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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상규 Dec 20. 2022

언제 성공하냐고?
때는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탁월함이라 쓰고 기다림이라 읽는다.

내가 성경을 읽다가 재밌는 문구를 발견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사도행전 6 : 1-2)


때와 시기는 ...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이리도 강력하고 직관적이고 정확한 말씀이 있을까...



탁월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 스스로.

언제나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주길 바란다. 그리고 좋은 일을 하길 원하며. Do more with less 를 통해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 을 실천하길 원한다. (돈 많은 백수 X , 일의 효율성)


탁월함은 '잘 하는 것' 이다.

'잘 한다는 것' 은 성실한 과정 만큼이나 결과를 잘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존버' 다. 그러니까 사실 탁월함에는 두 가지 영역이 필요한 것이다.

탁월함 = 잘 하기 + 존버


하지만 '존버' 를 오늘은 좀 바꾸고 싶은 단어가 있다. 바로 '때가 찼다' 이다.


세상 속에는 탁월한 사람들이 많다.

탁월한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탁월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달란트가 있지만, 세상에 드러난 것은 그들의 재능이 드러난 것이 주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한 가지는 '운의 영역' 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매일 같이 최선을 다하나. 자신의 최선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운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운의 영역이라는 것이 바로 '때가 찼다.' 이며, 그 때가 차기를 기다리는 것이 '존버' 일 것이다.


성경에는

'~ 할 때에' 라고 하는 시계가 굴러가는 말이 아닌

'~ 때가 차매' 와 같이 마치 우리가 제어 할 수 없는 시간의 영역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온다.


때는 누가 채운단 말인가.

때는 어떻게 해야 채워진단 말인가.

때는 어떻게 이르는 것인가.


그런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때와 시기는 ...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드라마에 보면 종종 주인공의 스승격 쯤 대는 분드리 동굴에서 눈을감다가 희번뜩 뜨고 한 마디 하신다.

때가 됐다.

이번 월드컵 때 많은 감독들의 용병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타이밍이 정확하다.


 '때' 라는 영역이 굉장히 중요함을 알려주는 대목들이다.


 우리가 땅에서 흘리는 '노력' 이라는 영역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때' 라는 영역과 하이파이브를 할 때 우리안에 탁월함이 드러난다. 우리가 땅에서 손을 뻗어보자. 그럼에도 우리의 손은 땅과 가깝다. 하늘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기에, '때' 라는 하늘의 영역이 '행운의 영역' 이라고 표현되는 것 같다.

 그래서 '때' 가 더 중요하지만 '노력' 이라는 영역이 없다면, 그 행운이라는 '때' 가 내려와도 내 눈앞에서, 어쩌면 지나간지도 모르게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습관 하나를 공유하고자 한다.

때를 얻기까지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꾸준히 할 일을 정하는 것이다. 지루할만치.

여기서의 '자신의 일' 은

학교 수업 처럼 관계속의 일이 아니다. 자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

글쓰기, 책읽기, 기도하기, 달리기 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매일 기록하고, 매일 복기하자.  나아지자. 땅에서 흘리는 땀방울과 하늘의 때가 만날  까지



한결 예뻐진 사무실 ... 죽은 화분은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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