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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럽게 담긴 포도의 절제미

- 한 잔의 술을 받들고 우러러, '추앙'을 음주해 보았다.

by 주간일기

예전엔 1000원, 2000원 보통 그 사이쯤 머무르는 가격을 지닌 지역 막걸리가 유행이었다면, 지금은 막걸리도 프리미엄의 시대이다. 가격을 높이는 대신 그만큼 공을 들이기 시작하였고, 이전에는 만원을 바라보기도 힘들었던 가격대가 최근 기준 평균 만원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한 병 한 병을 고를 때마다 지갑이 아파하기는한데, 그래도 다양한 막거리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이점이다.


오늘 내가 가져온 술 역시 막걸리 중에서 이런 프리미엄 라인에 속하는 친구이다. 다른 것보다 이름 하나가 마음에 들어 구매하게 된 작품으로, 이전에 유행했던 한 드라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추앙', 높이 받들어 우러러본다는 뜻을 가진 이 막걸리는 과연 어떠한 풍미를 선사할지, 기대와 함께 음주해보도록 하자.


한 잔의 술을 받들고 우러러, 추앙

일단 겉으로 보기에도 일반적인 막걸리들 보다는 확실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넘쳐난다. 황금색과 짙은 자주색,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매끄러운 병의 끝은 끈으로 쌓인 부직포가 전통미를 뽐내는 중이다. 전면부에는 '추앙'이라는 술의 명칭이 금색으로 반짝이고 있는데, '포도막걸리'라는 정체성 사이 속에서 빛나는 이름이 술의 가치를 증명해주고 있는 듯 하다. 이 지나치지 않은, 흔히 말하는 절제된 고급스러움이 병의 디자인에 잘 녹아내려 있는듯 하다.


'추앙'은 농업회사법인 '민주술도가'에서 단 한 방울의 물 없이 오직 국내산 쌀, 포도, 누룩으로만 만든 술로서, 고문헌 '증보산림경제'에 기록된 '포도주'를 재해석해서 탄생시켰다.


저온 발효와 저온 숙성, 거기에 기다림을 담고 있으며 설탕, 방부제, 화학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오직 천연 재료료만 순수하게 빚어내 쌀의 풍미와 와인의 맛이 절묘하게 결합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12도, 가격은 35,000원. 혼자 마시기 딱 좋고, 둘이 마시면 부족할 양에 보통의 막걸리보단 소주에 조금 더 가까운 알콜 함유량, 700ML기준 70,000원 이라는 엔트리급 위스키 정도의 금액을 지녔다. 부디 '추앙'이라는 두 글자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잔에 따른 술은 조금 어두운 보라색을 띠고 있다. 살짝 흔들어보기만해도 묵직한 움직임에 어느정도 바디감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표면에는 짙은 포도빛 위로 미세한 입자들이 떠다니고 있다. 완전히 매끄러웠다면 조금 더 보기 좋았을듯한데, 이점은 내가 조금 덜 섞었을 수도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이어서 코를 가져다 대니 새콤달콤한 포도향이 잔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굳이 코를 가까이 하지 않아도 술을 따르는 순간 으깬 포도향이 디퓨저처럼 퍼지는 것이 참 매력적이다. 과육의 단 향과 포도껍질의 산향, 거기에 줄기의 씁쓸함도 조금 간직하고 있다. 말 그대로 포도 하나가 아낌 없이 다 들어있는 느낌. 12도라는 막걸리치고 상당히 높은 도수에도 알콜의 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포도 내음이 한 차례 진동을 하고 나서야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잘 정제된 포도가 부드럽게 혀를 감싸안는다. 참외와 멜론, 포도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런 과실의 감미가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이후 곧바로 몽글한 질감과 함께 자두, 포도껍질에서 느낄법한 산미가 찾아오며, 약간의 쌉싸름함과 같이 마무리된다. 향과 마찬가지로 12도라는 높은 도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절제된 고급스러움이 그대로 녹아있는 듯한 맛으로서, 포도라는 캐릭터를 막걸리와 전혀 이질감 없이 조화롭게 만들어놓았다. 개인적으론 이 감미 이후에 퍼지는 은은한 산미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분명히 그 맛이 그리 튀지 않음에도 잔잔한 파도처럼 입 안에서 퍼져가 포도라는 과실이 가진 개성을 톡톡히 드러내는 느낌이다.

약간 무거운 바디감으로 구름처럼 목구멍을 넘어가며, 목넘김 이후에는 포도줄기, 곡식, 알콜이 같이 가져다주는 고소한 쌉싸름함과 과육의 산미와 감미가 남아 풍미를 마무리한다. 여운의 길이는 약 4~5초 정도. 어느정도 끝맛을 감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니 막걸리에 충분히 가라앉힌 포도가 함박눈이 녹듯이 사라지는 마지막을 여유롭게 감상하길 바란다.


역시 비싼값을 한다. 가격을 제외한다면 흠을 찾기가 어려운 막걸리였다. 포도가 '나 포도야~' 이런 경박스러움을 가진게 아니라, 선비옷을 입은채 절제된 고급스러움을 조용히 뽐낸다. 알콜이 강하다고 하여 그 역함이나 이런게 보이는 것도 아니며, 포도가 가진 다채로운 맛들을 정말 잘 어우러지게 빚어냈다. 보통 한국에서 만들어진 와인이라고 하면 외국의 것을 본체로 하여 탈을 씌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것은 몸도, 마음도 전통이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간단한 김부각, 크래커, 스콘 등과 함께 즐기길 바란다. 막걸리를 중심으로 하였을 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품이다.


매력적인 포도가 매혹적으로 잠들어 있는 작품이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을것이라고 예상된다.


판매처에 따라 약 10% 정도 가격차이가 난다. 3500원 정도이니 잘 살펴보고 구매하자.


받들고 우러러, '추앙'의 주간평가는 4.3/5.0 이다. 고풍스러운 절제미를 추앙하라.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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