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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Jun 21. 2024

왕의 이름을 등에 업다

- 왕이 하사한듯한 약주의 향미, '세종대왕 어주'를 음주해보았다.

오늘은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술을 한 병들고 왔다. '세종대왕 어주',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의 이름이 들어가 도저히 들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던 약주이다. 과연 임금을 등에 업은 이 작품은 어떠한 맛과 향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왕이 하사한듯한 약주의 향미, 세종대왕 어주

일단 겉으로 보이는 생김새부터 상당히 고급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급 탁주에서 간혹 볼 수 있을 것 같은  뭉툭하면서도 유려한 곡선을 타고 올라가는 병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그 끝은 금색으로 곱게 감싸져 있는 상태이다. 전면부에는 '세종대왕어주'라는 술의 이름이 여타 설명 없이 떡하니 박혀 있는데, 이 자신감이 '대통령상 수상'이라는 이력과 병 안쪽으로 비치는 아름다운 빛깔과 더해지니 전혀 어색함 없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킨다.


'세종대왕어주'는 '농업회사법인(주)장희'에서 국내산 쌀 100%를 사용하여 빚은 약주로서, 충북 초정리의 광천수 맑은 물로 90일 이상 발효를 거쳐 정성스럽게 만들어진다.


세종대왕제위시절 어의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에 소개된 '벽향주'의 주방문을 이용해 재연된 고급 전통주이며, 합성보존제 및 인공감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자연스러운 술의 풍미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고 한다.


작품의 용량은 500ML, 도수는 15도, 가격은 32,000원. 혼자 마시기에도 좋고, 둘이 마시기에도 괜찮은 양에 일반적인 소주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알코올 함유량, 한 병 치고는 상당히 부담되는 값을 지녔다. 물론 이름에 어울리는 맛을 지녔다면 그런 생각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을까.

잔에 따른 술은 병 안에서 보이는 것보다 조금 더 연한 빛깔을 띄고 있다. 햇빛이 내려쬐는 노오란 갈대밭을 떠올리는듯한 모습으로서, 맑고 깨끗해 어떠한 이물질도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코를 가져다 대니 달짝지근한 과실향이 잔을 타고 올라온다. 배, 복숭아, 매실등의 과실이 달콤하게 코를 스치고 지나가며, 그 뒤로 약간의 산향과 플로럴한 과일꽃향기가 이어진다. 15도라는 보통의 소주와 비슷한 도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알콜의 향기는 온데간데 느껴지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기분 좋은 과실내음이 산뜻하게 코를 안아준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니 부드러운 술이 입 안을 채워간다. 약간의 감미가 혀를 톡 하고 건드렸다가 곧바로 산미가 얼굴을 내밀며, 그 두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끝까지 이어진다.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어 술을 마시는데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고, 이때의 산미는 복숭아와 매실을, 감미는 배와 복숭아, 참외를 닮아있다. 끝으로 가서 미미한 씁쓸함을 남기긴 하나 전혀 불편할 정도는 아닌 데다가, 술을 마시면 코로는 과실향이 동시에 들어오기에 흠이 잡을 곳이 없는 작품이지 않나 싶다.

적당히 가벼운 바디감을 가진 채로 술은 부드럽게 과실의 풍미를 선사한다. 그대로 목구멍을 넘어간 후에는 앞서 말한 과실의 감미와 산미, 거기에 향긋한 내음이 머무르다가 사라지며, 후미의 길이는 4~5초 정도로 산뜻하게 여운을 즐기면서도 다음 잔을 편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각각의 맛들이 지나친 것 없이 잘 어우러져 있고, 혀에서부터 목넘김까지의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어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라고 생각된다.


흔히 말하는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육각형으로 펼쳐져 있는 제품이다. 코와 혀에 자리 잡는 과실은 은은하게 피어오르면서 존재감을 선보이고, 거기에 더해지는 고운 주감은 술이 가진 향미를 한 층 더 끌어올려준다. 사실 '세종대왕'이라는 이름이 들어있어서 과연 이름만큼의 맛을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작품이라면 왕도 한 번씩 정자에 앉아 연못을 보며 잔을 나누지 않았을까. 둥근 과실의 풍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마셔보길 바란다.


곁들일 음식으로는 전 류도 좋고, 오징어 회무침도 좋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조금 더 선호하는 음식과 함께 하면 될 것이다.


'세종대왕어주', 뭐 하나 말할 것이 없는 술이었다. 외모만큼이나 고급스러움을 혀에 놓고 가더라.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10% 이상도 차이가 난다. 여러 구매처를 잘 살펴보고 사는 것이 좋겠다.


아름다운 약주, '세종대왕 어주'의 주간 평가는 4.3/5.0이다. 어주가 괜히 어주더냐.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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