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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Sep 07. 2023

서양의 재료에 동양의 옷을 입히다

- 동서양의 절묘한 만남, '오 마이 갓 탁주'를 음주해보았다.

오늘은 술을 둘러보다가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탁주가 있어 하나 들고 왔다. 의도치 않게 최근 또 탁주를 자주 마시는 듯 하지만, 눈에 띄는 술이 있으면 마시고 싶고, 특이한 술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애주가의 마음 아니겠는가. 


'오 마이 갓 탁주',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단 보자마자 나의 눈에 들어온 이유를 먼저 말하자면, 신기하게도 전면부가 굉장히 허전하다. 보통 그동안 이야기해 왔던 술들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주류는 전면부에 둘러진 띠지를 통해 이름을 포함한 술의 정체성을 집중하여 나타낸다. 하지만 '오 마이 갓 탁주'의 경우 그곳에 보이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서정적으로 그려진 갓이다.


탁주의 기본적인 명칭도 이름도 없이 덩그러니 놓인 갓 하나. 도대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렇게 특별한 탁주는 어떤 맛과 향을 가져다줄까. 더 이상 궁금증을 차지 못하겠으니 빠르게 뚜껑을 열어 마시면서 같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동서양의 절묘한 만남, 오 마이 갓 탁주

알 수 없다. 다양한 술의 디자인을 보았지만 이렇게 '갓' 하나만 떡하니 놓여 있는 모습은 처음이다. 이 술의 이름이 '오 마이 갓' 탁주라는 것도 뒷부분의 제품 설명란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병 자체는 요즘 프리미엄 막걸리들이 주로 쓰는 외관을 하고 있으며, 안으로 살구색을 띠는 술의 빛깔이 돋보인다. 곱고 잔잔하게 잠들어 있는 것이 탁주에서 흔하지 않은 색깔이라 상당히 기대가 된다. 디자인이 대단히 어떻다고 말하긴 힘드나, 적어도 나의 이목을 끈 데는 확실히 성공한 것 같다.


'오 마이 갓 탁주'는 '삼양춘'과 '미쉐린 1 스타 에빗 레스토랑 조셉 리저우드'와 콜라보하여 탄생한 막걸리로서, 이름은 'oh my god'이 아닌 'oh my gat'을 의미한다. 전면부에 보이는 갓 그림 역시 에빗의 조셉 셰프가 직접 그린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갓이라고.


특상품의 청도 햇 모과와 호주의 슈퍼푸드로도 알려진 타스마니안 지역의 페퍼베리가 어우러져 독특하고 환상적인 풍미를 자아내며, 술 자체만으로도 잘 만든 요리를 먹는 것과 같아 훌륭한 맛과 함께 만족감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이 독특한 술의 용량은 500ML, 도수는 10도, 가격은 23,500원이다. 한 병 가격이라고 생각했을 때 사실 부담되지 않을 수가 없는 값이다. 아무리 만 원 이상의 전통주가 판을 치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 가격이면 맛있길 바라는 소망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잔에 따라진 술의 색깔은 병 안에 있을 때 보다 더욱 돋보인다. 자주색과 살구색의 중간정도를 선보이며, 술을 따를 때의 느낌은 그리 걸쭉하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모과야 몇 번 먹어 본 적이 있어 어떤 맛과 향을 가질지 대충 알고 있지만, 페퍼베리는 어떤 향미를 가져다 줄지 예상이 잘 가지 않는다.


몇 번 흔들어 코를 가져다 대보니 기존의 막걸리에서 느끼지 못했던 상당히 오묘한 향이 올라온다. 모과향에 더해지는 새콤하면서도 씁쓸한 꽃잎 향, 거기에 코를 싸하게 만드는 시나몬 향이 다가온다. 그 뒤로 약간의 박하향이 감돌고, 솔잎이 떠오르는 느낌으로 마무리된다.


향이 확실히 낯설다. 약간의 달콤함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보통의 막걸리에서 맡기 힘들기에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냄새이다. 쉽사리 접할 수 없어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맡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니 막걸리가 탄산감 없이 부드럽게 혀를 안아준다. 주니퍼베리에 달콤함과 산미, 계피와 약간의 씁쓸함을 지니고 있으며, 질감 자체는 걸쭉하기보단 가볍게 흐르는 편이다. 

그러한 향을 가지고 있기에 어느 정도 예측은 했지만, 맛 역시 절대 낯익지 않다. 그나마 나에겐 괜찮았던 것이 '주니퍼베리'로 만들어진 탁주를 이전에 먹어본 경험이 있어서인데, 만약 '주니퍼베리'의 맛을 모른다면 새로운 맛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이 맛이 낯선 사람들에게 그나마 희소식인 것은 이러한 재료들의 맛이 크게 방해될 만큼 강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입 맛을 돋우는 적당한 단 맛과 슬며시 자리 잡은 산미, 시나몬이 생각나는 씁쓸함이 차례로 흘러 들어오며, 재료들의 풍미는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함을 선사하는데에서 그친다. 다양한 재료가 주는 감미는 입 안을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고, 조화롭게 혀를 넘어간다.


막걸리 치고 높은 도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알코올의 향미 역시 잘 느껴지지 않으며, 고운 주감을 가지고 있어 목 넘김까지의 과정 역시 가볍다. 여운으로는 모과향과 단 맛, 그리고 쌉싸름함을 남긴 뒤 사라지고, 외외로 길지 않게 깔끔히 날아갑니다.


가벼운 무게에 특유의 매력적인 풍미를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첫맛에선 낯설지만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익숙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그 달콤한 농밀함이 점점 자신을 적셔가는 것을 알게 된다. 재료들을 보면 '모과', '히비스커스', '고구마', '마운틴페퍼베리' 등 전반적으로 차에서 볼법한 원료들이 많다. 자신의 취향이 이러한 재료들에 잘 맞다고 생각되면 한 번쯤 음주해 보길 바란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낚지 볶음, 떡갈비 등을 추천한다. 달콤하고 고운 술에 한식을 곁들인다면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오 마이 갓 탁주', 확실히 새로웠다. 흔하게 맛볼 수 있는 멋매가 아니었으며, 다양한 재료들에서 나오는 풍부한 맛은 입 안을 꽉 채우기 충분하였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15% 정도 난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23500원이라는 가격을 가지고 있어 15%면 만 원대로 떨어지는 꼴이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오 마이 갓 탁주'의 주간 평가는 3.5/5.0이다. 신비롭고 다양한 맛의 향연이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차린.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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