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뉴욕의 제3의 공간

by 윤재


미국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뉴욕 맨해튼의 거리는 어디를 가든 매력과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도시사회학 분야에서 중요한 저작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의 저서 <제3의 장소, The Great Good Place>는 행복해지려면 자신만의 아지트를 구축해야 한다고 합니다. 서열이 없고, 소박하게 대화 나눌 수 있는 자유로운 관계의 공간인 아지트. 자유와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노년을 위해, 삶이 허기질 때 찾아갈 수 있는 공간, 저의 제3의 장소 중 하나는 미술관입니다.



오늘도 행복해지는 시간을 찾아 우리는 뉴욕인들의 문화 아지트 뉴욕 현대미술관(MoMA)으로 갑니다. 맨해튼 중심가에 있어 크루즈가 정박한 Pier 89에서 도보로 가기에는 접근성이 매우 좋았습니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화가이며 영화감독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 지난 토요일밤의 열기를 식히며, 나른한 일요일 아침의 게으름과 고요와 고독이 전해지는 그의 그림 <이른 일요일 아침>과 같은 거리를 아침에 한가롭게 서둘지 않고 걸어 MoMA에 갔습니다.



호퍼 일요일 이른 아침.jpg

에드워드 호퍼, <이른 일요일 아침>, 1930, 뉴욕 휘트니 미술관



그림 속 풍광은 인적은 없고 아침 햇살만 존재합니다. 커다란 이발소의 기둥과 소화전이 긴 그림자와 함께 전면에 있고, 가게는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고 있습니다. 길고 붉은 건물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보입니다. 황량하고 텅 빈 거리와 상점은 대공황 당시, 도시의 어려운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이른 일요일 아침의 문 닫은 작은 상점들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으로도 보입니다. 뉴욕의 7번가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인데,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은 웨스트 53번가와 6번가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근현대 미술에 초점을 맞춘 뉴욕현대미술관은 파블로 피카소, 잭슨 폴록, 앤디 워홀, 프리다 칼로, 앙리 마티스,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조지아 오키프, 마크 로스코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 작품은 항상 바뀌고 있어 여러 번 방문을 해도 전시된 작품은 같지 않습니다. 전날 방문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도 마찬가지로 관람객이 볼 수 있는 작품들은 한정적입니다.


20만 점 이상의 예술 작품을 포함하고 있으며. 1929년 개관한 이래 지속적으로 공간을 확장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건물 외관은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뉴욕 도심의 공간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위치의 편리성이 우선할 수 있습니다. 상설 전은 3가지 범주로 운영됩니다. 5층의 1880년부터 1940년대까지의 작품, 4층의 1940년부터 1970년대의 작품, 3층의 1970년대 이후 최근 작품으로 구분합니다. 입장권은 여행 출발 전에 미리 구입하였습니다.



미술관.png





MoMA 중정.jpg



도착하고 보니 MoMA 앞에는 휴일이라 그런지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혼잡하지만 입장 시간이 되자 대기줄은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미술관들의 의도처럼, 여기 뉴욕 현대미술관에 비치되어 있는 테이블, 의자, 사진, 포스터 등도 전시된 작품들처럼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5층부터 관람을 시작하였습니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라고 한 폴 세잔의 그림들과 폴 고갱, 강렬하게 시선을 빨아들이는 앙리 마티스의 <빨간 스튜디오>을 비롯해 <춤 I>, <수영장>, 다리가 아픈지 입구 벽에 기대고 있는 경비원이 무심히 지키고 있는 피에트 몬드리안의 방, 일요일의 화가란 별명을 갖고 있는 앙리 루소의 그림들, 무심한 듯 연결된 선으로 유지된 두 시선이 독특한 마르크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 MoMA에서 꼭 봐야 하는 그림에서 빠지지 않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희망 II> 외 다수의 그림, 앉아서 천천히 보게 배려한 의자 앞의 <아비뇽의 아가씨들>, 팔짱을 끼고 앞에서, 뒷걸음질 치며 바라보는 <거울 앞의 소녀> 들을 그린 화가 피카소, 손을 앞으로 모으고 겸손한 자세로, 또는 고개를 빼고 조심스럽게, 가까이서 또는 뒤로 물러서서 정말 많은 관람객들로 분주한 ‘아~ 고흐’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우체부 조제프 룰랭의 초상화>, 몽환적인 클로드 모네의 <수련>,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호안 미로,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 작품들, 마네, 뭉크,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 살바도르 달리, 프리다 칼로, 르네 마그리트,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로이 리히텐슈타인, 뒤샹, 잭슨 폴록, 드 쿠닝, 올덴 버그, 쿠사마 야요이, 알젤름 키퍼...

