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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Aug 09. 2023

현대와 전통의 만남,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막걸리

-다양한 재료를 섞어 수채화를 그리다,씨막걸리 시그니처나인을 음주해보았다

우리가 보통 막걸리라는 술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이미지를 말해보자. 기본적으로 전통주라는 바탕이 깔려 있으니 '옛날 술'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이고, 음주하기에 딱 좋은 날씨인 '비 오는 날', 곁들이기 안성맞춤인 막걸리 안주들 '파전, 도토리묵', 거기에 더하면 '동동주', '주막' 등 막걸리에 어울리는 다양한 낱말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렇듯 단순히 떠오르는 단어들을 뱉어보면 알 수 있는 게, 막걸리 하면 생각나는 단어들은 옛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전통술로 사랑받아온 '막걸리'가 '현대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이니까.


그러나 이제는 이 것도 옛말이다. 현재는 가양주로서 전해져 내려오고, 지역 막걸리로서 전통을 지켜오는 막걸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에는 와인 같은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으며, 또 어딘가에는 전통과 현재를 융합하여 모던한 스타일을 개척하려는 사람도 있다. 


오늘 내가 가져온 술은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프리미엄 크래프트 막걸리의 장르 형성과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 양조장의 막걸리이다. 2020년 서울 강남 최초의 도심 전용양조장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술을 만드는 곳 '씨막걸리'. 술문화를 선도하는 이곳의 대중적 버전은 어떠한 맛을 가지고 있을지. '씨막걸리 시그니쳐 나인'의 맛과 향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다양한 재료를 섞어 수채화를 그리다, 씨막걸리 시그니처나인

병을 보자마자 알 수 있는 것이 전체적으로 모던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단순하나 전혀 예스럽지 않고, 기업의 이름이 들어가 옛 느낌을 내는 전면부에는 'C MAKGEOLLI'라는 영어로 쓰인 명칭이 들어가 있어 막걸리임에도 불구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심플함을 유지하면서도 나름의 멋을 잘 살린 도안이다.


'씨막걸리 시그니처나인'은 'C 막걸리'에서 음용성을 강조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막걸리로서, 건포도, 주니퍼베리, 누룩, 배, 쌀 등 기존의 재료에 다른 막걸리에서 볼 수 없는 부재료를 섞음으로써 다양한 향과 맛을 담아내었다.


인공감미료와, 향료, 색소, 정제효소 중 어떤 것도 들어가지 않았으며, 깨끗한 풍미와 비교적 순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라고 한다.


재료만 보아선 어떤 맛이 나타날지 짐작할 수 없는 이 막걸리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9도, 가격은 13,000원이다. 현대적인 디자인 막걸리답게 가격 역시 현대적인 모습이다. 375ML 막걸리 한 병의 가격이 13,000원. 언제 이렇게 고물가 시대가 된 것인지. 물론 가격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그랬듯이 맛을 본 후에 할 것이다.

잔에 따른 술은 아이보리 색깔을 선보인다. 보통의 막걸리에 비해 좀 더 진하고 걸쭉해 보이는 느낌이 있고, 누르스름한 빛깔은 마시기 전임에도 기대를 하게 만든다.


코를 가져다 대니 약간의 쌉싸름함을 머금은 막걸리의 향이 흘러나온다. 향이 상당히 특이하다. 산뜻하게 올라오는 냄새엔 미묘한 씁쓸함이 깃들어 있어 봄나물을 연상시킨다. 그 뒤로 포도를 생각나게 만드는 조금의 산미가 따라오고, 이어서 단 맛이 존재감을 풍긴다. 배의 향이 살짝씩 나긴 하나 그리 강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잔을 흔들어 한 모금 머금으면 산미를 담은 술이 혀를 감싸준다. 일반적인 막걸리에 비하여 매끄러운 식감을 가지고 있고, 미세한 입자감이 함께 느껴진다. 단순히 산미만 찾아오는 것이 아닌 단 맛이 비슷하게 막걸리에 담겨 있는 상태이고, 향과 달리 맛에 있어선 배의 풍미가 잘 배어있다고 느껴졌다.


산미와 단 맛을 필두로 한 막걸리의 맛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탄산감이 없어 깨끗하게 퍼져나가고, 술을 입에 넣을 때 단순히 맛만 느껴지는 것이 아닌 향과 함께 다가오기에 받아들이는 풍미가 배가 된다. 여기에 술의 질감이 부드러워 목구멍까지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목 넘김 후에는 약간의 산미와 텁텁함, 거기에 고소함을 남겨 놓고 사라지는데, 한 잔을 깔끔히 마무리 짓기 적합한 여운이라고 생각된다. 여운이 그리 긴 편은 아닌 술이다. 


적당한 바디감에 산미와 고소함이 함께 퍼지는 독특한 풍미가 매력적이다. 새콤달콤한 면을 가지고 있으나 그리 지나칠 정도는 아니고, 다양한 부재료가 들어가서 그런지 확실히 평소에 음주해보지 못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각 재료들의 조화가 잘 잡혀있으며, 기존의 막걸리와 가까우면서도 먼 듯한 느낌을 준다.


9도라는 일반 막걸리에 비하여 높은 도수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막걸리보다 도수가 높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알코올의 역함이나 독함, 혹은 높은 도수가 주는 주감에 대한 부담을 잘 다듬어 놓았다. 그 상태에서 산뜻함을 간직한 단 맛과 산미가 퍼져나가기에 맛에 있어선 크게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산뜻한 약초가 생각나는 향 때문에 이 부분이 약간은 양부를 논할 수 있지 않을까.


평소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하면서도 낯설지는 않을 맛이다. 주니퍼베리, 건포도 등 평소 느껴보지 못한 부재료들이 신선한 풍미를 가져다주고,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산미 역시 보통의 막걸리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면들은 '씨(C) 막걸리 시그니처나인'만의 매력을 만들어 마시는 사람에게 선사한다.


만약 구매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피자를 추천하고 싶다. 이제는 치맥이 아닌 피맥이 유행한다고 하던데, 딱 그 맛에 어울리는 막걸리가 아닐까 싶다. 



'씨막걸리 시그니처나인' 나에겐 무난한 듯 무난하지 않은 술이었다. 'C막걸리'의 모토를 보면 현재와 전통을 융합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막걸리의 디자인과 맛을 보니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맛을 느끼고 싶지만 너무 낯선 맛은 싫어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이 톡특하면서도 매력적인 향미는 당신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쌉싸름한 향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양한 재료의 맛을 녹여낸 '씨막걸리 시그니처나인'의 주간 평가는 3.5 / 5.0이다. 입 안에서 퍼지는 수채화는 스며들기 딱 적당하였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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