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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Oct 24. 2023

대나무 잎이 계곡을 타고 흐른다

- 대나무가 전하는 그윽한 풍미, '대잎술'을 음주해보았다.

사군자(四君子), 우리가 흔히 매(梅), 난(蘭), 국(菊), 죽(竹)을 부를 때 쓰는 단어이다. 각각 높은 기상과 품격을 가지고 있어 '군자'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고, 선비로서의 지조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던 유교 사회에서 '사군자'는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식물들이었다.


이 중 특히나 대나무는 '절개'를 상징하였는데, 특유의 단아한 정취와 품격은 많은 문인고사들의 찬사를 자아냈으며, 그 고결한 아름다움은 그들의 다양한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시 등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은 예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문화로도 뻗쳐나갔고, 그렇게 대나무의 격식을 담은 '대잎술'이 탄생하게 되었다.


'대잎술', 명인의 손에서 아름다움을 녹여내어 만들어진 작품은 어떠한 맛과 향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대나무가 전하는 그윽한 풍미, 대잎술

상당히 은은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술이다. 병 자체의 모양은 다른 전통주들과 큰 차이가 없지만, 뚜껑의 색깔과 그 아래로 보이는 술의 색, 아래에 위치한 단아한 대나무의 모습까지. 전체적인 조화에 있어서 상당히 신경을 쓴 것처럼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전면부를 보면 대나무뿐만 아니라 고양이처럼 생긴 친구도 하나 확인할 수 있다. 처음 볼 때는 이 생물이 무언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 아래 적힌 '삵이 훔친 천년의 술'이라는 문구를 보고 나니 아마 저 검은 것이 '삵'이 아닐까 싶다.


'대잎술'은 '추성고을'에서 식품명인인 '양대수 명인'이 만든 술로서, 일곱여 가지의 한약재가 들어가고 저온 숙성을 하여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100% 국내산 쌀로만 빚었으며, 대나무통에서 2차 숙성을 거쳐야 비로소 향과 맛이 녹아 있는 대나무의 풍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대잎술'은 2020년 청와대 명절선물로 선정된 이력을 가졌다.


이 술의 용량은 300ML, 도수는 12도, 가격은 5000원. 처음 술을 접할 때만 하더라도 한 병에 5000원이란 소리를 들으면 좀 비싸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지금은 어째 상당히 괜찮은 가격처럼 다가온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잔에 따른 술은 약간의 밝은 노란빛을 선보인다. 달빛을 비추는 강물 같은 분위기이다. 노랗게 물들인 색은 보고 있는 것 만으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코를 가져다 대니 약주 특유의 건강한 향이 잔을 타고 올라온다. 대통에 숙성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7가지의 약재가 들어가서 그런지 완전히 깔끔하기보다는 확실히 씁쓸하고, 구수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만약 여기서 조금 더 향이 지나쳤다면 쿰쿰한 형태를 가져다주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딱 적정선에서 멈추어 은은하게 다가온다. 약주 특유의 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크게 거부감은 없을 듯하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부드러운 술이 혀를 감싸 안아준다. 향과 다르게 맛에 있어선 씁쓸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고운 질감에 약간의 달콤함을 머금고 있으며, 쓴 맛보다는 단 맛을 중심으로 맛의 방향이 진행된다.

곡식의 달콤함과 고소한 풍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향에 있어서 약주의 느낌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어 맛에 있어서도 양부가 갈릴까 걱정했지만, 그런 생각을 눈 녹듯이 씻겨내려 주는 맛이다. 감미, 산미, 고소함, 대잎향 등이 그윽하게 자리 잡았고, 혀에서부터 목구멍까지의 과정이 전혀 방해 없이 샘물처럼 흘러간다.


목 넘김 후에는 산미와 달콤함, 그리고 약재의 구수한 향을 코에 남기고 사라진다. 맛보다는 향이 오래 남아 있는 술로서 '대잎술'이 가진 고유의 매력적인 여운을 향으로 마무리 짓는다.


조화로운 향미가 장점인 술이라고 생각된다. 각각의 맛들이 튀는 것 없이 어우러져 있으며, 12도라는 도수가 그렇게까지 낮은 도수가 아님에도 알코올은 전혀 없는 것처럼 풍미를 퍼뜨린다. 곧기만 한 줄 알았던 대나무가 이렇게 부드럽다니, 약주를 싫어하는 사람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을 듯한 술이다. 물론 어느 정도 향을 빠르게 건너뛰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겠지만.


이전에 대나무 술이라고 하여 비슷한 방향의 술을 음주한 적이 있는데, 그 술보다는 조금 더 자신만의 풍미를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다만 '대나무술'의 경우는 향과 맛이 굉장히 은은하여 약점인 것과 동시에 진입장벽이 낮다는 장점이 되었지만, '대잎술'은 특유의 약재 향이 자리 잡고 있기에 진입장벽은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맛에 있어선 좀 더 자신의 느낌을 선보이는 '대잎술'이 괜찮게 느껴졌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한식을 추천한다. '낙지볶음', '떡갈비' 등의 음식과 함께 한다면 좋은 어우러짐과 함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대잎술', 이름 그대로 대나무 잎 한 장을 띄어놓은 듯한 술이었다. 약재의 향에 있어선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으나, 부드럽고 조화롭다는 것은 누구나 부정하기 어려울 맛이다.


보통 이렇게 판매처가 여럿 있는 술은 가격이 조금이라도 다르기 마련인데, 이 술은 가격 차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어디서 구매하든 같은 값이니 고민 없이 사도 될 듯하다.


혀에서 떠다니는 '대잎술'의 주간 평가는 3.6/5.0이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대잎이 떠오른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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