많은 그림들 사이에서 몸과 마음이 붕 뜨며 움직입니다.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의무가 된 희망

전에 읽은 글귀 중에 “어떤 희망은 의무다.”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 문장은 규범적인 저한테는 또 다른 의무로 다가왔기에, 주저하지 않고 희망을 의무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클림트 희망.png

구스타프 클림트, <희망 II>, 1907-1908, MoMA



이 그림에서 여인의 붉은색 바탕에 금빛 무늬 옷은 가운처럼 위에 걸쳐 있고 그 아래 옷 역시 화려합니다. 마치 롤리팝 사탕 같습니다. 임산부의 얼굴 표정은 상세히 전달되지는 않아 더 추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브라운과 올리브가 혼합된 어두운 배경 색에 금빛 가루가 점점이 박혀 있어 여성의 의상이 더 강렬한 색상으로 다가옵니다. 여성은 아이의 안전을 기원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지만 그녀의 배 위에 있는 것은 죽음의 머리, 그녀가 직면한 위험의 신호입니다. 그림 하단, 여성의 발아래에는 두 팔을 들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세 여인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싶은 희망일까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동서양의 교차점인 비엔나에 살면서 비잔틴 미술, 미케네 금속 세공품, 페르시아 양탄자와 미니어처, 라벤나 교회의 모자이크, 일본 병풍 등의 자료를 그렸습니다. 1890년대 후반, 젊은 신동이자 황제상을 수상한 클림트는 예술계에서 벗어나 젊은 예술가 그룹을 이끌고 비엔나 분리파를 결성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상징주의 화가이자 빈 분리파 운동의 주요 회원으로 회화, 벽화, 스케치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쇼펜하우어, 니체, 바그너의 영향을 받고,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성, 본능, 현실에 대처하려는 마음의 시도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같은 심리성적 주제에 끌렸습니다. 클림트 작품의 주요 주제는 초상화, 여성을 주로 표현했으며, 장식적 패턴과 금색을 사용한 에로티시즘으로 유명합니다.


임산부를 그리는 것은 당시에는 여전히 금기시되었습니다.

《희망 II》에서 나타나는 여성은 단순히 '희망'의 상징이 아닙니다. 클림트는 이 여성의 몸에 드리운 장식적 요소를 통해 인간 존재의 양면성—희망과 절망, 생명과 죽음, 사랑과 고통—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몸에 감도는 불확실성은, 마치 생명과 죽음이 서로 얽혀 있는 순간의 복잡성을 드러냅니다. 여성의 표정에는 무언가 갈망하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그 갈망은 단순한 행복의 추구가 아닌, 그 자체로 위험과 고통을 내포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성이 임신한 상태로 나타나는 것은 희망의 태동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희망이 결코 확실하거나 안전한 것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그녀의 손길은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도록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려는 듯한 느낌을 주며, 그 여정이 고통과 두려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클림트 자신은 이 작품을 '비전(Vision)'이라고 불렀지만, 그는 이전에 임산부를 그린 관련 그림을 '희망(Hop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전 작품과 관련하여 이 작품은 Hope II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MoMA에는 클림트의 <희망 II>가 전시되어 있지만, 1903년에 제작된 <희망 I>은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Hope I>과 <Hope II>는 모두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한 클림트의 관심을 반영하며 관능미, 상징주의, 생생한 장식의 독특한 조화를 통해 전달됩니다.


