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간일기 Jul 17. 2024

가파도 청보리밭을 추억하며

- 청보리 하나가 수줍게 일렁이다, '가파도 청보리'를 음주해보았다.

제주도를 가본 사람이라면 아마 한 번쯤 청보리밭에 방문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넓게 펼쳐진 푸른 보리밭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함과 상쾌함을 가져다주며, 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기억의 서랍 한편에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아있다. 오늘은 이런 우리의 행복했던 그때를 그대로 이름으로 지닌 술을 한 병 가지고 왔다. '가파도청보리',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이 술은 과연 어떠한 향과 맛을 선보일지, 기대와 함께 잔을 들어보도록 하자.


청보리 하나가 수줍게 일렁이다, 가파도 청보리

상당히 깔끔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묵색과 황금빛 보리색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병의 모습 자체는 이 용량대에서 꽤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전면부에는 '가파도 청보리'라는 술의 이름과 간단하게 그려진 보리의 그림이 나타나 있는데, 이 역시 앞서 말한 것처럼 번잡하지 않은 깔끔함을 강조하여 술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여준다. 라벨의 윗부분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조그마한 보리들이 참 귀여우면서도 매력적이다.


'가파도 청보리'는 '제주왕지케'에서 청보리 축제로 잘 알려진 가파도의 보리를 사용하여 빚은 술로서, 코로 불어오는듯한 고소한 보리의 향기와 함께 입 안을 채우는 감미가 장점이다.


가파도 청보리의 경우 타 지역보다 2배 이상 자라는 제주도의 향토품종이기에 특유의 매혹적인 향미를 느낄 수 있으며, 부드러운 목넘김을 지니고 있어 누구나 편하게 술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제품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20도, 가격은 10,000원. 혼자 마시기에도, 둘이 음주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양에 일반적인 희석식 소주보다 조금 높은 도수, 최근 출시되는 전통주에 비교하면 적당한 금액을 지녔다. 술의 이름과 같이 보리의 향미만 잘 느껴진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잔에 따른 술은 병 안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거의 눈치채기 힘들 정도의 옅은 노랑을 지니고 있다. 정말 큰 호수에 갈대를 한 방울 정도 떨어뜨린 느낌일까. 탁도는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겉으로 보이는 술방울 역시 상당히 매끄럽고 깔끔해 흠잡을 곳이 없다.


이어서 코를 가져다 대니 선선한 보리향이 잔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운 보리의 고소함 보다는 산뜻한 청보리의 향내에 순순한 알코올과 감향이 어우러져 올라오는 상태이고, 생김새와 같이 향 역시 깔끔하여 특별히 튀어나온 부분은 느껴지지 않는다. 풀과 잎새에 더해지는 약간의 단 향은 그윽하게 퍼져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20도라는 적지 않은 도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잘 다듬어진 알콜은 술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듯하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으면 예상보다 달달한 술이 혀를 감싸 안는다. 연한 사탕수수를 떠올리게 만드는 감미와 알코올, 감칠맛이 입 안에서 퍼짐과 동시에 코에는 연한 풀내음이 잠깐동안 얼굴을 내비친다. 단 맛이 살짝 혀를 건드린 후에 곧바로 미약한 알콜의 씁쓸함이 찾아오는데, 이마저도 짧게 끝나니 흔히 말하는 에탄올의 역함을 걱정할 필요는 거의 없지 않나 싶다. 매끄러운 술방울처럼 질감 역시 부드러우며, 미미하게나마 메밀을 연상시키는 끝 맛 역시 나쁘지 않다. 

가벼운 바디감과 함께 달콤 씁쓸한 풍미를 퍼뜨리며 술은 목구멍을 넘어간다. 고운 목넘김 이후에는 감미에 더해지는 순수한 알코올의 고미와, 풀내음을 슬며시 남겨놓고 사라지며, 이때 후미의 길이는 약 4~5초 정도로 흩어지는 풀의 쌉싸름함을 느끼기에 적당한 시간이라고 여겨진다. 어느 하나 지나치는 것 없는 조화와 깨끗함이 공존하고 있다.


은은하게 담겨 있는 '청보리'의 향미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전체적인 어우러짐이 좋고 특별하게 방해되는 맛이나 향이 없는 친구이기에 누구나 무난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안에 담긴 '가파도 청보리'의 향미가 조금 더 진했다면 자신만의 매력을 좀 더 내보일 수 있는 특색있는 술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청보리 밭보다는, 청보리 하나가 코 앞에서 안개처럼 일렁이는 느낌이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떡갈비, 제육볶음, 생선구이 등을 추천한다. 생선 구이 한 점에 '가파도 청보리' 한 잔은 당신에게 행복한 시간을 가져다줄 것이다.


'가파도 청보리', 옅게 불어오는 실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알코올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 장점이니 역함을 싫어하는 사람은 고려해 보길 바란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10% 이상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잘 보고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은은하게 머물던 '가파도 청보리'의 주간평가는 3.6/5.0이다. 청보리 숲을 기다려보자.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