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간일기 Aug 13. 2023

아름답고, 섬세하며, 고요한 한 잔.

- 과천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청명함, '과천미주' 를 음주해보았다.

경기도 과천시의 남태령옛길 쪽을 향하면 모던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양조장 하나를 볼 수 있다. 과천시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과천도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무려 200명이 함께 참여하여 설립한 지역 공동체 양조장이다.


교육, 체험, 시음 등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설 등을 갖추었고, 근처 지하철 역에서도 걸어서 긴 시간이 걸리지 않기에 접근성까지 좋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몇몇은 출시부터 대형마트에 납품이 되고 있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여기서 태어난 술이 얼마나 유명한 것인지, '뉴이스트'라는 아이돌까지 와서 막걸리 제조법을 배우고 갔다고 하는데, 뭐 이런 정보까지는 약간 TMI이긴 하지만 그래도 빠르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확실 것 같다.


여하튼, 이런 곳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오늘은 '과천도가'의 여러 술들 중에서 하나, '과천미주'를 준비해 보았다. 양조장의 이름과 과천시의 이름이 그대로 박혀있는 술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서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겠다.


과천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청명함, 과천미주

단아하다. 병의 모양이 그렇다.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병에는 그 어떠한 글씨도 써져 있지 않다. 오직 길게 붙어있는 종이 한 장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구태여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는다. 이런 식의 술병 디자인은 처음 보는 것이지만 외외로 느낌이 나쁘지 않다. 병의 모양 자체가 우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안으로 비치는 술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인지. 물에 비치는 달이 떠오르는 듯한 풍경이다.


'과천미주'는 '과천도가'에서 100% 우리 쌀인 경기미 햅쌀로 빚은 막걸리로서, 지게미를 줄여 청명하고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술이다.


충분한 발효 숙성을 하였기에 숙취가 적고 안정적이어서 오래 두고 마실 수 있으며, 쌀 고유의 풍부한 풍미와 함께 맑은 샘물처럼 감미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일체의 감미료 역시 일절 사용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 맑은술의 용량은 500M, 도수는 9도, 가격은 9000원이다. 요즘 하도 비싼 가격을 많이 봐서 그런지 아직 마시기 전임에도 그리 값이 나간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당연히 그만큼 내 지갑이 배고파하고 있긴 하다만, 어쩔 수 없다. 견뎌야지. 뭐 이런 생각도 또 맛을 보고 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긴 하지만.

원래 과천 미주는 처음에는 위쪽의 맑은 부분을 먹고,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쯤에 흔들어 청탁의 매력을 즐기면 되는 술이다. 나는 처음부터 섞어서 마셨을 때의 느낌이 궁금하여 병을 흔든 뒤 따랐고, 잔에 따른 술은 옅은 노란색을 띠게 되었다. 마시기 전에 색만 보면 참 달콤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도 그냥 단 것이 아닌 산미가 포함되어 톡톡 튀는 달콤함 말이다.


코를 가져다 대니 달콤한 쌀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알코올의 향이나 씁쓸한 느낌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약간의 산미를 머금은 누룩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참외나 멜론 등의 과실의 미미하게 느껴지고, 예상보다 부드러운 향이라고 생각된다. 향이 끝날 때쯤에 미세하게 밀의 냄새가 다가온다.


한 모금 마시면 달콤 씁쓸한 막걸리가 혀를 감싸준다. 처음 혀에 맞닿을 땐 단 맛을 선보이고, 곧바로 요구르트를 생각나게 만드는 산미가 살짝 혀를 건드린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고운 주감을 가지고 있으며, 단 맛과 산미, 그리고 감칠맛이 매력적인 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맛에 있어선 향보다 비교적 알코올의 비중이 크게 느껴진다. 물론 대놓고 알코올이 느껴지냐고 묻는다면야 당연히 그것은 아니지만, 씁쓸함이 감도는 것이 도수가 9도는 맞는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후 술은 탄산이 없기에 그윽하게 목구멍을 빠져나가며, 목 넘김 이후에는 조금의 산미와 달콤함을 남겨 놓고 사라진다. 이때 과실의 향 역시 코에 슬며시 발을 얹었다가 사라지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 꽤나 괜찮다.


약간 가벼운 무게감에 부드러운 쌀의 풍미를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묵직한 막걸리에 탄산감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겐 박수를 받기 힘들지만, 반대로 조용히 입 안에 스며드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술이라고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도 매력적이었다. 곱게 들어와 과실이 주는 듯한 단 맛을 풍기고, 산미를 슬쩍 두고 가는 마무리까지 괜찮은 맛의 순서였다. 도수가 주는 씁쓸한 맛이 살짝 걸리기는 하다만, 오히려 나에게는 너무 음료수 같은 느낌이 아니라서 좀 더 좋게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술의 조화와 특별히 맛이 튀지 않아 얼굴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것 역시 가점 요인이다.


가만히 술을 놔뒀다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에 음주하였을 때의 맛은 막걸리보단 청주에 근접했다. 탁한 것이 없어졌기에 한 층 술은 가벼워지고 깔끔해졌으나, 맛이 미미하고 그 미미한 상태에서 도수가 느껴지기에 흔들어 음주하는 것이 내 취향에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양념갈비, 매운탕, 도미찜 등을 추천한다. 술의 맛이 적당히 달콤하고 부드러워 보통의 안주라면 다 좋을 듯하다만, 확실히 한식 쪽이 괜찮을 것이다. 


'과천미주', 이름다운 맛을 가지고 있는 술이다. '과천미주'의 '미주'에는 '쌀, 아름다움, 섬세한' 등의 뜻이 담겨있다고 하는데, 한 모금 음주하고 나니 그렇게 쓰인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알코올의 맛은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알코올이 주는 씁쓸한 느낌을 너무 싫어한다면, 주변 사람이 구매하였을 때 한 잔 정도 먼저 맛을 보길 바란다.


과천에서 태어난 '과천미주'의 주간 평가는 3.6 / 5.0이다. 달콤했고, 씁쓸했고, 부드러웠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평 잣 생막걸리, 그리고 그 다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