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는 것이 감정을 배제할 수 없는 것임에.
옛날부터 많이 듣는 말이 있다.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15살 여름 어느 날의 나는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선택했다.
'나는 조리과를 가겠어!!'
경위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중학교에서 500명 중 100등 정도 하는 성적을 가졌지만, (당시에는 전체등수가 항상 표기되어 있었다.)
인문계에 가서 오지게 공부할 것 같지 않았고,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기에 어떻게든 외고, 과고 꼬리로 넣어서 인서울 대학교에 유리한 내신을 받도록 도와주려고 했지만, 난 공부할 것 같지 않다는 '이성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격주로 노는 토요일 (놀토)가 있던 당시 학교 가는 토요일에 진로탐색을 했고, 미안한 말이지만, 그 당시 주변 공고는 너무 무서워서 가기 싫었고, 그런 내 눈에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라는 조리고등학교 /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과 고등학교 / 조리과 단일 고등학교 / 기숙학교 / 엄청난 교사진들 /이라는 설명은 내 이성적인 판단을 제대로 부추기기에 완벽했다.
그래서 나는 '이성적'으로 갔다. 조리과에,
대학교는 왜 왔냐고?
'이성적'으로 성적이 괜찮은데 선생님들이 버리기 아까우니 써보라 해서 별생각 없이 붙었다.
지금은 왜 기획자로 일하냐고?
'이성적'으로 기술을 통해 가게를 여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사람들을 엮어서 더 좋은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꿔보려고 한다.
나는 공부할 것 같지 않다는 '감정적' 판단으로 조리고등학교를 갔다.
나는 '감정적'으로 성적을 버리기 아까우니 대학에 갔다.
나는 '감정적'으로 더 큰 일을 만들고 싶어 기획자의 길을 간다.
전혀 문제없다.
"어이 문팀장 이건 정말 개인적인 감정을 다 배제하고 하는 말인데......"
그런 건 없다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회 속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 따위는 없다.
'함께' 일하니까 노동이 아닌 곳이 어디가 있을까. 노동을 혼자 하냐 함께 하냐의 차이이다.
육체가 움직이듯 정신은 항상 움직인다. 정신은 항상 신경을 쓰게 되어있다.
감정을 혼자 쓰냐, 함께 쓰냐의 차이이다.
직장은 감정을 배제하는 곳이다?
아니다. 오늘도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할 때까지.
우리의 8-10시간 정도는 감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내가 왜 이렇게 돈도 안 되는 상권에서 동네를 위해 기획을 하냐 하면,
정말 이 동네의 청년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엄마는 내가 제일 안타깝다고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희망이 뭔지 보여주고 싶어서, 꿈을 이루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그런 어른 혹은 그런 애 하나 있으면 그 친구들도 한 번쯤 생각이 깨질 수 있으니까.
'이성적'인 판단은 하나도 없다. 오직 '감정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을 '이성적'으로 진행하지만, 결국 또 '감정적'으로 일이 끝난다.
내 '감정'이 올바른 감정이길 오늘도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