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바다에 몸을 담그다

- 천년의 세월이 담긴 명주, '삼해소주'를 음주해보았다.

by 주간일기

오늘은 소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는 술 한 병을 들고 왔다. '삼해소주', 삼해약주를 증류하여 만들어지는 이 술은 1년이 지나도 변질이 없어 부잣집이나 양반 계층의 전유물이었다고 한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세 번에 걸쳐 빚어지기에 쌀소비량에 비해 얻어지는 술의 양이 적었고, 이러한 이유로 금주령이 내려지기도 했단다. 심지어 식량이 부족한 때에도 이 삼해주를 만드는데 쌀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고 하니, 예전부터 삼해주가 얼마나 술맛이 좋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과연 이토록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술은 어떤 향과 맛을 보여줄지,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천년의 세월이 담긴 명주, 삼해소주

일단 병의 모양자체는 비교적 단순하다. 증류주를 마시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로서, 금색으로 장식되어 있는 뚜껑이 그나마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전면부에 보이는 라벨의 디자인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삼해소주'라는 술의 이름이 굵고 멋들어지게 한자로 적혀 있으며, 보통 매끄러운 재질을 사용하는 타 양조원들과는 달리 한지느낌이 나는 재료를 이용해 술이 가진 전통의 미를 더하였다. 이 밋밋한 병만 아니었다면 외관에서 주는 감흥이 배는 늘어나지 않았을까.


'삼해소주'는 '농업회사법인 삼해소주'에서 삼해약주를 증류해 빚어낸 술로서,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1년에 약 3천여 병만 생산될 정도로 만들기 쉽지 않은 소주인데, 술이 만들어지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가을에 추수한 햅쌀을 이용해 음력 정월 돼지날 해시에 첫 술을 담근다. 이렇게 담궈진 술을 36일 동안 기다렸다가 2차 덧술을 치고, 그로부터 또다시 36일 기다려 3차 덧술을 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3차 덧술까지 완료했다면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36일을 기다린다. 어마어마한 기간을 거치면 맑은 약주가 태어나고, 이 약주를 또다시 증류해야 비로소 온전한 '삼해소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렇듯 장기 저온발효, 숙성 과정을 거친 약주로 증류하기에 풍미가 굉장히 부드럽고, 뒷맛의 여운이 길며, 구수한 곡향과 누룩향이 어우러져 훌륭한 향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제품의 용량은 250ML, 도수는 45도, 가격은 40,000원. 가볍게 혼술 하기에 상당히 괜찮은 양에 그렇지 못한 도수, 더 그렇지 못한 가격을 가지고 있다. 보통 위스키 한 병이 750ML 정도 되니, 계산을 해보면 12만 원짜리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된다. 정말 가볍지 못한 값이다.

잔에 따른 술은 일반적인 소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고요하고 투명하며, 참으로 깨끗하다. 맑디 맑은 호수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얼굴을 가까이 하니 매우 깨끗한 미네랄 향기가 코를 감싼다. 45도라는 도수에도 알코올의 역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약간의 맵싸함과 갓 구운 빵의 냄새가 섞여있다. 향이 그리 단순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몽글하면서도 포근한 형태를 띄었다가, 끝 부분에선 약간 날카롭게 들어온다. 누룩향과 고소한 곡물 향이 사이사이 맴돌고, 전반적으로 순수한 알콜 냄새가 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짭쪼르름한 술이 혀를 휘감아준다. 소주가 가진 고유의 매력이 아주 확실한 친구이다. 미미한 단 맛과 약간의 짠맛, 거기에 고소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왠지 모르게 머릿속에 따뜻한 소금빵을 떠오르게 만들고, 향과 마찬가지로 갓 구운 빵의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는 술이 부드럽게 입 안을 채워간다. 지금껏 마셔온 증류주들 중 가장 크게 '소금기'를 느낀 친구로서, 고소한 바다 같은 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술 자체가 곱기도 하고 도수에 비하여 알콜이 그윽하게 다가온다. 술을 입 안에 담으면 혀와 코가 동시에 향미에 젖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목넘김 이후에는 코에는 미네랄 향이, 목구멍에는 이 고소함과 짠맛이 남으면서 끝 맛을 가져다준다. 이때 속이 따뜻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몽글한 맛매와 따뜻함이 더해지니 참으로 만족스러운 여운을 선사한다. 여운의 길이 자체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길기에 술을 마시고 눈을 감은 채로 느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살짝 가벼운 바디감에 이 고소한 함미가 입 안에서 정말 인상적인 풍미를 펼친다. 사실 증류식 소주를 마시면서 느끼는 점이 대개 비슷한 방향의 향미로 이루어진 술이 많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삼해소주'의 경우 첫 모금을 들이킬 때부터 '매력적이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술이었다. 분명히 높은 도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장대비가 아닌 안개비처럼 몸을 적시고, 특별한 맛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 맛의 정도가 지나치지 않아 전통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큰 호불호 없이 마실 수 있도록 만든다. 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삼해소주 애호가가 많은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곡물의 바다에 빠지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음주해 보길 바란다. 사실 마시기 전에는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지만, 막상 음주하고 나니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향이나 맛에서 어떻게 이런 몽글한 매력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알딸딸하니 어느새 물이 턱 밑까지 잠겨 있더라.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담백하고 뻑뻑하지 않은 빵, 한식 중에선 떡갈비 정도를 권하고 싶다. 안주보다는 술을 중점으로 하여 즐겨야 되기 때문에, 너무 진한 맛이 음식을 먹는 것을 삼가길 바란다.


'삼해소주', 삼해소주의 다른 시리즈가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것은 이 삼해소주 오리지널이 끝이라 양조원을 방문해야 다른 맛들을 구매할 수 있는데, 이 술이 너무나도 괜찮았던 터라 정말 큰 고민이 된다.


만약 구매할 계획이 있다면 크게는 10%의 가격차이가 나니 잘 살펴보고 구매하는 게 좋을 것이다. 4000원이 절대 적은 금액은 아니다.


1000년의 세월을 담은 '삼해소주'의 주간 평가는 4.4/5.0이다. 세월이 이정도 되니 술의 깊이가 남다르더라.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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