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우유 게스트하우스, 첫 팟타이

by 모리


여행을 시작하기 앞서 카페에 가입하긴 했지만 정보를 모아볼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정보를 얻는 게 가장 정리가 잘 되어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태국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면서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해외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시작부터 외국인과 상대할 자신이 없었기에 28일 중 이틀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다. 알아볼 당시 치앙마이에는 한인 게스트하우스가 3곳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유 게스트하우스였다. 서점에서 구입했던 책자에 우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부부의 인터뷰가 실려있어서 더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꼰대 사절이라는 말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한 겨울 롱 패딩을 껴입고 치앙마이 공항에 내리고 보니 사람들이 모두 반팔을 입고 있었다. 한 달치 묵을 짐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 있어서 그 위에 무거운 패딩까지 들기엔 버거워서 계속 입고 있었는데, 그 덕에 여름에 패딩 입은 사람의 값을 톡톡히 치르며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땀범벅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치앙마이에 온 걸 환영한다는 인사를 들으니, 그 자리에서 시원한 맥주를 원샷 하고 싶었다. 게스트하우스 1층 냉장고에는 맥주가 있었지만 초면부터 맥주를 동냥할 수 없으니 오는 길에 사 와야겠다 싶었다.


체크인은 수월했고, 태국 여행을 결심하자마자 가장 먹고 싶었던 팟타이가 점심메뉴였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서기 전 게스트들을 위한 맛집 지도를 구경삼아 펼쳤는데, 세상에 웬걸. 이렇게 맛집이 많다니. 심지어 가격은 한국의 3분의 1이었고, 평도 자세히 적혀있었다. 그 맛집 지도에 반해 30분은 넘게 훑어보다 배고픔에 못 이겨 겨우 거리로 나왔다.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반팔 원피스 하나 챙겨 입고 나왔더니 끈적끈적한 여름 냄새, 귀를 때리는 풀벌레 소리가 입구에서부터 지금이 여름이란 걸 실감 나게 했다. 2월의 초여름. 스쿠터 지나가는 소음마저 기분 좋게 느껴지는 걸 보니 여행이 시작되긴 했나 보다. 겨울 막바지에 느껴지는 여름 냄새에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특유의 한가로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치앙마이는 넓지 않은 곳이다. 서울 강남과 비슷한 규모라고 하는데, 실제로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다. 단, 걸어서만 다니기엔 생각보다 덥다. 물론 그 더위마저 기분 좋긴 하지만 보통은 그랩 바이크, 그랩 택시를 이용하거나 직접 스쿠터를 장기로 대여해서 다니기도 한다.


앞으로 여기서 한 달을 지낼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했다.' 정말 왔구나. 진짜 치앙마이에 있네? 어떻게 여길 한 달이나 올 생각을 했지?' 스스로도 의아한 물음들을 던지며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음식점은 멀지 않았는데, 팟타이 전문점이라고 하기엔 다양한 음식을 고루 팔고 있었다. 빈자리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니 익숙한 듯 영어 메뉴판을 갖다 주었다.


가게 앞에 적혀있었던 메뉴판


첫 팟타이. 태국이긴 하지만 모두가 팟타이만 먹고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도 은근히 혹시? 하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팟타이를 먹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하지만 우린 당당하게 팟타이 두 개를 외치고 누가 봐도 태국 처음 온 사람들이 팟타이를 시킨 걸 알 수 있을 만큼 설레는 얼굴로 기다렸다.



대학교 앞 팟타이를 정말 맛있게 하는 태국 음식점이 있다. 가격도 저렴한 데다 맛도 괜찮아서 먹을 때마다 "여긴 진짜 갓 성비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인데,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냐고? 거긴 꼬들면이라면 여긴 질척 질척 거리는 면이었다. 참고로 나는 꼬들 파다. 늘어지고 질척거리는데 이상하게 손이 가는 맛이긴 했지만 그건 여기기가 해외라 그렇다고 합리화하는 거였다. 나는 분명 좀 더 짜고 자극적이면서 꼬들 거리는 면을 원했었다. 사실 한국의 그 음식점 맛을 원했던 거다. 태국에 와서 한국 입맛대로 해주길 바라다니. 히든싱어 출연한 가수한테 본인을 흉내 내는 참가자 모창을 바란 격이 아닌가. 같이 주문한 이름이 예뻤던 음료수는 딸기 시럽 맛이 났다. '이번 여행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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