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시간강사를 통해
선생님 한 분이 코로나에 걸리셔서 1주일 시간강사를 구합니다. 1주일간 10시간의 수업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언제요?
내일부터요.
실습을 발주 없이 진행해야했다!!!!! - 말도안되는 일이다ㅜ
내가 한 시간 두 시간씩 떠들어댄적은 있지만, 4시간동안 그 학생들의 관심과 집중을 이끌어내고 학습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말이 안된다. 그 공연하면 6시간씩 하는 가수도 아니고, 그럼에도 내 사업의 방향, 이유 : 대전을 가장 좋은 식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방향성에 어긋남이 없기에 큰 도전을 선택했다.
그렇게 4시간의 엄청난 큰 전쟁이 시작됐다.
내가 수업을 어떻게 했나? 그건 잠깐 나의 교직이수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한 것도 / 대학교에서 조리과 교직이수를 한 것도 모두 다 온전히 나의 뜻은 아니었다. 그저 옆에서 부추겨서 한 것 뿐이다. "되면 한다," 는 아주 복에겨운 소리를 하면서 지원했다. 그렇게 대학입시도 / 교직이수도 남들이 보면 간절하지 않은 놈이 붙어버렸다. 나는 그런 놈이었다. 말로는 누구보다 간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건 내가 간절했던 것이 있다면 미래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단계 하나하나 에는 간절하지 않았어도 그 곳에 들어가서는 누구보다 간절히 수업에 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시선과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미슐랭 스타 셰프에서 도시와 나라를 바꾸고 싶은 학생이 되었고, 교직이수를 통해서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그리고 3-4년간 그렇게 바라보는 연습과 실제로 그렇게 사람의 포텐을 볼 수 있는 눈이 키워지고 있음을 알게된 나는 그 방법에 확신을 갖고 나아갔다.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나의 기대감과는 다르게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학교로 출근을 했다. 인사를 위해 조금 일찍 출근하고, 12:50 처음 수업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떨리진 않았다. 그 동안 누구 앞에 서는 연습을 여기저기서 했던 것이 나도 모르게 도움이 되었다. 3학년 6반 수업은 코로나 방역으로 한 시간 단축수업을 했다.
'한국조리' 수업 진행 방식은 이랬다.
1교시 - 진로
2교시 - 조리산업의 다양성
3교시 - 한 제품의 특성을 바라보기
각 교시별로 활동을 집어넣었다. 가령 2교시에는 서로 돌아가며 친구의 얼굴을 그려주기를 했고, 마치 조리산업은 그렇게 한 명의 얼굴을 그려주기 위해 다같이 협업한 것처럼 굴러간다. 그러니 요리사를 하지 않아도 조리과를 나왔다면 다양한 분야에 들어갈 수 있다. 라는 메세지였다.
'급식관리' 수업 진행 방식은 이랬다.
1교시 - 급식과 외식트랜드
2교시 - 채식급식으로 바라보는 세계의 흐름
그렇게 이틀 삼일 그리고 1주일이 지났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났다. 1주일이 끝난 시점 내 머릿속에 질문은 하나다.
내가 아이들을 변화시켰나?
그리고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축구경기 중 남은 3분을 뛰는 선수였다.
이름 알리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렇게 경기가 끝나는 선수들 말이다. 그러려고 축구선수가 됐을까.
그런데 이 시간 내 포지션이 딱 그랬다. 내가 맡은 10시간이 내게는 부담이지만, 사실 90분의 한 경기로 치면 3분에 그치는 정도의 시간이다. 1년 혹은 3년의 과정을 밟는 이 학생들에게 10시간의 무게는 어느정도일까. 내가 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에 빠지는 9년만의 하교길이었다.
3분을 뛰려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그 선수들은 발걸음은 항상 가볍고 명쾌하고 전투적이며 앞으로 뛰어간다. 자신이 뛰는 것이 경기의 판도를 크게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도 있는데 말이다.
10시간을 위해서 밤을 새며 수업을 준비한 나를 보며 느꼈다.
그들도 그렇게 경기를 준비하겠구나. 그 3분의 임팩트가 그 들에게는 S 급 선수가 될 수 있는 첫 발자국일 수 도 있겠구나. 3분만 주어졌다 하더라도 팬과 감독과 그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나의 성급한 판단을 반성했다.
나의 산업, 나의 위치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나의 위치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기만이고 오만이다. 정상급에 올라가는 선수라면, 90분 중의 3분을. 1년 중에 10시간을 헛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왜 조리교사 안하세요?
나는 대전을 좋은 식문화도시로 바꾸는 것에 있어서 '인간적인 안전장치' 를 만들어 두고 싶지않다.
나에게 '인간적인 안전장치' 란 그 직업을 선택할 때 순수하게 그 직업의 가치를 내가 바라보냐는 것이다.
공무원 조리교사는 내게 그렇다. 그 직업을 바라볼 때 나는 그 직업을 순수하게 '가르침' 이 아닌 여러가지 조건을 통해 안주하고 있을 내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나를 편한 곳에 나를 두지 않는다. 나는 양을 지키기 위해서 사방이 뚫려있는 푸른초장으로 간다. 언제든 맹수가 달려들겠지만, 푸른초장에서 나를 지키는 것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나는 푸른초장에서 쉬며, 물맷돌 돌리는 연습을 열심히 할 뿐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이런 외부 강연의 기회가 종종 오길 바란다. 수업이 끝난 뒤 꼭 다시 수업하러 오라는 학생들의 바람은 내가 학생이라는 소비자를 만족시켜줬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 학생 여러분들 화이팅!
(아 제가 공무원 하시는 분을 그렇게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럴 것 같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