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벌새 닮은 박각시나방
가을꽃들이 활짝 피어 벌, 나비, 박각시나방을 불러들인다. 겨울을 준비하는 곤충들의 날갯짓이 분주하다. 추위가 본격 시작하기 전에 더 많은 꿀을 모아야 하고, 몸속에 에너지를 저장해서 내년에 탄생할 후손들을 위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박각시나방을 만난 건 불암산 힐링타운에 있는 국화정원에서다. 자그마한 정원에 핀 국화와 블루세이지 꽃을 드나들며 꿀을 빨고 있는 곤충, 쉬지 않고 날갯짓하는 모습이 꼭 벌새 같았다. 그런데 벌새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서 바로 박각시나방이라는 걸 알았다. 며칠 전에 페북에 올라온 사진을 눈여겨 보아두어서이다. 한 아기 아빠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있었다.
누구나 처음 박각시나방을 보면 벌새부터 떠올릴 것이다. 벌처럼 빠른 날갯짓을 한다고 벌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초에 60~90회, 1분에는 3600회 이상을 날갯짓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많을까? 그래서 벌처럼 부우우웅~ 하는 소리를 낸다고 하니 역시 벌새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벌새는 열대의 산지 숲과 덤불에 살아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새이다. 그런데 박각시나방을 보고 벌새를 머리에 떠올리다니 매스컴에서 받은 영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박각시나방은 날갯짓을 1초에 20~30회를 하면서 꽃이나 잎에 앉지 않고 허공에서 쉼 없이 날며 꿀을 빨아 먹는다. 한참을 관찰해도 어디 내려앉는 걸 볼 수가 없다. 하루 종일 꽃을 찾아다니며 날갯짓을 하지는 않을 텐데 박각시나방의 쉼터는 어디일까?
다시 박각시나방을 찾아 당현천으로 나갔다. 노랑코스모스가 피었으니 거기에 있을 것 같았다. 내 예상은 맞았다. 노랑코스모스를 보자마자 부지런히 꿀을 빨고 있는 박각시나방을 만났다. 스마트폰으로 박각시나방의 완벽한 모습을 보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를 눌렀다. 스마트폰으로는 박각시나방을 정지시킬 수 없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커다란 카메라로 박각시나방을 촬영하는 분을 만나 그 분이 찍은 사진을 좀 보자고 했다. 그 분의 사진에도 페북에서 본 박각시나방 모습이 아니었다. 그 분은 스마트폰으로는 찍을 수 없다고도 했다.
나는 박각시나방을 만나며 계속 스마트폰 카메라를 눌렀다. 내가 생각하는 장면이 안 나와서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정말 많은 사진을 찍어서 마음에 드는 정지화면을 얻었다.
이날 본 박각시나방에도 크기 차이가 있었다. 먼저 태어나고 늦게 태어난 차이일까? 아니면 종이 달라서일까? 찾아보니 내가 만난 박각시나방은 작은꼬리박각시나방이었다.
꿀벌과 호박벌, 네발나비는 꿀을 먹을 때 꽃에 내여앉는다. 특기 덩치가 큰 호박벌이 노랑코스모에 앉으면 그 덩치 때문에 꽃이 휘청하며 아래로 내려간다.
박각시나방은 길다란 빨대를 꽂아 꿀을 빨아먹기에 꽃에게는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 마치 인사하고 꿀만 살짝 먹고 가는 것 같다.
"안녕, 꿀만 조금 먹고 갈게!"
마지막으로 궁금증이 생겼다. 박각시나방의 집은 어디일까? 밤이 되면 어디로 갈까?
이전에도 존재했을 박각시나방을 올해 처음 만났는데
너의 날갯짓은 정말 강렬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