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원태
염낭게나 집게, 아무르불가사리나 바지락은 갯벌의 모래를 씹어서
유기물을 빨아먹고 깨끗해진 모래만 다시 뱉어낸다. 그들은 갯벌의
청소부들이다. 가령 누군가의 말을 씹어서, 오물거리면서, 맛을 보고,
자양분을 섭취한 후, 다시 뱉어낼수는 없을까.
민물도요나 알락꼬리마도요는 갯벌에 미동도 없이 서 있다가, 염낭게나
두토막눈썹참갯지렁이가 구멍 밖으로 나올 때 날쌔게 잡아채 먹는다. 도요새들에겐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다만 마음의 어떤 집중이 필요하리라. 마음에도 정신적인 측면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마음의 육체적 측면, 즉 말이 미처 되지 못한 생각은 거기도 고요와 침묵의 뒤범벅으로 붐빌 테지만.
주꾸미의 모성은 눈물겹다. 오십여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제 새끼들 곁을 지킨다. 다시 말하지만, 주꾸미는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신경림 외 지음, 창비시선 500 특별시선집, 2024
엄원태(필명) 시인(1955~)의 본업은 대학교수였습니다. 그는 대구시협상, 김달진문학상, 백석문학상, 발견문학상 등을 수상했지요.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조경을 가르쳤던 그는 오랫동안 병마와 싸워왔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하며,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삶을 견뎌 왔습니다. 그는 "신체적인 고통과 불편함이 일상여서 삶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늘 묻곤 했다"며 "병과 공존하며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삶이 시를 쓰게 만들었다"라고 토로합니다.
그는 오래전에 큰 수술을 받았는데, 그는 "아내가 신장을 주고, 아들이 간을 줬다"며 "신체의 일부를 가족과 공유하게 됐다는 것이 설명하기 힘든 관념으로 다가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졌길 응원합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병마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삶의 기록도 단숨에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집요하게 주어진 풍경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거칠고 힘들고 모호한 시대를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주꾸미의 모성처럼 우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유기물을 빨아먹고 깨끗해진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나아지기 위한 수고를 위해 집중을 해보렵니다.
오늘
이 아침
말이 필요하지 않음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