하 생략).
2 (생략)
3 일제시대에 판임관 이상의 경찰관 및 헌병, 헌병보 또는 고등경찰의 직에 있었던 자 급(及) 기(其) 밀정행위를 한 자.
4 일제시대에 중추원의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가 되었던 자.
5 일제시대에 부(府), 또는 도(道)의 자문 혹은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
6 일제시대의 고등관으로서 3등급 이상의 지위에 있든 자, 또는 훈(勳) 7등 이상을 받은 자. 단 기술관 급 교육자는 제외함.
초대내각도 반일의 선명성을 위하여 내각의 17명 중 6명이 임시정부 관련 인사였고, 다른 각료들도 모두 항일인사들이었다. 부통령 이시영(임정 내무총장), 국회의장 신익희(임정 내무총장), 대법원장 김병로(항일 변호사), 무임소장관 지청천(광복군 총사령관), 외무장관 장택상(청구구락부 사건), 법무장관 이인(항일 변호사, 한글학회 사건), 재무장관 김도연(2.8독립사건), 상공장관 임영신(독립운동가, 교육자), 문교장관 안호상(항일교육) 등이었다.
제헌의회의원 총 209명(정원 200명, 보궐 및 재선거 9명) 중 항일운동 경력자는 68명으로 전체 3분의 1의 수치였고, 면장과 읍면 직원 등의 공무직(32명), 교육직(27명), 신문.출판(17명), 기업가(37명) 등으로 식민지조선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했던 테크노그라트(technocrat) 출신들이 많았다.[3]
한편, 북한에서는 기독교 민족주의자 조만식의 강금에서 보여주듯, 공산화에 협조하면 친일경력이 있어도 정부조직에 참여시키는 ‘선택적 청산’을 하였다. 즉, 친일파청산이라는 민중적 요구를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특히, 군사분야의 일제군인 출신 기술직들은 특별히 우대하였다.
북한정부의 친일경력자들을 살펴보면 임시인민위원회 사법부장 장헌근(중추원 참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강양욱(도의원), 보위성 부상 김정제(양주군수), 문화선전성 부상 조일명(친일단체 ‘대화숙’출신), 초대공군 사령관 이활(나고야 항공학교 출신), 인민군 9사단장 허민국(나고야 항공학교 출신), 노동신문 편집부장 박팔양(만선일보 편집부장) 등이 있다.[4]
[1] ‘민주공화국’이란 명칭은 자유주의 법학을 전공한 조소앙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으며,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인정(제18조 2항), 경제적 자유를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한계 내에서 인정(제84조), 주요 자원이나 산업에 대한 국유 내지 국.공영의 원칙을 천명(제85, 87조)하여 삼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2]김삼웅, <조소앙 평전>, 2017, 323쪽
[3]나미키 마사히토, ‘식민지 시기 조선인의 정치 참여- 해방후사와 관련해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1권,687쪽
[4]김용삼외6명, <이승만 깨기>, 2015, 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