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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Dec 01. 2023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그리고 한 잔

- 술 한잔에 사랑과 쓸쓸함과 추억을, '술헤는밤'을 음주해 보았다.

'떼루아'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프랑스어로 토양을 뜻하는 말로써, 와인용어 시점에서 바라보면 와인이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자연환경, 제조법 등 그 총체적인 요소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프랑스에 이러한 '떼루아'가 있다면 한국에는 '천지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좋은 환경과 사람의 손길이 조화룰 이루어야 한다는 뜻으로서, 양쪽의 정성이 모여야 올바른 술이 빚어진다는 소리다.


오늘은 이 '천지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조장에서 빚어낸 술 한 병을 가지고 왔다. '술 헤는 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이 떠오르는 굉장히 낭만적인 명칭이다. 별 하나에 사랑과, 추억과, 쓸쓸함을 담 듯이 '술 헤는 밤' 역시 술 한 잔에 이 모든 것을 담아내는 걸까. 이 서정적인 작품은 과연 어떠한 향과 맛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술 한잔에 사랑과 쓸쓸함과 추억을, 술 헤는 밤

병 자체의 디자인은 다른 막걸리들과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안으로 보이는 색은 우윳빛으로 포근함을 연상시키며, 전면부에 적힌 '술헤는밤'이라는 이름은 그 포근함에 서정적인 공기를 더한다. 


'술헤는밤' 아래에는 'White night', 즉 '백야'라고 적힌 단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도 한것인진 모르겠지만 침전물이 가라앉지 않은 맑은 부분이 하늘 처럼 보이기도 한다. 병을 제외하면 글자체부터 이름, 그림까지 각 요소들이 술의 분위기를 참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술헤는밤'은 '농업회사법인 두루'가 강원도에서 자란 좋은 재료와 깨끗한 물로 빛은 술로서, 전통제조방법으로 만들어낸 누룩을 이용한 막걸리이다.


'어의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을 연구하여 현대 양조 과학의 원리를 접목시켰으며, 물 쌀 누룩만을 사용하였고, 두번 빚는 이양주법으로 진한 풍미와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작품의 용량은 730ML, 도수는 8도, 가격은 6,000원 이다. 용량의 경우는 일반 막걸리와 비슷하고, 도수는 약간 높다고 느껴지며, 가격은 요즘 나오는 막걸리들의 표준적인 값이라고 말할 수 잇겠다. 물론 이 친구는 출시된지 시간이 꽤 흐른 상태이긴 하지만.

잔에 따른 술은 병 안에서 보이던 눈 같은 빛깔을 그대로 선보인다. 얼핏 눈으로 보기에도 참으로 곱다고 느껴지는 색깔이다. 매 번 막걸리를 마실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새하얀 색깔들을 볼 때면 왠지 눈을 떼기가 어려워진다.


코를 가져다 대니 달콤한 곡식의 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고소한 우유향도 살짝 지니고 있으며, 밀과 함께 멜론이 떠오르는 듯한 과실향이 지나간다. 굉장히 몽실몽실한 달콤함이 코를 감싸주는 느낌이다.


이어서 잔을 몇 번 흔들어 한 모금 머금으면 달콤새콤한 막걸리가 부드럽게 입 안을 채워준다. 탄산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딱 우유와 요거트 사이에 있는 질감이 조금 달라붙듯이 다가온다. 술의 달콤함과 산미가 거의 동시에 찾아오며, 달콤함, 산미, 미세한 씁쓸함 순으로 맛의 순서가 자리잡고 있다.


탄산이 없어서 그런지 확실히 목넘김에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볍게 들어와서 가볍게 목구멍을 넘어간 이후에는 포도를 연상케하는 산미로 입을 쩝쩝거리게 만드는데, 외외로 이 느낌이 꽤 나쁘지 않다.

약간의 쌉싸름함은 목구멍의 끝에서 잠깐 머물고, 특유의 향은 코에 잠깐 앉았다가 사라지며, 여운 자체는 깔끔하게 마무리 되어 한 잔의 끝을 지어준다. 한 잔을 끝내자마자 다음 잔을 들이킬 수 있는 술이다.


달큰한 맛에 찐득하다고 하기엔 살짝 부족한 주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적당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지만 술 자체는 무겁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기에 누구나 어려움 없이 마실 수 있는 막걸리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향만 맡아서는 술보다는 음료 같은 막걸리이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확실히 도수가 일반 막걸리보다 높은 것인지 마셔보니 조금이나마 술쪽에 방향이 더 잡혀 있다. 그렇다고 크게 치우쳐져 있다기 보다는 한 6.5:3.5, 혹은 6:4 정도. 단 맛 자체도 당이나 감미료에서 나타나는 달콤함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맛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나 목넘김이 부드러워 크게 질리거나 부담스러움이 없다.


다소 드라이한 산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걸맞는 막걸리라고 여겨진다. 애초에 맛 자체가 큰 호불호가 갈리기 어려워 보이고, 진한 맛 보단 지나치지 않은 적당한 풍미로 간결히 사라지는 술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혀를 잡아채는 질감도 꽤나 매력적이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초무침회'를 추천하고 싶다. 달큰한 '술헤는밤' 한 잔에 상큼한 '초무침회' 한 젓가락은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해줄 것이다.


'술헤는밤', 적절한 산미와 곁들여지는 단 맛이 마음에 드는 술이었다. 사실 술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이 술의이름이었으나, 맛과 향 역시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전혀 없는 술이다. 이 점은 조금 신기했던 것이, 보통 다양한 판매처를 가지고 있으면 어느 하나 정도는 할인을 할만도 한데, '술헤는 밤'은 그런 곳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구매할 경우 눈이 닿는 곳을 고르면 될 듯 하다.


술 한 잔에 감정을 담은 '술헤는밤'의 주간평가는 3.6/5.0 이다. 가볍고 산뜻한 맛이 뭉글하게 지나가더라.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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