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민족을 배신한 민족주의자
북한은 1968년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이전의 책들에서는 김일성이 31년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공청 동만특위 비서로 있었다고 하였으나, 그 이후에는 중공당과의 관계를 전면 부정하고 독자적인 독립운동을 한 것 처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소련군 대위로 활동한 것도 <세기와 더불어>를 비롯하여 모든 공식문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1]
자신들의 정통성을 민족의 구원자로서 일본제국주의와 미제국주의자와의 투쟁과 승리에서 찾는 북한이므로, 또 다른 공산제국주의인 소련과 중공의 이익을 위해 충성스러운 봉사를 했다는 사실이 치명적 약점이 될 것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제1장 정치 제2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제국주의침략자들을 반대하며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영광스러운 혁명투쟁에서 이룩한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혁명적인 국가이다.(북한헌법, 2009)
김일성의 중공당 입당시기는 30년대 초반으로 추측되는데, 중국의 만주항일투쟁문서에 남아있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28세로 되어 있는데, 자신보다 연장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부대의 원활한 통솔을 위해 나이를 다섯살 부풀린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고려인, 1932년 입당, 학생, 28세 용감, 적극, 중국어를 할 수 있음, 유격대원에서 승진한 사람이다. 민생단이라는 진술이 대단히 많다. 대원들 가운데서 말하기를 좋아하고, 대원 사이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구국군 사이에서도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정치문제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위증민,‘동만특위 당.단 간부와 인민혁명군 간부약력(1935년 12월 20일)[2]
용감, 적극이라는 단어가 눈에 뛰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한인 부대원들이 처형당한 민생단사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공산국가에 충성스러운
민생단(民生團)은 1932년 2월 15일 조선총독부와 일본 간도영사관의 조정하에 간도와 용정 조선민회 회장 이경재, 연길현 조선민회 회장 최윤주, 서울 <매일신보>사장 박석윤 등를 중심으로 간도에서 발족한 반공단체이다. 이들은 중국공산당 항일부대의 중국인과 한인들을 이간질하기위한 선무공작을 벌였다. “간도는 자고로 조선 땅이니 응당 조선사람이 차지해야 한다. “ “조선사람은 조선의 독립이나 할 것이지 중국혁명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3]
이 단체는 5개월 정도 활동하다 해체되고, 1934년 9월 협화회(協和會)가 발족하여 반공활동을 펼쳤다. 협화회는 공산 유격구 내로 밀정을 침투시켜 “누구누구가 민생단원이다”라고 소문을 내거나 이간질하는 편지를 보내는 공작을 하였고, 그 결과 원래부터 한인을 믿지 못하던 중공당 만주성위는 “철저한 숙청공작을 무자비하게 전개하라”는 지령을 내려 한인 중간간부들이 고문,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당시 처형 또는 살해된 한인 중견간부는 이용국.김권일(왕청현위 서기), 김일환(화룡현위 서기), 최창복(훈춘현위 서기), 박길(연길현 유격대대 정치위원), 박동근(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1독립사 1단장) 등 500여명에 이르렀다. 동북항일연군 총사령 주보중은 한인 희생자 수를 2,000명으로 언급하기도 하였다.
[4]
이러한 숙청의 피바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국공산당 당원의 자격을 가져야했고, 전투에서 선봉이 되어 용맹과 충성심을 보여야만 했다.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김일성은 이번에는 소련군의 장교가 되어서도 이러한 생존의 습성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고, 마침내 45년 9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으로부터 면접을 받을 때 스탈린주의와 소련공산당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보여주어 북한의 잠재적 지도자로 낙점 받게 되었으며 이는 한민족의 거대한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본격적인 외세에 대한 반민족적 충성은 45년 해방과 함께 북한에 들어오면서, 소규모 자영농을 중심으로하여 지배적인 세력으로 존재하던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었다. 기본적으로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들과 기독교인들은 화합할 수 없었고 북한의 대표적 정치지도자인 조만식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조만식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리우던 평양 출신으로 숭실중학교에서 기독교에 입문하였고,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마하트마 간디를 알게되어 비폭력운동에 매료되어 귀국 후 교육운동, 국산품 애용운동, 신간회 평양지부장, 평양 YMCA 총무,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등의 활동으로 해방 당시 명실상부 북한 최고의 기독교 민족주의자였다.
