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이시영
아파트의 낡은 계단과 계단 사이에 쳐진 거미줄 하나
외진 곳에서도 이어지는 누군가의 필생
---안희연, 황인찬 엮음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창비, 2024
혹시 새벽,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작은 거미가 거미줄을 만들었을까요.
한 올 한 올,
그 실로 집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아라크네는 베짜기와 자수의 천재이자 예술가였다고 합니다. 신화에 따르면 자신의 베 짜는 실력에 강한 자부심과 자만심으로 여신 아테나에게 도전하게 되고, 결국 아테나의 노여움으로 저주를 받아서 거미가 되어 모든 거미의 시초가 되었다고 하지요.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아라크네의 도전을 주제로 하는 ‘실 잣는 여인들(아라크네의 우화)’을 그렸습니다. 캔버스 하단, 실을 감고 있는 여인이 아라크네, 물레의 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을 잣고 있는 늙은 여인이 변장한 아테나 여신입니다. 지나친 자만심의 위험, 과도한 자기 긍정은 비현실적입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 상황, 세상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과 판단력, 겸허함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비현실적인 과대망상이나 좁은 일방적인 식견은 위험한 결정을 하게 되고 원치 않는 결과를 맞이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시에서, 그림에서, 자연에서, 그리고 생물에서, 그야말로 도처에서 스승을 만나게 되어 고마운 일상입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실 잣는 여인들 (아라크네의 우화)’>, 1644~1648,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집이라 불리는 그 작은 공간,
벽도, 문도 없이
공기 속에서 떨리는 존재처럼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우리는 모두 거미줄처럼
허공에 떠 있으면서도
단단한 땅을 찾는 것은 아닌지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길어야 다섯 줄, 짧으면 한 줄인 단시 형식을 이시영시인(1949~ )은 1990년 대 초반부터 발표했지요. 자신의 글에 사람살이와 땀냄새를 불어넣고 싶었다는 시인은 단지 ‘아름다움’으로 끝내지 않고, 언어화되지 않는 서사성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의 시는 일상적인 사물과 경험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심오한 문제를 탐구하는 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시영 시인의 시는 그가 살아가는 사회와 개인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하며,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관습적인 시집은 출간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상투성을 되풀이하는 것은 시인의 죽음과도 같다고 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시인은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도 역임했습니다.
<그네>는 그의 대표적인 시 중 하나로, 일상적인 공간과 물리적 구조 속에서 인간 존재의 지속성을 탐구하는 시입니다. "낡은 계단과 거미줄"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그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삶의 흔적들과 그 속에서 여전히 이어지는 삶의 연결을 강조합니다. 이 시는 삶의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존재를 상기시켜 줍니다. 그 자체로 철학적인 성찰을 담고 있으며,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깁니다.
집 앞 공원이 단장을 하더니
흔들흔들 둘이 탈 수 있는 그네를 설치했습니다.
LOVE라는 문패를 달아놓았더군요.
집 앞 산을 산책하고 난 후, 흔들거리는 그네를 타면서
옆지기와 함께 LOVE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