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간일기 Dec 04. 2023

2023년 우리나라 최고의 약주

- 술 한 잔에 봄이 찾아오다, '두두물물 약주'를 음주해보았다.

우리나라에는 '우리술품평회'라 하여 각 년도에 최고의 술을 뽑는 자리가 있다. 탁주, 약-청주, 과실주, 증류주, 기타 주류 등 5개 부문에서 진행되며, 각각 부문의 최고의 술을 뽑고, 그렇게 선별된 5가지의 술 가운데서 다시 한번 가장 훌륭한 술을 뽑아 대통령상을 수여한다.


오늘은 이번 연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5개의 술들 중 하나를 준비해 보았다. '두두물물 약주', 이름만 보아도 어떤 부문에서 1등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술이다. 안타깝게도 최고 중 최고라는 영예는 얻지 못하였지만, 술 자체가 굉장히 훌륭하여 언제 그 자리를 탈환하여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최고의 약주는 과연 어떠한 맛과 향을 우리에게 보여줄지,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술 한 잔에 봄이 찾아오다, 두두물물 약주

고급스러우며, 전통적인 멋을 온전히 지닌 모습이다. 사실 병 자체는 다른 술들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 않지만, 병 입구를 감싼 금색의 패키지와 같은 색으로 병 안에서 빛을 내뿜는 약주가 이름 밖에 쓰여 있지 않은 디자인을 한 층 더 고풍스럽게 만들어준다. 


보통 술의 전면부를 보면 그 술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의 용어들이 쓰여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인지 이 약주의 전면부에 보이는 것은 '두두물물 약주'라는 명칭이 끝이다. 하긴 우리나라 약주부문에서 최정상을 차지하였으니, 그 이상의 설명이 굳이 필요할까.


'두두물물 약주'는 '수블가'에서 조선시대 때부터 전북 익산 지방에서 내려온 '호산춘'을 양주방, 임원십육지 등 고문헌을 통하여 복원시킨 전통주이다. 


고문헌 제조법대로 안정된 발효를 위해 전통 옹기인 항아리를 사용하여 100일 이상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쳤으며,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유기농 멥쌀과 유기농찹쌀만을 사용해 맛과 향이 굉장히 풍부하다고 한다. 


2023년 우리술품평회 '약-청주'부문 대상을 수상하였고, 꿀향과 배, 멜론의 과실 향들을 느낄 수 있다. 참고로 '두두물물'은 '모든 만물이 도이고 진리이니 작은 부분 역시 하나의 전체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품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15도, 가격은 24,000원. 비교적 익숙한 용량에 소주보다 약간 낮은 도수이다. 가격은.. 숫자만 봐선 조금 비싼 감이 있긴 하나, 우리나라 최고의 약주라고 생각하면 전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렴한 편에 가깝다.

잔에 따른 술은 약간 진한 레몬빛을 내뿜는다. 병 안으로 보았을 때 보단 좀 더 밝은 색으로 느껴지며, 일반적인 약주에 비해서도 맑다고 생각된다. 


잔에 코를 가져다 대면 달콤한 과실향이 가장 먼저 느껴진다. 참외, 배, 꿀, 멜론, 바나나 등의 향이 코를 간지럽히고 끝 부분쯤에서 약하게 풀잎, 솔방울 등 약주의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향만 맡아서는 약주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술이다. 막걸리 중에서도 굉장히 자연적인 단 맛을 잘 살린 술들이 있는데, 그런 작품에서나 날법한 향을 '두두물물'이라는 약주가 가지고 있었다. 


이어서 잔을 몇 번 흔들어 한 모금 머금으니 달콤새콤한 술이 혀를 휘감는다. 맛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리가 흔히 약주를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약재의 맛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약간의 단 맛이 혀를 슬쩍 건드렸다가 곧바로 상큼함이 찾아와 입 안을 채워 준다. 단 맛보다는 산미가 조금 더 중점이 되어 맛의 방향이 진행되며, 탄산감 없이 부드럽게 목 넘김이 이루어진다.

술이 참 곱다는 생각이 든다. 감미과 산미, 그리고 그 끝에선 약간의 미세한 고미가 감도는 술로서, 15도의 도수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알코올이 주는 역함은 전혀 다가오지 않는다. 목구멍을 넘어간 후에는 씁쓸함과 산미, 잔당감이 남아 여운을 이어주고, 이때 느껴지는 끝 맛은 매실주를 마셨을 때 받는 맛매와 비슷하다.


가벼운 바디감에 과실의 향과 달큼한 풍미를 선사하는 약주이다. 맛이나 향이 호불호가 거의 없을 듯하게 만들어져 '약주'라고 했을 때 본능적으로 드는 거부감을 없애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여겨지며, 개인적으로 지금껏 약주에서 맛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느낄 수 있었다. 향을 맡거나, 맛을 볼 때마다 왜 이 술이 '우리술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간다.


술의 특별함이 맛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향에서도 존재하기에 소주잔에 마시는 것보다는 향을 느낄 수 있는 잔에 마시는 것을 좀 더 권하고 싶다. 한 잔을 들이켜면 특유의 과실향이 코에서 맴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뒤에 곧바로 찾아오는 달큼한 맛과 어우러져 만족스러운 시간을 선사한다. 이 추운 겨울에 술 한 잔으로 봄을 느낄 수 있다니, 이렇게 손해 없는 장사가 있을 줄이야.


만약 누군가 나에게 괜찮은 약주를 하나 추천해주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권할 듯하다. 약재의 맛이 너무 진해 거부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알코올의 맛이 진하게 느껴져 불편한 것도 아니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맛있게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안주는 담백한 음식을 추천한다. 수육이나 소고기 등 자신의 맛이 너무 강하지 않고 담백한 음식과 함께 즐긴다면, 뛰어난 술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육 한 점과 두두물물 약주 한 잔, 참으로 완벽하다.


'두두물물 약주', 향에서부터 맛까지 특별히 흠을 잡을 것이 없는 술이었다. 2만 원대 가격이라면 술 한 병 치고는 비싸다는 생각도 했지만, 맛을 보고 나니 그런 오판이 싹 사라진다.


판매처에 따라 역시나 가격이 조금씩 상이하다. 잘 살펴보고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에서 구매하도록 하자.


봄을 맞이하는 '두두물물 약주'의 주간 평가는 4.3/5.0이다. 한 잔에 꽃이 보이고, 두 잔에 열매가 맺히니, 세 잔에 계절이 바뀌더라.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그리고 한 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