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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Aug 21. 2023

하얀색 수묵화를 입 안에서 그려내다

- 요거트의 질감이 무겁게 스며든다, '하드포션'을 음주해보았다.

최근 막걸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겨 내용물만 다르던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 출시되는 막걸리는 외관부터 상당한 차이점을 선보인다. 비교적 이전 세대에 태어난 술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였다면 지금은 그 반대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다르고, 특별해야 눈에 띄고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 내가 가져온 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드포션', 이름부터 굉장히 독특하다. 우리가 게임에서 간신히 접할법한 단어인 '포션'을 막걸리의 명칭에 집어넣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전통주에 잘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단어를 듣자마자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팔팔 막걸리'로 유명한 '팔팔 양조장'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조그마한 친구가 과연 어떠한 맛과 향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겠다.


요거트의 질감이 무겁게 스며든다, 하드포션

앙증맞다. '하드포션'이라는 이름답게 외관 역시 'RPG'게임에서 볼 수 있는 '포션'과 유사하게 만들어 놓았다. 한 손에 들어올만한 크기와 형태, 입구를 막고 있는 코르크형 마개, 거기에 전면부에 보이는 'HARD POTION'이라는 이름까지. 어느 하나 우리가 옛날부터 가지고 있는 막걸리의 이미지를 갖다 붙이긴 어려워 보인다.


'하드포션'은 '팔팔양조장'에서 특등급의 김포금쌀만을 이용해 탄생시킨 막걸리로서, 이양주로 빚어내고 가수하지 않아 높은 알코올 도수와 함께 진하고 묵직한 질감을 자랑한다.


입에 머금으면 크림과 같은 질감 속 과실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며, 높은 알코올 도수의 존재감이 느껴지긴 하나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기에 비교적 편안하게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이 귀여운 술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14.3도, 가격은 20,000원이다. 일반적인 막걸리에 비하여 다른 외모답게 가격과 도수가 심상치 않다. 14.3도에 20,000원 이라니, 도수는 웬만한 소주와 비슷하며, 가격은 위스키가 떠오른다. 한 병에 20,000원 이라니.. 아무래도 술을 모두 이야기하기 전에 내 통장 잔고가 먼저 0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잔에 따른 술은 약간 진한 우유색을 선보인다. 흘러들어오는 질감이 굉장히 걸쭉한 것이, 근래 음주했던 막걸리 중에선 가장 짙은 편처럼 보인다.


코를 가져다 대니 멜론, 참외가 떠오르는 과실향이 흘러나온다. 냄새가 확실히 달콤하다. 어느 정도 도수가 있는 친구라 알코올의 향이 강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 외로 역하거나 독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쌀과 조금의 산미, 그리고 달콤함으로 이루어져 있는 향이 코를 감싼다.


이어서 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으면 달콤한 술이 묵직하게 혀를 감싼다. 산미와 과실의 단 맛, 미세한 입자감에 더하여 약간의 씁쓸함과 크리미한 질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에 들어오자마자 풍부한 풍미와 정말 상당한 무게감을 같이 느낄 수 있다.


처음 입에 머금을 땐 달콤함과 산미가 먼저 느껴졌다가, 이후 한 박자 늦게 알코올의 맛이 찾아온다. 14.3도면 막걸리 치고는 상당히 높은 도수임에도 불구하고 향과 같이 맛에 있어서도 불편하지 않도록 알코올을 잘 다듬었다고 생각된다. 산미에 비하여 단 맛이 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고, 요거트 같은 질감은 혀를 끈적하게 늪처럼 잡아채면서 내려간다. 주감 자체는 곱기에 목구멍까지의 과정은 나름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듯하다.

목 넘김 이후에는 알코올의 씁쓸함과 단 맛을 남기고 사라진다. 눅진한 주감 덕분인지 여운은 꽤나 길게 남으며, 이 때는 다른 과정보다 비교적 쌉싸름함이 좀 더 진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하여 14.3도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고, 한 10도 정도나 되지 않을까. 목을 살짝 뜨겁게 만드는, 여하튼 꽤 괜찮은 마무리이다.


여러 번 잔을 반복하면서 드는 생각이 겉모습만큼이나 보통의 탁주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맛은 아니다. 막걸리 중에서도 굉장히 묵직한 요거트의 질감과 포도껍질의 산미, 참외의 단 맛과 더불어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도수,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와 고운 질감까지. 각각의 요소들을 따로 말한다면 다른 술에서도 충분히 맛볼 수 있겠으나, 한데 모아 놓으니 확연히 느낌이 다르다. 특히나 찐득하게 스며드는 주감은 아무 데서나 맛보기 힘든 고풍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막걸리를 음주하고 싶다면 한 번쯤 음주해 보기 딱 좋은 술이다. 문제는 가격이 비싸다는 것과, 높은 도수 때문인지 확실히 취기가 타 막걸리에 비하여 강하게 다가온다. 만약 자신이 금방 취하는 스타일이라면 천천히 텀을 두고 마시거나 얼음을 몇 개 넣어 온더락으로 즐기길 바란다. 


참고로, 얼음을 추가하여 마신다면 알코올이 옅어지고 술이 가벼워지나 본연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느낌이 있다. 때문에 알코올에 약하다고 하더라도 한 잔 정도는 원액으로 마시고 그 뒤에 온더락으로 음주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만약 음주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양념갈비나 궁중떡볶이를 추천한다. 술 자체가 묵직하고 부드러워서 짭조름한 음식과 함께 한다면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느껴진다. 


'하드포션', 쌀의 풍미와 묵직한 질감, 쉽사리 맛 볼 수 없는 맛의 향연은 나에게 상당히 만족스러운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잔을 들수록 취하는 느낌도 좋고, 크리미하게 혀를 감싸주는 술도 좋다.


구매할 생각이 있다면 판매처마다 가격이 상이하니 잘 살펴보고 사길 바란다. 원가가 20,000원이지만 10%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함박눈이 혀에 닿는 듯한 '하드포션'의 주간 평가는 3.9 / 5.0이다. 중후한 막걸리는 묵화처럼 혀에 번져간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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