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의 어주가 전해져 내려오다, '진양주'를 음주해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으나 예로부터 어주는 참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가장 좋은 것이 위로 가던 시절 어찌 임금의 술이 훌륭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을 것이며, 가장 훌륭한 솜씨를 가진 사람에 의해 탄생했을 것이다.
오늘은 그런 어주로부터 이어진 술을 한 병 이야기하려 한다. '진양주', 궁중에서 빚어지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이 약주는 과연 어떠한 향과 맛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임금의 어주가 전해져 내려오다, 진양주
기본적으로 병의 모양부터 일반적인 전통주들과 차이점을 보인다. 둥글긴 하나 각진 형태를 띠고 있으며, 용량에 비하여 길고 유려한 직선의 자태를 뽐낸다. 금색으로 장식되어 있는 뚜껑의 아래는 그와 비슷한 빛깔의 술이 채워져 있고, 전면부엔 한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라벨과 그 위에 쓰인 술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라벨을 보면 '무형문화재 25호'라고 적힌 글자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국가 무형문화재가 아닌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를 의미한다.
'진양주'는 '해남진양주'에서 기능보유자 최옥림 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술로서, 찹쌀과 누룩, 유자나무잎을 주원료로 하여 만들어진다. 원래는 궁중에서 만든 양조술이었으며,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의 광산김 씨 집안에 후실로 들어온 최 씨 성의 궁인이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술을 입에 담으면 입 안에 가득 퍼지는 독특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고, 좋은 물을 사용해 목넘김이 부드러워 누구나 편히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진양주'라는 술의 이름은 찹쌀을 진미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되었다.
제품의 용량은 500ML, 도수는 16도, 가격은 15,000원. 혼자 마시기도 좋고, 둘이 마시기도 좋은 용량에 소주와 비슷한 알코올 함유량, 요즘 출시되는 평이한 전통주의 값을 가졌다. 한 병 값으로 생각하면 그리 싸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을 마신다고 하면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잔에 따른 술은 노오란 레몬빛 색깔을 뽐낸다. 살짝 연한 빛깔이 노르스름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 꼭 달빛이 비치는 강물을 바라보는 듯하다. 위로 보았을 때 탁도는 거의 없는 편에 가깝고, 찰랑이는 것을 보니 아직 음주하기 전임에도 매끄러운 주감이 예상된다.
몇 번 흔들어 코를 가져다 대면 꽤나 고소한 곡식향이 잔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아몬드, 땅콩, 마른 잎, 누룽지 등에서 느껴질 법한 고소함과 함께 과실의 향이 슬며시 다가오며, 소주와 비슷한 도수를 가졌음에도 알콜의 역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겉모습만 봐서는 과실의 냄새가 강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구수함이 집중적으로 느껴지는 약주였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니 새콤함을 간직한 술이 혀를 감싸 안는다. 산미와 단 맛이 한 차례 혀를 건드린 후 지나가고, 끝 부분에선 향이 가진 고소함과 약주 특유의 씁쓸함이 미약하게 퍼지며 술을 마무리 짓는다. 코에서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알코올이 주는 향미는 거의 없다시피 하며, 살짝 튀어나와 있는 산미의 주변을 감미가 곁돌면서 목구멍을 넘어간다.
탄산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지 목넘김은 확실히 부드럽다. 상당히 깔끔한 맛을 지니고 있는 친구로서, 적당한 바디감에 균형 잡힌 풍미를 가지고 있어 부담스러움이 같은 도수의 다른 술에 비해 덜하다. 목넘김 이후에는 입을 쩝쩝거리게 만드는 산미가 순간 느껴졌다가 고미와 고소함을 남겨 놓고 사라지는데, 여운 자체가 그리 길지 않고 산뜻해 다음 잔을 빠르게 들기 용이하다.
전반적으로 조화가 굉장히 좋은 친구이다. 산미가 중심이 된다곤 하지만 맛들 중 어느 하나 크게 튀어나온 것 없이 어우러짐이 훌륭하며, 질감이 매끄럽고 깨끗해 술을 잔을 반복하는 것에 거리낌이 전혀 없다. 예전에도 말했던 기억이 있지만 보통 이야기를 하기 위해 술을 마실 때 나는 3분의 1을 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진양주의 경우 술이 워낙에 가볍고 부담이 없기에 글을 그리 길게 쓰지 않았는데도 이미 반은 마신 듯 하다.
순하고 연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술이었다. 코에는 고소함이, 혀에는 산미와 감미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술이 풍미를 펼쳐대니 단점을 크게 찾기가 힘들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조금의 텁텁함이 있는 것 정도. 맛이나 향의 어울림이 좋아 호불호가 갈리기 어려운 술이며, 연함에도 약주가 가진 특성에 더하여 자신만의 매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전통주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마셔보길 바란다. 고미나 산미, 감미 등 맛들을 두루 가지고 있음에도 그러한 풍미가 하나하나 제 역할을 다해주니 한 잔 한 잔이 만족스럽다.
어울리는 음식은 떡갈비, 도미찜, 나물 등 한식류를 추천한다. 향미가 워낙에 균형 잡혀 있어 한식이라면 어떤 음식과 함께 하여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중에서도 떡갈비, 도미찜 등과 함께 한다면 참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진양주', 조화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어주는 역시 괜히 어주가 아니었다. 모든 역사엔 의미가 있고, 진양주 역시 그러했다.
판매처가 다양했다면 좋겠지만 현재 온라인상으론 한 곳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큰 고민 없이 구매하도록 하자.
모난 곳이 없던 '진양주'의 주간 평가는 4.0/5.0이다. 부담 없이 맴도는 어주를 느끼고 싶다면 아주 제격이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