<희망 I>은 클림트의 모델 중 한 명인 헤르마(Herma)는 임신하여 모델을 그만두고 싶었으나 경제적 이유로 파격적인 포즈를 취했다고 합니다. 그림 속의 붉은 머리의 임산부는 앞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녀는 정면을 직접 바라보고 있으며 머리에 물망초 꽃 머리 장식을 두른 붉은 갈색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숭고한 장면이지만, 시선을 여인 옆 배경으로 옮기면 죽음과도 같은 괴기하고 위협적인 형상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에 존재하는 주제는 탄생과 죽음 등 모순적입니다. 배경의 어두운 인물들과 두개골은 위협적으로 보입니다. 당시에는 임신한 누드 여성을 그리는 것이 흔하지도 용납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클림트는 1909년까지 이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클림트 희망 I.png

구스타프 클림트, <희망 I>, 1903, 캐나다 국립미술관



구스타프 클림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키스일 것입니다. 클림트의 《키스》는 사랑의 깊이와 열정을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그림 속 두 연인은 금빛 배경과 화려한 장식적인 문양 속에서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깊은 입맞춤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의 몸을 감싸고 있으며, 그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집니다. 클림트는 두 인물의 옷을 금박과 다양한 무늬로 장식하여, 물리적인 존재 이상의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의 간격이 거의 없어 보일 정도로 밀접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감정을 교환하는 순간이 한없이 소중하고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손이 여자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여자의 손은 그의 목에 얹히며, 두 사람의 몸이 완전히 얽히는 모습은 그들이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입니다.




클림트 키스.png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8, 벨베데레 미술관



클림트의 그림 <키스>는 최현우 시인의 시가 떠오르게 합니다.


<키스>

최현우


검은 머리 노을에 익어 붉고

열매처럼 달아오른 흰 뺨

나보다 슬픈 당신이 녹는다

내 속에서 뜨겁게 녹는다

같은 피를 나눠 가지며

빛이 되어 부서지고 또 부풀어

우리 바깥이 모조리 캄캄해진다


생의 어두운 시간이

환한 빛으로 터질 때


그림자마다 꽃이 핀다

모두 당신이었다




"예술은 당신의 생각들을 둘러싼 한줄기 선입니다. "라고 말했던 클림트는 "어느 해인가는 크리스마스 때인데도 집에 빵 한 조각이 없었다”라고 할 정도로 궁핍하고 가난했다고 전했습니다. 일찍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그의 인생은 충격과 두려움 그 고통의 연속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나 언제나 사랑이 풍부한 남자였습니다. 무려 수십 명의 여인이 그의 품을 거쳐갔습니다. 심지어 그가 죽었을 때 14명의 사생아 어머니가 아이들 대신 유산상속을 청구할 정도였습니다. 그의 그림에 한번 모델이 되었던 여성과는 모두 정사를 나눈다는 소문이 난무할 만큼 여성 편력이 뛰어나고 탁월했던 그는 ‘빈의 카사노바’로 불렸다고 합니다.(출처 : 중앙뉴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 1925~2013)는 현실치료 및 선택이론을 제안하였습니다. 개인의 모든 행동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주장한 이론을 적용시켜 본다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선택하는 5가지 기본욕구 - 소속과 사랑, 힘(권력, 경쟁, 인정, 성취 등), 자유(독립, 자율성), 재미(즐거움), 생존(생리)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내면의 가상 세계 '좋은 세계(Quality World)'를 발달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윌리엄 글래서의 이론에 적용시켜 본다면,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 여성에게 관심이 있었다"라고 한 클림트는 사랑과 재미의 욕구가 우선하면서, 자유와 힘의 욕구를 충족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클림트는 생전에 명성을 얻은 화가였지만 사후 한동안은 관심이 멀어졌었다가, 1980년대 이후 다시 그의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되었습니다.




별빛 속의 고요한 춤

1889년에 제작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는 역시 아주 많은 관람객들이

그의 그림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조용히 돈 맥클레인의 노래 ‘빈센트’를 아주 낮은 소리로 불러 반 고흐와 비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습니다. 어찌 우리가 이 그림을 무심히 지나칠 수가 있겠는지요.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확신은 없지만, 별들의 풍경은 꿈을 꾸게 한다고 한 빈센트 반 고흐!

