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월 아래 오미자와 산수유가 아른거린다, '황진이'를 음주해보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황진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이름을 아는 이유는 '황진이'가 조선시대 기녀로서 유명한 것도 있겠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트로트의 인기가 굉장히 좋기 때문이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처음 '황진이'라는 이름을 듣게 된 것은 이 노래를 통해서였으니까.
뭐 어떻게 알게 되었든 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황진이'는 기녀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용모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름다운 얼굴을 비롯해 성리학 학문적 지식이 해박하였으며, 시도 잘 지었고, 심지어 그림에도 능한 모습을 보여 팔방미인으로 불렸다. 용모도 빼어난 사람이 재주까지 좋았으니 그녀를 한 번 만나 보겠다는 사람이 아주 줄이 섰다고.
여하튼, 갑자기 내가 이런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굉장히 단순하고도 당연한 이유이다. 오늘 가져온 술의 이름이 바로 '황진이'이기 때문. 도대체 어떤 맛과 향을 가지고 있기에 이리 매혹적인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인지,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겠다.
홍월 아래 오미자와 산수유가 아른거린다, 황진이
이름답게 병의 모양 역시 심상치 않다. 노오란색과 부드러운 진홍색이 수놓아져 있으며, 그 근처를 장식하고 있는 꽃과 여러 문양은 전통의 미를 한층 더 살려준다. 파스텔톤으로 번져 있는 색 위로 피어난 '황진이'라는 술의 명칭 역시 병에 어울리는 글씨체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름의 무게가 있기에 어떻게 나타냈을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번잡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든다.
'황진이'는 '술소리'가 전통 기법으로 빚은 토속 민속주로서, 좋은 쌀과 지리산 자락의 오미자와 산수유, 거기에 구기자를 더하여 만들어졌다. 오미자와 산수유가 스며들어 엷은 붉은색을 띠며, 단 한 방울의 주정도 섞지 않는 특허받은 제조 방법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이 매혹적인 술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12도, 가격은 3800원이다. 요즘 하도 비싼 술들이 많이 출시되어서 그런지 375ML에 3800원이라는 가격은 사실 그렇게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만약 아름다운 이름만큼의 맛을 보여준다면, 흔히 말하는 가성비는 아주 차고 넘칠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로 '황진이'는 '2007년 전통주 품평회 대상', '제1회 대한민국 주류품평회 금상', '2012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최우수상', '2016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약주청주 부문 대상' 등 수 많은 수상이력을 가지고 있다.
잔에 다른 술은 고요하며 엷은 붉은색을 자랑한다. 약간의 주황빛이 감돌고 있고, 은은하니 부드러워 보이는 질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병과 같이 톡 떨어뜨린 물감 한 방울이 서서히 번진듯한 모습이다.
향을 맡아보니 약재가 섞인 향이 그윽하게 흘러나와 코를 적신다. 약주 특유의 씁쓸한 향이 살짝 튀어나와 있으며, 그 뒤를 상큼함과 달콤함이 뒤따라 온다. 산수유, 오미자 등 약재가 지닌 건강한 냄새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리 나쁘지 않게 다가올 조합이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으면 달콤 씁쓸한 맛이 혀를 감싸준다. 향에 비해서 확실히 단 맛이 강하고, 한 차례 단 맛이 치고 나온 후에야 씁쓸함이 느껴지며, 그 뒤를 이어 산미가 찾아온다. 단순한 단 맛이 아닌 오미자라는 과실의 맛을 필두로 하여 약재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예상보다 크게 튀어나온 맛이 없어 술을 마시는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탄산 없는 부드러운 주감을 가지고 있기에 술은 그대로 목구멍을 곱게 넘어간다. 목 넘김 이후에는 단 맛과 씁쓸함, 약재의 향을 남기고 사라지는데, 마지막에 남는 산미는 꼭 요구르트의 여운과 비슷하다. 달콤함으로 들어와서 '황진이'가 가진 맛의 정체성을 남기고 떠나는, 부족하지 않은 마무리이다.
술 자체는 적당한 바디감을 지니고 있으며, 단 맛 위주로 퍼지는 풍미가 특징이다. 향만 맡았을 때에는 사람에 따라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한 잔 음주를 해본다면 반의 반절 정도로 반감을 가졌던 사람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12%라는 나름의 도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맛에서 알코올의 향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 역시 큰 장점이다.
얼마 전에 음주하였던 '장수오미자주'와는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장수오미자주'가 입문주였다면, '황진이'는 입문주의 다음 단계, 혹은 바로 그 다음 단계 정도로 느껴지는 술이다. 단 맛에 집중을 하고 있으면서도 약재의 향과 씁쓸함을 놓치지 않았으며, 그 씁쓸함을 잡고 있음에도 지나치지 않아 음주를 편하게 만들어준다.
술이 곱고 조화가 좋아서 개인적으로 꽤나 만족스럽다. 특히 가격이 3800원으로서 최근에 음주하였던 술들 중 가장 저렴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맛들의 어우러짐이 좋아 '오미자'의 '오미'를 모두 간직하고 있는 풍미는 이 술이 왜 여러 번 상을 수상하였는지 말해주는 듯하였다.
약주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술이기에, 만약 관심이 간다면 한 번쯤 음주해보길 바란다. 건강한 느낌을 가진 약주이긴 하나 입 안을 스며들듯 퍼지는 '오미'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소고기 구이나, 장어구이를 권하고 싶다. 술의 맛이 달콤하며 새콤 씁쓸하기에 저 둘과 함께 즐긴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술자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황진이', 오미의 어울림이 마음에 드는 술이었다. 산수유와 구기자, 오미자의 맛의 배합이 좋아 전혀 방해되는 것 없이 음주할 수 있었다.
구매 시 고려할 것이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약 1000원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큰 금액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비율로 치면 20% 이상이 되는 것이니 기분 좋게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잘 살피고 구매하는 것을 권한다.
어여쁜 이름을 가진 '황진이'의 주간평가는 3.7/5.0이다. 고운 이름으로 아름답게 어우러지더라.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