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정통론, 제8장 최고사상가들의 정통론

대한민국 정통사관

by 현진석

제8장 최고사상가들의 정통론


식민지조선의 국내와 국외에는 뛰어난 인품과 문장으로 존경받던 두명의 큰 사상가가 있었다. 삼균주의를 제창한 조소앙과 신민족주의를 주장한 안재홍이 바로 그들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요 문서를 대부분 작성한 조소앙의 주요 활동은 삼균주의, <발해경>, 대한민국임시헌장 기초, 대한민국건국강령 기초 등이 있고, 조선일보 최고의 문장가였던 안재홍은 신민족주의, ‘다사리’이념, <조선상고사감>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50년 5월 30일의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곧이어 6.25전쟁이 터져 두명 모두 납북되었고 결국 평양에서 큰 뜻을 펼쳐보지도 못한채 안타깝게 사망하고 말았다.


순정우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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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생으로 안재홍 보다 4살이 많은 조소앙은 동경 메이지대학에서 와세다대학을 다니던 안재홍을 처음 만나, 손문의 중국 신해혁명을 견학하려고 함께 중국에 가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3.1 운동 이후에는 법학부를 졸업한 조소앙은 상해의 임시정부로, 정경학부를 졸업한 안재홍은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1919년 조소앙은 자신의 동생 조용주을 보내, 안재홍에게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고 그는 이병철과 함께 공동총무로 활동하다가, 1919년 11월 대구에서 체포되었는데 모두 9차례 7년 3개월 옥고의 시작이었다.[1]

안재홍은 끝까지 일제와 타협하지 않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좌우합작과 행정업무을 위한 미군정 민정장관으로 활동하면서도 고매한 인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소앙과 안재홍은 모두 공산주의운동이 이념과 세계공산주의를 민족 보다 앞세우는 것에 반대하여, 민족정신과 민족문화를 진흥시키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두명 모두 단군신앙을 기초로한 대종교(大倧敎)[2]에 참여하여 민족의 절대절명의 위기를 민족종교로 이겨내려고 하였다.

조소앙은 <발해경>을 통해 독립과 건국정신을 되살리려 했고, 안재홍은 <조선상고사감>을 집필하여 조선 민족의 문화적 특수성과 강인한 민족성을 상기시키려 하였다. 안재홍은 45년 국민당을 창당하여 창당선언문을 통해 ‘다사리이념’[3]과 공산주의의 계급독재에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정치는 ‘다사리’이다. ‘다사리’는 그 방법에서 전 인민 각 계층의 총의를 골고루 표백(表白)케 함이요, 그 목적에서 전 인민 각 계층의 ‘나’와 ‘나’와를 ‘다 살게’하여 유루(遺漏)와 차등 없이 함이나니, ‘나라’요 ‘겨레’요 ‘다사리’요 즉, 하나의 통일민족국가가 정치.경제.문화.사회 등 대중 생활의 전부면(全部面)에 뻗치어 고요한, 그러나 신생한 민주주의에 말미암아 자아국가를 그의 신민족주의의 대도에서 정진 매진케 하는 지도 이념이다. 오인은 초계급적인 전 민족적 피압박의 형태에서 항전하여 왔고 다시 전 민족적 해방의 단계에 들어 있어, 초계급적 통합국가 건설의 역사적 약속 아래에 있으므로, 모든 진보적이요 반항침략제국주의적인 지주와 자본가와 및 농민 노동자 등 근로층의 인민과를 통합한 신민주주의의 국가를 창업하여 만민개로(萬民皆勞)와 대중공생(大衆共生)을 이념으로 하는 계급독재를 지양시킨, 신민주주의의 실행을 목표로 한 정치적, 문화적 신기원의 역사를 개창하여야 한다.[4]


이러한 ‘다사리이념’은 식민지시대에 좌우를 막론하고 그 사상이 채택된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사실 해방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선호하는 경제제도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각각 약 10%, 사회주의는 약 70%가 나온 것을 보아도 당시의 한국인들 대부분은 비폭력적이고 의회주의를 중시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또는 영국 노동당의 민주사회주의를 원했음을 알 수 있다.

조소앙이 기초한 임시정부의 정당조직인 ‘한국독립당’의 당의에는 그의 삼균주의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5천년 자주독립하여 오던 국가를 이민족 일본에게 빼앗기고 지금 정치의 유린과 경제의 파멸과 문화의 말살 아래서 사멸에 직면하여 민족적으로 자존을 얻기 불가능하고 세계적으로 공영을 도모하기 미흡한지라, 이에 본당은 혁명적 수단으로써 원수 일본의 모든 침탈 세력을 박멸하여 국토와 주권을 완전 광복하고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신민주국[5]을 건설하여서 안으로는 국민 각개의 균등생활을 확보하며 밖으로는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평등을 실현하고 나아가 세계일가의 진로로 향함.[6]


한편, 안재홍은 48년 5월 10일 선거를 앞두고 미군정 민정장관으로 있으면서, 식민지 기간 동안 민족독립을 위해 싸웠던 진정한 민족주의자들이 국회에 들어가야만 외세 의존적인 극좌 및 극우세력을 억제하여 순정우익의 주체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며 선거참여를 독려하였으며, 47년 10월 ‘한성일보’에 <순정우익(純正右翼)의 결집>이란 논설을 발표했다.


‘첫째, 진정(眞正)민주주의 노선은 외세에 의존함이 없는 자주독립국가, 즉 민족해방의 완성을 지향하는바, 계급 대립은 균등경제와 평권정치(平權政治)로 지양하며, 미국의 경제원조는 받되, 그로 인한 주권 침해는 배제한다.

둘째, 이 같은 정치 노선을 ‘중간당’ 혹은 ‘중간파’라고 말하는 것은 경멸적인 매도에 불과하며, 오히려 진정민주주의 노선은 좌에서 무산자 계급독재를 전제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사유 세습을 무시하는 공산주의의 강요를 반대하고, 극우에서 봉건적.대지주적.자본벌적 특권계급 지배를 배격한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의 공산혁명이나 극우 정치의 출현은 필연적으로 외세의 간섭과 침략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극우는 조만간 재수정을 필요로 하는 우이므로 진정민주주의만이 ‘순정한 우익’이고, 또 이러한 “진정민주주의 노선에서만 진정한 민족주의가 성립”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순정우익’이다.[7]


[1]정윤재, <안재홍 평전>, 2018, 46~47쪽

[2]대종교는 환인.환웅.단군의 삼신 ‘하느님(한얼님)’을 모시는 종교이다.

[3] ‘모든 사람이 모두 제 말을 하고 모든 사람이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을 순수한 우리말 ‘다사리’로 표한 것이다.

[4]정윤재, 위의 책, 115쪽

[5]소련과 같은 전체주의국가가 아닌 정치적 자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를 말한다.

[6]김기승,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론가 조소앙>, 2015, 100쪽

[7]정윤재, 위의 책, 194~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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