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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상규 Mar 19. 2022

서울의 외식수준이 높은 줄 알았다.

우리는 문화에 쫓기는가 / 누리는가




163월 어느 

나는 군대에 입대를 했다. 화생방훈련을 앞둔 나의 머릿속에 현자타임이 가득했던 이유는 불과 한 달 전 나는 뉴욕에 있었기 때문이다.

15년 2월 어느 날 뉴욕에 갔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스타그램보다는 페이스북을 통한 소통이 활발했다. 나는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며 나의 뉴욕여행 10일의 근황을 전했다. 내가 어린 나이에 뉴욕에서 돈을 나의 재정 수준 이상으로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군대가기전에 버닝 이라는 합리화와 뉴욕에 살고있던 금수저 친구덕이었다.

그 당시 나는 셰프를 향한 꿈으로 똘똘똘똘 뭉친 학생으로써 당연히 돈은 파인다이닝 씬에 썼다. 한 끼에 대략 20-30만원 가량의 식사를 10일간 6번을 했으니 살아생전 그랬던 적은 그 때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생각했다.

서울은 언제쯤 뉴욕처럼 될까?



22 3 어느  

나는 서울에 놀러왔다. 나의 고향은 서울이다. 그래서 놀러왔다기 보다는 부모님을 보러 종종 오는 곳이다.

그리고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의 대화는 이제 어린 날의 했던 대화들처럼 꿈보다는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치열한 고민들의 행진이었다.

브랜딩은 무엇이며, 인테리어는 무엇이며, 매일같이 생겨나는 오프라인의 카페들과 매일 같이 생겨나는 온라인에서의 다양한 페이지들, 그 속에서 전쟁터와 같이 돌아가는 서울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란히 펼치다보면 중간 중간 문득 나의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대전은 언제쯤 서울처럼 될까?


그 고민은

한 가지 전제를 나도 모르게 깔고있었다.


대전이 서울처럼 되야 한다.


서울의 외식 씬 처럼 파인다이닝부터 케주얼다이닝까지 / 노동강도, 재료의 퀄리티, 음식의 수준, 음식의 가격적인 다양한 측면에서 /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재미난 협업들이 나와야 한다. 이를 통해서 소비자들은 문화수준이 올라가고, 우리의 삶은 풍성해질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떻게?



서울의 외식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많이 쏟아지는 것이다. 쏟아지는 것은 많은 인구에 기반해서 쏟아지는 공급속에 지속되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친구들을 만나면 듣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거기 가봤어?


새로운 곳이 오픈하면 다들 자석에 이끌리듯 / 거부하거나 거절할 수 없는 것처럼 / 가만히 있는 것에 저항이 생겨버려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스페셜티와 에스프레소 바가 눈에 띄며, 음식점에 '바' 를 붙여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며, 개성있는 '네추럴와인' 을 소개하는 곳들이 나란히로 생겨난다. 너무나도 쏟아진다. 다양하다고 생각도 된다. 그러나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는 '인증' 하기에 바쁘다.


에스프레소 잔을 여러잔 겹쳐두기도 하고, 와인잔에 그림도 그리기도 하며, 그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야 할 일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고 체크하며 인증을 하기 위한 압박감 속에 우리는 즐기고 있는걸까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기라고, 인생 즐기기에 서울만한 곳이 없긴하다. 서울 도시에는 전시회와 공연이 넘친다. 다양한 맛집이 넘친다. 다양한 사람이 넘치고, 다양한 니즈와 다양한 소비자가 넘친다. 그러나 시골에는 전시회와 공연이 없다.

그래도 시골에는 자연이 있다.


도시는 나무를 깎고, 풀을 베고, 흙을 치우고, 그 자리에 벽돌과 콘크리트와 조형물을 쌓아 구성된다. 시골에서 볼 수 있던 자연의 경이로움은 사라진다. 우리는 그 경이로움을 전시회와 공연과 다양한 문화예술과 문화활동을 통해서 찾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 그 전시회의 사진과 그림을 / 문화활동을 위한 음식을, 노래를 모두 그것들이 지닌 경이로움이 아닌 그것을 소비하는 나를 사회에서 경이롭게 바라봐주길 원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당연한거긴 하지만,)

쏟아지는 문화생산속에 우리는 어느새 문화를 즐기는 것이 아닌 문화를 소비하는 나를 즐겨주길 원한다.

단순 소비가 외식수준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외식업을 즐기며, 그 외식의 경이로움을 알고 느끼며, 그것을 만든 사람과의 소통 속에서 외식수준은 높아진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산업을 그려본다. 대전에서


파이가 조금 작아도, 마치 뉴욕에 비해 파이가 작았던 서울처럼,

덜 자극적이더라도, 마치 전시회 없는 시골이지만 자연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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