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 돌아온 삶의 감각이, 밀려온 파도처럼 선명하게 나를 덮쳤습니다
110일, 세계를 도는 크루즈 여행을 마쳤습니다.
"잘 살았다는 느낌은, 먼 길을 돌아와 발끝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상큼하게 다가왔습니다. “
처음엔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끝날 즈음엔,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순간순간이 다시 ‘경험’이 되었고, 그 경험은 제 삶의 밀도를 한층 더 깊게 만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쉽게 흘러가버립니다.
‘연필은 실수해도 지운 다음 새로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엘리자베스 조트(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의 주인공)의 말을 기억하면서, 저는 이번 여행을 '기억하려는 의지'로 경험의 시간들을 꾹꾹 눌러 붙잡았습니다.
시는 때로 삶을 간명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시인 반칠환은,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고 하면서,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두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년 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라고 <한평생>을 그렸습니다.
한평생이라........
언제 이 나이가 되었을까요?
제 머리칼에도 초겨울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지라도
긴 여정을 떠나보자고 남편이 제안하였습니다.
좋아요, 우리 함께 가요.
아직 우리의 좋은 시간이 아직도 앞에 남아 있을 테니.
남편의 커다란 꿈이었던 세계 일주 크루즈를 더 미루기에는 그와 나에게는 이 여행이 갖고 있는 매력과 설렘이 더 컸을 뿐만 아니라, 이 여행에 부여하는 우리들의 가치가 우선하기도 했지요.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한 작가 김민철의 표현처럼, 이 여행은 단순히 낭만이나 편안함이 아닌, ‘존재의 감각’을 일깨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수 차례 크루즈 여행을 했고, 한 달 이상의 기간을 배 위에서 크루즈 여행을 즐기기도 했지만, 이번 110일간의 세계일주 크루즈는 다른 차원의 여정이었습니다. 이 여행은 단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을 넘어, 제 자신을 탐색하고, 동행자의 내면을 이해하며, 낯선 세계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글은 삶의 어느 계절을 건너온 이들이, 더 늦기 전에 손잡고 길을 나선 기록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생은 미루는 사이에 저물어 가고,
가장 좋은 날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이 항해에서 만난 순간들은 오래도록 내 안에서 숨 쉬며, 나를 다른 나로 이끌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