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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Jul 25. 2023

가을로 시작하여 겨울로 마침표를 찍다.

- 술로 써 내려가는 가을의 이야기, '추사 40'을 음주해 보았다.

추사, 우리에겐 김정희 선생의 호로 잘 알려져 있는 단어이다. 아마 그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였는지 모르는 사람도 '추사 김정희'라는 이름과 호는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업적을 이루어낸 김정희선생이지만, 역시나 가장 대표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추사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추사체'는 김정희 선생이 만들어낸 글씨체로서,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심한 필획과 각이 지고 비틀어진 듯하면서도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김정희 선생의 호 '추사'를 따서 '추사체'라고 이름 지어졌으며, 역사적으로 많은 추종자를 나을 만큼 뜻깊은 업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추사 김정희'선생이 태어난 곳이 바로 충남의 예산이며, 이곳엔 추사의 삶과 정신을 담은 술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양조장이 존재한다. 이름은 '예산 사과 와인' 예산에서 추사의 이야기를 이어 쓰고 있는 낭만과 멋이 깃든 곳이다.


'추사'의 얼과 풍성하고 넉넉한 가을의 이야기를 담아 술을 만드는 이들, 이들이 만들고 오늘 내가 음주할 술 역시 이 '추사'가 가득 담겨 있는데, 얼마나 추사를 과하게 넣은 것인지 그 명칭이 '추사 40'이다. 예산의 자연과 문화, 시간을 간직한 술은 어떤 맛과 향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겠다.


술로 써 내려가는 가을의 이야기, 추사 40

200ML밖에 되지 않아 그런지 병이 확실히 아담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전체적인 디자인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추사체로 쓰여 있는 'Chusa'라는 글자와 한지처럼 느껴지는 배경, 글자 뒤에 그려진 난과 화룡정점으로 영롱한 술의 색깔까지. 이 중 '추사체'와 '난 그림'은 김정희 선생의 정신을 잇는다는 표현처럼 느껴져 '추사'라는 이름이 더욱 와닿는다.


'추사 40'은 '예산 사과 와인'에서 정성껏 직접 재배한 예산 황토 사과로 만든 증류주로서, 프랑스 칼바도스와 동일한 오크통 시설에서 숙성되어 탄생하였다. 


100% 국내산 원료를 사용하여 제조한 제품만이 받을 수 있는 품질 인증을 획득하였으며, 과육이 치밀하고 과즙이 많은 사과를 가당하지 않고 발효 및 상업 다단식 동증류기로 두 번 증류한 뒤 오크통 숙성을 거쳐 만들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술의 용량은 200ML, 도수는 40도, 가격은 30,000원이다. 200ML에 이 정도 가격이면 사실 괜찮은 위스키와 가격차이 그렇게 크게 나지 않는다. 100ML 당 15000원이니 계산해 보면 750ML 기준 약 11만 원. 꽤나 맛있는 위스키를 구매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러니 부디 지금 내 손에 들린 '추사 40'도 그에 못지않은 감각을 나에게 선물해 주면 좋겠다.

잔에 따른 술의 모습은 일반적인 위스키보다 약간 연한 색이다. 왠지 모르게 수선화가 떠오르는 듯한 빛깔. 각진 잔과 어우러져 보석을 연상케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코를 가져다 대니 오크, 꿀, 바닐라, 다크 초콜릿 등의 향이 굉장히 부드럽게 올라온다. 코를 계속 가져다 대고 있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보통 40도 정도의 위스키를 음주할 경우 품질이 떨어지는 술일수록 짐스러운 향이 많이 느껴지는데, '추사 40'의 경우 달콤한 바닐라 향이 곱게 다가오고, 그 뒤에 잘 다듬어진 알코올의 향이 찾아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스파이시함을 가진 술이 혀를 감싼다. 상당히 고운 주감을 가지고 있으며, 향에 비해선 맛에 있어서 좀 더 도수가 느껴지는 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향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지, 절대로 40도의 도수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스파이시함과 씁쓸함이 한 차례 지나고 나면 부드러운 사과의 풍미가 약하게 느껴진다. 기대와는 달리 사과가 주는 향미가 진하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그렇게 혀를 지난 술은 순식간에 목구멍을 넘어가고, 목 넘김 이후에는 처음 느껴진 강렬함과는 달리 깔끔한 여운을 가질 수 있다.


적당한 무게에 구운 사과의 풍미가 은은히 곁 도는 술이다. 다른 것보다 술을 마실 때 들어오는 향이 뛰어난 친구이며, 잔을 반복할수록 술에 익숙해지면서 진한 맛을 느끼는 것이 용이해진다. 술의 첫맛은 강렬하나 그 강렬함 이후엔 깔끔하고 푹 익은 사과의 풍미를 느낄 수 있으니 첫 잔에 아쉬워 잔을 내려놓기보다는 혀가 익숙해질 시간을 조금만 주면 좋겠다.


보통 술을 이야기할 때를 생각해 보면 맛보다 향이 아쉬운 경우가 많았는데, '추사 40'은 확실하게 맛보다 향이 뛰어나다. 사과를 꿀에 절인 뒤에 살짝 훈연하여 내어놓은 듯 한 향이 부드럽게 코를 휘감는 것이 정말 일품이다. 만약 향만 한 맛을 지니고 있다면 가장 높은 평점을 주어도 아쉽지 않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니트로 음주하는 것보단 얼음과 함께 온 더 락으로 음주하는 것이 더 편하고, 조화롭게 마실 수 있는 증류주이다.


달콤하게만 느끼기 위해선 당연히 토닉이나 여러 음료를 섞어 하이볼로 음주하는 것이 좋겠으나 이 술은 향이 가장 뛰어난 장점이기에 온 더 락으로 음주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이 20%가 넘게 되면 향이나 맛이 바뀔 수 있으니, 적당한 얼음과 함께 향을 중심으로 하여 음미해 보도록 하자.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과일이나 너무 달지 않은 초콜릿, 치즈 등과 함께 곁들이길 바란다. 술의 향과 함께 안주를 즐긴다면 좋은 자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사 40',  용두용미가 되지 않아 아쉬운 술이었다. 병의 디자인부터 향까지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맛에 있어서 아쉬움이 약간 더 컸던 것 같다.


만약 술을 마실 때 향과 깔끔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음주해 보길 바란다. 단점이라면 씁쓸함과 첫 잔에서 느끼는 스파이시함 비교적 아쉬운 사과의 풍미 등이 되겠다. 


'추사'를 담은 '추사 40'의 주간 평가는 3.6 / 5.0이다. 용두용미였으면 좋았으련만, 용두망미(龍頭蟒尾) 구나.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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