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골목길의 감나무
대도시의 골목길에서 주홍색으로 익어가는 감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주로 작은 감나무에 달린 감이 대봉감이라 더 그렇다. 어릴 적 추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대봉감은 가장 맛이 좋은 감이기도 하다. 감을 따서 감장사한테 팔 때도 가장 높은 가격을 받았다.
시골의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여덟 나무가 있었다. 감 종류도 대봉감, 반삭감, 납작감, 두리감, 작은납작감들이었다. 지역마다 감 종류를 부르는 이름이 달라서 정확한 이름은 알 수가 없다. 이 감들은 가을이면 단풍 든 감나뭇잎과 함께 물들어 갔다.
그 시절은 군것질거리가 없어서 유일한 간식은 감홍시였다. 단감은 없고 거의가 떫은 감이었는데 반삭감만 속은 단감이고 겉 부분은 떫은 감이었다. 그러니 우리 집 감들은 빨갛게 익어 홍시가 되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감나무에도 잘 올라갔던 나는 학교에 갔다 오면, 감나무 아래에서 햇살에 비쳐서 빨갛게 보이는 홍시가 있나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망울을 사방으로 굴리며 찾았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감을 발견하면 바로 감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서 잘 부러진다고 못 올라가게 한다는데 우리 집은 그러지 않았다. 내 몸무게가 아주 가벼워서 가느다란 가지에 올라가도 가지가 부러지는 일은 없었다.
손이 닿지 않으면 장대로 가지를 꺾어서 땄다. 무사히 홍시를 손에 넣고 땅에 내려와서 먹는 맛이란, 세상에서 가장 맛난 홍시였다. 지금은 그 맛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특히 대봉감은 크기도 컸고, 홍시의 살이 결처럼 있어서 씹는 맛이 좋았다.
올해 골목길에서 만난 감들은 대부분 대봉감이었다. 감나무 크기와 영양 상태에 따라 감나무에 달린 대봉감의 크기는 다르지만 역시 사람들은 대봉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 홍시를 만들어서 겨울에 먹으면 그 맛에 만족하고, 커서 하나 먹으면 뱃속이 든든해진다. 또 얼려 두었다가 여름에 샤베트처럼 먹어도 훌륭하다.
10월 중순 하동 평사리에서 열리는 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그 곳이 대봉감 생산지였다. 집집마다 몇 그루씩 있는 대봉 감나무! 역시 땅의 기운과 맑은 공기, 햇살 듬뿍 받아 자라서인지 대봉감이 진짜 대봉감이었다. 두 주먹만큼 큰 대봉감들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얼굴 붉혀가고 있었다.
“수줍어 초록 얼굴이 자꾸만 붉어지네. 햇살아, 그만 비춰. 더 붉어질라 그런다.”
가을 햇살이 뜨거워서 대봉감들이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감나무 아래에는 빨간 홍시가 떨어져서 형태가 허물어져 있기도 했다. 어릴 적에는 떨어진 홍시도 주워서 먹곤 했는데….
예전 서울에는 감나무가 자랄 수 없었다고 한다. 너무 추워서 겨울 동안 감나무가 얼어 죽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에서도 감나무가 겨울을 나고, 늦봄에 감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가을이면 빨갛게 감이 익어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고향집 마당에서 가을날 빨갛게 익어서 배고픔을 달래주던 감홍시, 그 달콤함을 맛보여주던 홍시의 맛을 잊지 못해서일까? 골목길의 감나무에 달린 대봉감을 보면 마냥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