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에서 피어난 눈 한 송이, '설련'을 음주해보았다.
백련이라는 식물이 있다. 연꽃 중에서도 하얀색을 의미하는 이 백련은 녹색의 잎사귀 사이로 하얀 눈처럼 솟아나 보는 사람의 시선을 순식간에 홀려버리는 친구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우아하며, 특유의 여유로운 아름다움은 그 장소를 떠날 수 없도록 만들곤 한다.
오늘은 이 매력적인 백련이 담긴 술을 한 병 가지고 왔다. '설련', 백련의 흰 모습을 눈으로 표현하여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작품으로서, 그 내용은 오히려 눈처럼 하얀 색이 아니기에 궁금증을 증폭시켜 들고오게 되었다. 과연 물에서 돋아난 꽃의 풍미는 어떠할지, 기대와 함께 음주해보도록 하자.
못에서 피어난 눈 한 송이, 설련
먼저 겉으로 보이는 병의 모습은 이 용량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비교적 뭉툭하게 자리잡은 밑둥과 좁은 병목, 그리고 은색으로 마감된 뚜껑까지. 다른 것들과 큰 차별점이 존재하진 않으나 무난히 고급스럽단 느낌을 가져다 주어 부족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전면부에는 '설련'이라는 술의 이름과 함께 하얀 연꽃이 파스텔톤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이 병 안으로 비추는 짙은 색깔과 좋은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그 덕문인지 확실히 무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설련'은 대한민국 전통 식품명인 제 74호 곽우선 명인이 직접 재배한 백련꽃과 경북 칠곡군에서 생산되는 쌀로 탄생한 술로서, 석전주가에 인접한 백련밭에서 매년 6월부터 9월까지 만개하는 백련꽃을 수확하여 만들어진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 있으며, 찹쌀과 백미로 빚어 술의 당도가 높고 진한 맛이 특징이다. 또한 '설련'은 어떻게 마시냐에 따라 그 풍미를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데, 그대로 음주한다면 진하고 달콤한 맛을 혀에 담을 수 있고, 탄산수와 함께 하면 좀 더 시원하고도 은은한 맛매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설련'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16도, 가격은 18,000원. 혼술 하기에도, 둘이서 간단히 마시기에도 딱 좋은 양에 일반적인 희석식 소주보다 조금 낮은 알콜 함유량, 술 한 병치고는 조금 비싸다고 느낄 수 있는 금액을 가졌다. 물론, 이것은 술을 음주하기 전 생각이며 마신 후에는 오히려 싸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잔에 따른 술은 병 안으로 보던 것 보다는 비교적 더 옅은 색감을 선보인다. 약간의 적색끼를 함유하고 있는 호박색을 띠고 있으며 이물질 하나 없이 깔끔하게 잔 안에서 자리잡고 있다. 소리 없이 머무는 우아한 고요함이 괜시리 기대를 더해준다.
이어서 코를 가져다 대니 달콤 씁쓸한 향이 잔을 타고 흘러나온다. 은은한 연꽃 향에 더해지는 풀뿌리와 누룩, 매실같은 과실이 가지고 있는 단 향과 산 향도 담겨져 있다. 향의 끝 부분에선 쌉싸름한 내음이 코 끝을 톡 건드리고 가며, 알콜과 훈연 향이 미미하게 일렁거림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흠잡을 곳 없이 맺혀 있는 약재향과 곡식의 감향 등의 어우러짐이 훌륭하다.
한 모금 머금으면 꽤나 부드러운 주감을 가진 술이 혀를 감싸안는다. 향으로 맡았던 것 과는 다르게 씁쓸한 약재의 맛 보다는 약간의 산미와 곡물의 단 맛을 중심으로 입에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술이 혀를 지나칠쯤에 보통 매실주에서 느낄 수 있는 쌉싸름함이 혀뿌리에서 인사를 슬쩍 인사를 건넨다. 술이 가지고 있는 질감 자체가 고와 부담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16도라는 일반적인 소주와 비슷한 도수를 지니고 있음에도 알콜이 두드러지는 모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감미와 산미, 고미를 차례로 전달한 후에 술은 매끄럽게 목구멍을 넘어가고, 감미에 비해 약간 더 솟아나와있는 산미와 씁쓸함을 남겨놓고 사라진다. 이 때 여운의 길이는 4~5초 정도로서 산미와 합쳐진 달짝지근함, 목구멍을 통과하는 고미는 서로 어울러져 묘한 소금기를 유발하는듯한 느낌까지 선사한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향에 비해서 맛에서 가진 약주라는 특징이 주는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다른 약주들에 비해서 낮은 편이라고 느껴진다.
연꽃의 향에 더해지는 다채로운 맛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특유의 산미와 함께 느껴지는 단 맛, 목구멍을 건드리는 고미는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며 못 속에서 피어난 백련을 떠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적잖이 섞인 과실의 맛 역시 그윽히 맴돌아 활짝 핀 상태 보단 꽃봉오리에서 잎 몇 개를 펼쳐낸 꽃을 연상시켰는데, 오히려 그 멋이 연못에 피어난 백련이라는 타이틀엔 더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생선구이, 떡갈비 등과 함께 음주하는 것을 권한다. 고소하고 짭짤한 생선구이 한 점에 '설련' 한 잔은 상당한 만족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설련', 슬며시 감도는 연꽃의 향과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술이었다. 가볍게 마시기 좋은 약주라고 여겨지니, 관심이 간다면 한 번쯤 음주해보길 바란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10% 정도 상이하다. 잘 살펴보고 구매하자.
못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 '설련'의 주간평가는 4.1/5.0 이다. 가끔은 오히려 못다 핀 꽃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