궁핍한 삶과 취약한 몸과 마음의 상태로 좌절된 상태지만 그래도 밤하늘의 별은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어두운 밤도 언젠가 끝나고 해는 떠오를 것이다"라고 한 반 고흐가 그의 예술에 대한 세간의 평가, 그들이 비춰주는 햇빛을 살아생전에 보았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너무 커서인지, 작은 그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 제게는 큰 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png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1889, MoMA



<별이 빛나는 밤>은 갈망과 열정, 혼돈과 평화가 뒤섞인 예술적 표현으로, 그 감각적이고도 감동적인 특성 덕분에 가장 감각적이고 심오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지요. 이 그림을 분석한 다양한 접근들이 있을 만큼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입니다.


밤하늘은 격렬하게 움직이고, 별들과 달은 거의 초자연적인 빛을 발산하는 듯합니다. 이 형태들은 단순한 천체의 묘사가 아니라, 예술가의 감정적 강렬함을 나타내는군요. 두터운 붓질로 그려진 별들은 에너지와 느낌이 가득 차 있습니다. 각기 다른 소용돌이와 곡선은 반 고흐의 내면의 혼란과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갈망을 외적으로 표현한 듯 보이며, 강렬한 흡인력이 있습니다. 역동적인 파란색의 하늘과 별들의 황금빛은 어둠 속에서 빛과 따뜻함을 제공하며, 이러한 빛의 대비가 작품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듭니다. 하늘 위의 별들과 달은 반 고흐의 내면의 에너지를 반영하는데, 그 대비로 마을은 평화롭고 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어두운 초록과 불꽃같은 형태로, 물리적 현실과 신비롭고 격렬한 우주 사이에서 소통의 연결지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을의 정적과 하늘의 극적인 대비는 긴장감을 줍니다. 사이프러스 나무와 교회의 첨탑이 하늘에 맞닿아 있습니다. 강렬한 붓질과 풍부한 색채는 그의 감정 상태와 영적 깊이를 고스란히 담아내며, 그 속에서 우리는 그의 갈망, 불안, 그리고 우주와의 연결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 아주 강렬한 파란 하늘에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있고, 때로는 별과 달이 밝게 빛나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매우 강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전에 그린 것과는 전혀 다른 주제로, 그 하늘의 움직임과 깊이를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사랑의 미스터리

솜씨 좋은 장인의 세심한 손길로 만들어진 수제 맥주와 달콤하고 바삭한 와플 등으로 유명한 브뤼셀 출신의 르네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967)의 그림 <연인>을 보았습니다. 전통적인 색상의 조화나 대비 등을 거부하고, 시적인 분위기를 만들며 대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연관성 없는 두 사물을 연결하는 등 도치와 병치 등 독특한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


그는 브뤼셀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광고회사를 다니다 우연히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집을 보고 화가가 되었답니다.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고, 초현실주의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광고 패러디와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통상적인 방식과 전혀 다르게 눈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림 <연인>은 정장을 입고 하얀 천으로 얼굴과 목을 감싸고 있는 연인이 키스를 합니다. 두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닿을 수 없는 장벽은 무엇일까요? 아니면 상대의 눈을, 상대의 얼굴을 안 보고도 맹목적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일까요? 상황이 위태롭고 불안합니다.




마그리트 연인.png

르네 마그리트, <연인>, 1928, MoMA



우리가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의 인식과 감정은 언제나 한계를 지닙니다. 마그리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를 직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얼굴'일 뿐,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자아나 감정은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그 진실을 보지 못하는 존재로서 항상 한 걸음 뒤에 있습니다. 이처럼 마그리트는 시각적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적 접근법은 현실을 왜곡하고,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일상적인 장면을 낯설게 만듭니다. 두 인물의 가까운 거리, 흰 천, 그리고 그들의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는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친밀함과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것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 작품은 감각적으로도 매우 강렬합니다. 천의 부드러운 질감과 인물들의 신체적인 존재는 감각적이고 촉각적인 경험을 일으킵니다. 그들의 얼굴이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이처럼 시각적인 혼란을 통해 감각과 감정의 복잡성을 탐구했습니다. 이 얼굴을 가린 천은 마그리트가 자주 사용했던 기법으로, 일상적인 사물을 불현듯 낯설게 만들어 우리에게 현실과 비현실을 동시에 경험하게 만듭니다.


