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남침유도설은 완전한 진실인가?‘ 황현필 3편

정통사관 완전정복

by 현진석

<미국의 남침유도설은 완전한 진실인가?> 황현필 反韓史觀 비판 3편


트루먼정부는 한반도에서의 치열한 전쟁을 통해 동맹을 강화하고 국방비를 대폭 증대하기위하여, 애치선라인 발표를 통해 남침을 유도했다는 학설이다. 전쟁전에 낙동강까지의 후퇴와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시나리오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SL-17, 1949년 9월)

하지만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소련의 방해로 유엔군의 참전이 늦어지고 국군이 쉽게 무너졌다면 전쟁은 단기간에 끝났을 것이니 말이다.

(나무위키, 미국의 군사 산업 증강을 논한 NSC-68을 들고와 남침유도설의 근거로 삼기도 하는데, 이 문서는 애치슨 선언보다 후에 결의된 것이다.(1950년 4월 14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군수 장비를 증강하는 안을 결정하고 전쟁을 유도해야 할 텐데 실제는 정반대이다. 거기에 더해 1949년 12월 30일(애치슨 선언에서 겨우 2주 전이다!) 발표된 NSC-48에서는 오히려 소련의 공세에 대해 더욱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여기서는 남한을 포기하는 안이 계획되어 있다. 오죽하면 스탈린이 이 문서를 스파이를 통해 몰래 입수하고 전쟁에 동의했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니. 즉, 애치슨 선언을 남침유도의 목적으로 보는 것은 터무니 없는 소리이다.)


어쨌든, 두명의 호전적인 지도자인 김일성과 이승만의 전쟁시도에 미국은 방어용 무기도 주지않고 강력히 반대했으나, 스탈린은 수백대의 탱크와 무기를 지원하여 남침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정통사관 105쪽) 이승만은 북한의 군사력과 남침야욕을 높게 평가하고, 방어적인 무기라도 지원 받기를 계속 요청하였지만, 미국정치권은 그의 '북진통일론'과 반미주의자로 간주되는 그의 평판에 영향을 받아 번번히 거부되었다. '우리는 자주 방위가 가능할 정도의 무기를 신청하였소. "적절한"채널을 통해 무더기로 요청했지만 얻은 것은 거의 없소. 38선 너머의 저쪽에서는 사거리가 긴 소총으로 우리에게 사격할 수 있지만, 그런 소총을 갖고 있지 못한 우리 경찰은 여기에 속수무책이오. 우리 군대는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38선 주위에 주둔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소![3]‘


38선에서의 수백차례가 넘는 남북간의 교전과 이승만의 일견 무모해 보이는 북진통일 주장, 미국의 강력한 반대 속에 1950년 전쟁 직전 남한군대가 보유한 장비는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50년 3월 8일 이승만이 35살이나 어린 그의 정치고문 올리버박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국가예산의 대부분을 미국원조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이 국방원조를 위한 투쟁에서 완전히 패배하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서울 북쪽의 적이 어느 순간에라도 우리가 그들에게 대항하기위해 동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무기와, 더 많은 모든 것들을 가지고 휩쓸고 내려올 수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올리버박사가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입장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는 현재 대공포도 없고 하늘에 띄울 수 있는 비행기도 없고, 탄약조차 없소. 현재의 군사원조 프로그램은 탄약과 예비품과 장비가 계속 작동되는데 필요한 그 밖의 사소한 품목들만 제공할 뿐이오. 내가 "사소한" 품목이라고 한 이유는 이들은 작은 부품들에 불과하고 전부 모아봐야 아무것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오. 이러한 품목들의 비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만, 이들은 우리의 대공방어와 해안방어에 아무것도 보태주는 것이 없소. 지금까지 모스크바에서 북한에게 남한을 침공하라는 "청색"신호를 보내지 않은 것은 공산주의와 타협하지 않겠다고 하는 한국인들의 결의와 공산당을 막겠다는 나의 확고한 입장 때문이오. 저들은 시종 일관 우리보다 사거리가 긴 포와 소총을 갖추고 있소. 소련은 한국이 공격을 받는다면 미국인들이 철수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직 공격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소.(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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