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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Nov 29. 2023

강산이 바뀌는 동안 잠자고 있던 술의 솔직한 이야기

-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십 년의 세월, '솔직'을 음주해보았다.

술에 있어서 세월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가치 중 하나이다. 몇몇 와인이나 위스키만 보아도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숙성했느냐에 따라 술이 가진 그 향미가 달라지기에, 당연하게도 가격 역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오늘 가져온 술은 이러한 시간을 10년이나 간직하고 있는 증류주이다. 와인이나 위스키에선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숙성 연도이지만, 사실 증류주에서 10년은 상당히 드문 편이기에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 이렇게 들고 오게 되었다. '솔직', 박흥선 명인이 우연하게 빚어낸 이 술은 과연 어떠한 맛과 향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십 년의 세월, 솔직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병은 전반적으로 금색과 검은색으로 나타나 있다. 육각기둥의 모양을 띈 병과 빛나듯이 적혀 있는 '솔송주의 품격, 솔직' 거기에 더하여 그 아래로 쓰인 'LIMITED EDITION'이라는 문구는 이 술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한정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꽤나 무난히 만들어진 모던한 디자인이라고 생각된다. 아쉬운 것은 기존에 판매되었던 솔송주나, 담솔에 비해선 그 특별함이 좀 덜하다는 것. 확실히 술의 정체성보다는 프리미엄이라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한 도안이라는 느낌이 든다.


'솔직'은 '솔송주'의 '박흥선 명인'이 만들어낸 술로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 우연하게 탄생한 증류주이다. 2013년 7월, 박흥선 명인은 담솔보다 낮은 25도의 증류주를 만들기 위해 쌀로 빚은 발효주를 증류하여 놔두었다. 그런데 너무 바쁘게 지내다 빚어내지 못하고 보관만 해 놓았고,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술을 꺼내보게 된 것이다.


긴 세월을 거친 술은 깊고 부드러운 풍미를 지닌 맛 좋은 작품이 되어 있었으며, 우연히도, 정말 우연히도 태어난 가치를 가진 술이기에 명인 스스로도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만들어서 같은 맛을 낼 자신이 없다고 한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솔직'은 지금 아니면 먹을 기회가 많지 않을 예정이다.


제품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25도, 가격은 21,000원. 적당한 용량에 적당한 도수, 또한 앞서 말했던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이다. 확실히 증류주가 연도 대비 다른 주종에 비하여 저렴하다. 위스키만 되었어도 3배 이상은 매겨져 있을 텐데.

잔에 따른 술은 투명하면서도 고요한 빛깔을 선보인다. 사실 외관 자체는 다른 증류주와 크게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코를 가져다 대니 약간의 화한 느낌과 같이 알코올 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전반적으로 강하게 다가오기보단 코 끝을 간지럽히듯이 안아주며, 한 차례 알코올 냄새가 지난 후에는 포근한 솔 향이 그 끝을 마무리지어준다. 


향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알코올향이 있다고 하나 역함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처음 코를 맞출 때 이후부턴 대부분을 솔 향이 차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산뜻하면서도 시원했고, 조금 달달한 느낌도 있었다. 고량주의 멋도 살짝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니 부드러운 술이 천천히 입 안에 스며든다. 처음 혀에 닿을 때 미세한 단 맛과 함께 순수한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맛매가 슬며시 머물렀다가 빠르게 사라지며, 이후 그 자리를 고운 곡식의 풍미가 대체한다.

25도라는 도수에 비해서 알코올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확실히 덜하다. 향과 같이 역하다는 전혀 들지 않으며, 술을 마실 때 같이 들어오는 솔 향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이전에 음주하였던 '솔송주'와 같이 입과 코를 동시에 즐겁게 만들어주는 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목 넘김 이후에는 특유의 풍미와 향을 조금 남긴 후에 속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피니시가 상당히 깔끔한 편이다. 긴 여운을 끌고 가기보단 '아, 좋다'라고 느낄 때쯤 마무리되어 빠르게 다음 잔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같다. 순수한 증류주에 솔잎을 듬뿍 풀어놓았다.


살짝 가벼운 바디감에 향과 같이 퍼지는 풍미가 매력적인 증류주이다. 깔끔한 알코올의 타격감도 잠시동안 느낄 수 있고, 뒤이어 찾아오는 부드러우며 깔끔한 여운을 솔 향과 같이 겪을 수 있기에 한 번쯤 마실만한 가치가 있는 술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잔에 따르자마자 바로 마시기보단 에어링을 거친 후 음주하면 술이 가진 매력을 좀 더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솔직'의 경우 에어링의 차이가 생각보다 큰 편이니 첫 잔은 따른 직후에, 두 번째 잔은 몇 번 흔들어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마셔보길 바란다.


자신만의 매력을 간직한 매력적인 술이었다. 알코올의 타격감이 첫맛에선 약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직접적인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은 잔을 몇 번 돌린 뒤 마시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회를 추천하고 싶다. 광어도 좋고, 우럭도 좋고, 회 한 점과 함께한 '솔직' 한 잔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시간을 여러분에게 선사할 것이다.


'솔직', 10년의 세월을 이해할 수 있는 술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좋은 맛과 풍미를 지녔으며, 첫 향에선 고량주의 멋도 살짝 지니고 있었다.


판매처에 따라 약간씩 다른 금액을 보여준다. 어느 곳에선 21000원 이상을, 어느 곳에선 20000원 이하를 볼 수 있으니 잘 살펴보고 구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긴 시간을 간직한 '솔직'의 주간 평가는 3.8/5.0이다. 소나무숲 펼쳐진 정자 아래 술 한 잔 노니는구나.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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