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삵이 건네준 비밀의 향미, '추성주'를 음주해보았다.
'추성고을'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현재 22번째 대한민국 식품명인 '양대수 명인'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장소로서, 담양을 대표하는 양조원들 중 하나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증조부께서 시주를 하고 전수받은 비법이 전해 내려와 현재 양대수 명인에게 까지 이르렀으며, 아버지의 '가업의 대를 이으라'라는 유언을 받아 이 양조장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내가 가져온 술은 추성고을에서 '양대수 명인'이 빚은 많은 술들 중 하나이다. '추성주', 양조원 가장 대표적인 작품임과 동시에 아주 재미있는 전설이 얽혀 있는 이 약주는 과연 어떠한 맛과 향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늙은 삵이 건네준 비밀의 향미, 추성주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분명히 병 모양 자체는 크게 특별하지 않다. 그동안 올려왔던 글들을 보았으면 알겠지만, 이전에도 같은 용량에서 유사한 생김새를 여럿 마주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형태에 더해지는 술과 마개의 색, 그리고 전면부 라벨에 자리 잡은 그림이 참으로 잘 어우러진다. 병의 형태가 다른 것들과 같음에도 '추성주'의 호박빛 빛깔과 폭포가 흘러내리는 듯한 한 장의 화폭은 술에게 멋을 더해주어 그것을 보는 사람 입장에선 하나의 작품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추성주'는 '추성고을'에서 쌀과 멥쌀을 기본으로 구기자, 오미자, 산약 등 10가지의 한약재로 빚어낸 술로서, 22번째 대한민국 식품명인인 '양대수 명인'이 4대에 걸쳐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추성주라는 이름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성종 때까지 250여 년간 추성군으로 불린 담양의 지명에서 따왔는데, 여기에는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당시 '연동사'라는 절에 늙은 살쾡이 몰래 술을 마시다가 절에서 공부를 하던 사람에게 발각되었다. 그런데, 이 놈이 술을 마시다가 죽기는 싫었던 것인지 자신을 살려준다면 일평생 도움이 되는 비밀의 책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그 살쾡이를 찾아낸 인물은 짐승이 건넨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 비밀의 책을 받은 '이영간'이라는 사람이 빚은 술이 바로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추성주이다.
마시면 신선이 된다고 하여 제세팔선주 또는 신선주라고 불리기도 하며, 10가지의 약재와 함께 숙성시킨 뒤 담양의 대표 특산물인 대나무를 이용한 대나무 숯으로 여과해 뒤끝과 술의 개운함을 다시 한 번 다듬었고, 이에 독특하면서도 부드러운 향기와 오감을 자극하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제품의 용량은 350ML, 도수는 25도, 가격은 25,000원. 혼자 마시기 딱 좋은 용량에 적당히 높은 알콜 함유량, 그리고 역시나 긴 전통을 가진 술 가격이다. 사람에 따라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히 개인차 이겠으나, 술을 좋아하는 이라면 어찌 저런 전설을 듣고서 이 작품을 마시지 않을 수 있을까.
잔에 따른 술은 전구를 물아래서 킨 듯한 노오란 색을 선보인다. 옅은 호박빛을 띄고 있는 자태가 참으로 곱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보다 좀 더 진한 모습이며,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약주의 색깔에 가깝다.
코를 가져다 대니 씁쓸한 약초의 향기가 잔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오미자, 구기자 등 보통 이야기하는 한약 냄새가 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고소함과 같이 간장, 숯, 미약한 훈연향이 코 끝에서 맴돈다. 25도라고 하면 사실 어느 정도 알콜향이 다가올만도 하것만, 약재의 냄새에 가린 것인지 그런 부분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향이 부드럽게 약주에 매력을 담고 있다. 보통 이러한 한약의 냄새가 너무 강하게 되면 사람에 따라 향만 맡아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추성주'의 경우 이 향이 그윽하게 코를 감싸오는 것이 약주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도가 적당하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산뜻하고도 깔끔한 약주가 입을 채워준다. 맛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향을 맡음에 있어서 일반적인 약주의 방향을 띄고 있기에 어렴풋하게나마 추성주의 맛 역시 이러한 느낌이 아닐까 하며 짐작하고 있었는데, 한 잔 마시자마자 기대 이상의 고풍스러움이 혀를 건드리며 지나간다.
먼저 약주가 가진 약간의 씁쓸함이 혀에 맞닿는다. 향에서 느껴진 것 보다는 연한 느낌의 고미가 입 안에서 잠깐 동안 감돌고, 이후 산뜻하게 옅어지며 곧바로 누룽지가 생각날법한 구수함이 찾아온다. 질감 자체가 고운 편이기에 혀에서부터 목구멍까지의 과정이 상당히 수월하고, 목넘김 이후엔 이 구수함이 코의 뒷 부분에, 그리고 혀에는 고미가 슬며시 남아 인상적인 마무리를 선사한다.
여운은 즐기기에 충분한 시간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 잔을 반복해도 고소리술이나 안동소주에서 나올법한 구수함이 코와 입 사이에서 맴도는 것이 참 신기하면서도 만족스럽다. 나름 약주를 여러 종류를 음주해 보았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이렇게 적당하게 약주의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깔끔하게 느껴지는 술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살짝 가벼운 바디감에 구수하면서도 씁쓸한 풍미가 입안을 채워가는 것이 정말 예술적이다. 이전에 내가 '두두물물 약주'를 이야기 할 때 약주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술이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추성주'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강한 약주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25도라는 희석식 소주보다 높은 알콜을 가지고 있음에도 알콜의 역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역시 큰 장점이다. 우리가 약주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그 맛을 참 깔끔하게 구현해 냈다. 취한다기보다는 이 친구가 가진 매력에 몸이 젖어들어간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싶다. 앞서 얽힌 이야기를 할 때 몰래 숨어 마신 삵의 기분이 이해가 되는 향미다. 약재의 풍미도 그렇고, 산뜻함과 깔끔함, 구수한 여운도 그렇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그 삵이 아니었을까.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너무 진한 맛의 안주는 곁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떡갈비, 그것도 담양 떡갈비를 함께 한다면 그 날 하루 정말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추성주', 약주다. 맛있는 약주다. 약주라는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지금껏 내가 먹어온 술 중에서는 가장 나았다고 느껴진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상이하다. 애초에 그렇게 저렴한 술은 아니니 잘 살피고 그래도 가성비 있는 가격에 구입하여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삵도 탐낸 '추성주'의 주간평가는 4.3/5.0 이다. 지금 와서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나는 전생에 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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