마그리트는 파리에 머물며 ‘연인들’ 시리즈를 4점 제작했는데, 모마에 전시된 것과 같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그린 것은 2개입니다. 얼굴을 천으로 가린 이유가 마그리트가 어린 시절에 목격한 어머니의 자살인 것이 아니냐는 추론에 대해 마그리트는 아니라고 부인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추론은 이 그림이 시야를 차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연인들의 키스 장면은 많은 화가들이 그렸습니다. 남녀의 윤곽이 구분되지 않고 한 덩어리로 묘사된 뭉크의 <키스>, 두 눈을 살포시 감은 금발 여성의 뒷 머리카락을 잡고 눈을 감은 채 키스를 하고 있는 로이 릭턴스타인의 <키스>, 황금 가루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화려한 색상들이 눈부시고 약간은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불편한 포즈로 키스를 하는 클림트의 <키스>,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듯 안타깝고 격정적인 비밀스러운 키스를 그린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키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낯선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며 추론을 하게 만듭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디자인 영역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래전 모 백화점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가림막 장식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중절모 쓴 남자들을 그린 <겨울비, 1953>도 있었습니다. 그는 “회화를 통해 사유를 가시화한다”라고 말했는데, 마그리트의 그림은 직관적으로 느껴지기보다는 뭔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는 이미지와 단어의 배반으로 당혹감을 줍니다. 파이프를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다니요. 순간 우리 소설 <홍길동전>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길동이. 화가의 의도는 자신의 상상 속에 있는 이미지로서의 파이프지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92328.jpg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9, LA 카운티미술관



사물의 명칭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약속이지 그것의 속성이나 본질에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마치 김춘수 시인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처럼 존재의 본질과 이름이 가지는 개별적인 상징성과 의미는 다른 것이겠지요.


새로운 발상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시각적 충격을 안겨주며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만든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는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진의 기능을 새로운 형식을 도출하는 매체로 확장시켰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매료되었던 마그리트는 직접 대본을 쓰고 친구들과 함께 짧은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마그리트는 자신은 그림을 통해서 생각을 교류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화가보단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는 마그리트는 헤겔, 베르그송, 하이데거 등의 철학서를 탐독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지요. 또한 논리적인 사고를 벗어나는 꿈같은 장면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무의식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예술이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라고 말한 마그리트의 시도는 참신합니다. 관습적인 삶이 아니라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 다시 보기, 거꾸로 보기, 뒤집어 보기, 도치시켜 병치시켜 보기, 보는 것 이상 생각하고 상상해 보기, 익숙한 대상에 새로운 의미와 상징 부여하기 등 - 그의 다양하고 풍부한 기법은 문제 해결이나 갈등해결에 적절한 대처 방법으로서의 준거를 부여해 줍니다.



미술관에서의 시간은 제 무디어진 감각을 자극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으며 때로는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게 됩니다. 미적 경험을 넘어 감정과 사고를 확장시키는 시간이 됩니다.

클림트의 작품은 사랑과 신성함을, 고흐는 감정의 강렬한 표현을, 마그리트는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탐구하게 합니다. 오늘도 제3의 공간에서 행복한 수다를 그들과 나누었습니다.



맨해튼의 크루즈 터미널이 새로 탑승하는 승객들의 승선 수속으로 번잡합니다. 그들의 기대와 설렘, 가벼운 흥분이 터미널 내에 번집니다. 환영의 마음으로 그들을 반깁니다. 이제 크루즈는 이틀간의 뉴욕 정박을 마무리하고 다음 행선지, 미국의 땅끝 마을 키 웨스트를 향해 뱃고동을 울리며 출발합니다.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을 든 팔을 흔들며 환송하고 있습니다.

Good bye ^^

See you again!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