[5]
그러나 찬탁과 반탁의 정치대립 상황에서 그는 소련군정의 협박과 회유에도 끝까지 반탁을 고수하여, 결국 공산제국주의를 자신의 조국으로 삼던 김일성과 소련군에 의해 46년 1월 5일 고려호텔에 연금되고 만다. 이후 6.25전쟁이 터지고 50년 10월 18일 평양에서 공산군이 후퇴할 때 우파인사와 치안사범 500명과 함께 처형되고 말았다.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위해 민족을 지옥의 전쟁터로 몰아넣은 김일성은 소위 ‘국토완정론’을 주장하며, 1949년 3월 7일 모스크바의 스탈린을 방문하여, 남침전쟁을 간청했다. 아래는 1994년 공개된 소련의 비밀외교문서다.
김일성 스탈린 동지. 이제 상황이 무르익어 전 국토를 무력으로 해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조선의 반동 세력들은 절대로 평화통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북침을 하기에 충분한 힘을 확보할 때까지 분단을 고착화하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공세를 취할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우리의 군대는 강하고 남조선에는 강력한 빨치산부대의 지원이 있습니다.
스탈린 남침은 불가합니다. 첫째 북조선 인민군은 남조선군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적으로도 열세이고, 둘째 남조선에는 아직 미군이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그들이 개입할 것입니다. 셋째 소련과 미국 사이에 아직도 38도선 분할 협정이 유효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우리가 먼저 위반하면 미국의 개입을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김일성 그렇다면 가까운 장래에 조선의 통일 기회는 없다는 말씀인가요. 남조선 인민들은 하루빨리 통일을 해 반동정부와 미 제국주의자들의 속박을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스탈린 적들이 만약 침략의 의도가 있다면 조만간 먼저 공격해올 것이오. 그러면 절호의 반격 기회가 생깁니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동지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원할 것이오.
[6]
스탈린의 우려는 49년 6월까지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모택동이 한인으로 구성된 조선의용군 수만명을 북한에 보냈으며, 남한이 49년 전반기에 38도선에서 공세적 전투를 시도함에 따라 대부분 해소되었다.
중국이 북한에 특별한 조건없이 병력을 보내준 것은, 북한이 국공내전 당시에 만주에서 패배한 중공 인민혁명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팔로군은 북한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소련군에 의해 훈련되고 재편되었다. 1946년부터 48년까지 북한 전 지역이 팔로군의 군수물자와 병사들의 수송통로이자 보급창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것이다. 김일성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모택동은 47년부터 대반격을 실시하여 요심, 화해, 평진의 3대 결전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49년 1월 31일 북경에 무혈 입성하였다.
[7]
1949년 7월 25일에는 방호산의 중국군 제166사단 1만 800명이 신의주로 입북하여 조선인민군 제 6사단으로 개편되었고, 김창덕의 1만명 규모의 제164사단은 49년 8월 23일 함북 회령으로 넘어와 조선인민군 제5사단이 되었다. 50년에는 전우가 중국군 제20사단과 다른 조선의용군까지 함께 원산으로 넘어와 조선인민군 제12사단이 됨으로써, 총 5만명의 동북조선의용군은 북한 조선인민군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국공내전에서의 풍부한 전투경험을 가진 전투력이 뛰어난 병사들이었다.
[8]
결국 김일성은 스탈린의 전략 즉,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미군을 아시아에 묶어두어 소련을 유럽에서 자유롭게하고 미국과 중국의 대규모 소모전을 유도하여 두 나라의 힘을 빼게하는 것 그리고 모택동의 전략으로 한반도에서의 소련의 영향력을 줄이고 항복한 수십만 국민군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소비하는 의도에 완전히 부응함으로써 수백만 한민족의 사상자와 국토 초토화라는 미증유의 환란을 불어온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1]이명영, <세기와더불어는 어떻게 날조되었나>, 2021, 58쪽
[2]유순호, <김일성1912~1945>중권, 2020, 102쪽
[3]김용삼, <김일성 신화의 진실>, 2016, 168쪽
[4]위의 책, 170쪽
[5]안문석, <북한 현대사 산책>, 2016, 80쪽
[6]위의 책, 316쪽
[7]김용삼, <김일성 신화의 진실>, 2016, 610~611쪽
[8]안문석, <북한 현대사 산책>, 2016, 351~3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