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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만 행운이 온다고?

by 윤재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지는 순간, 바다는 더욱 설레고 심장은 빠르게 뛸 것입니다.

바다 한가운데, 행운을 향해 다가서는 이들의 짜릿하고 가벼운 흥분이 함께 합니다.

카지노, 흥미와 불확실한 기대가 모여 있지요.


크루즈 안에는 카지노가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 끊임없이 돌아가는 슬롯머신의 소리.

그 공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인간의 욕망과 환상, 그리고 기대의 불확실한 그림자가 교차하는 무대입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딸이자,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려진 에이다 바이런(에이다 러브레이스) 역시

수학적 천재였지만 도박 중독으로 고통받다가 경제적 궁핍 속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확률의 계산자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운의 세계에 빠져버린 수학자였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수학적 능력이 도박에서도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도박 중독자의 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소설 <도박꾼>의 자전적 모델인 도스토옙스키는 심각한 도박 중독자였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토록 수많은 감각들이 지나쳤지만 내 영혼은 만족이라는 것을 모른다.” “주변이 가능성으로 충만할 때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가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도박은 인간의 가장 큰 환상 중 하나이며, 모든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도박을 한다”라고 도박중독자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했습니다.


심지어 원숭이도 안전한 보상보다 스릴이 있는 위험한 도박을 선택한다는 듀크대학의 신경생물학자 마이크 플랫 박사의 연구 결과는 이길 확률보다 질 확률이 분명함에도 도박에 빠져드는 심리적 기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단순히 ‘이길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만은 아닙니다. 불확실성 그 자체가 주는 쾌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쾌감이 때론 판단력을 흐린다는 것이지요. 불확실성이 클수록 사기에 빠지기 쉽고, 특히 자기 합리화 경향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리고 근거 없는 낙관과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품은 사람일수록, 쉽게 착시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불확실성이 클 때, 사기를 당할 확률이 높다는 많은 선례들이 존재하고, 자기 합리화 성향이 높을 때 사기꾼에게 자양분을 제공하는 타깃이 되기도 하고, 사기꾼이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를 현실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할 때 손쉽게 사기에 걸려든다는 거지요. 현실적인 판단과 분별이 전제된다면, 기대나 낙관보다 손실과 그것이 줄 악영향을 보게 되는데요, 영화 <범죄의 재구성> 마지막 대사는 “지금 이 사람은 상식보다 탐욕이 크다”로 마무리됩니다. 탐욕이 클 때 결과가 어떻게 다가올까요?


많은 사람들이 재미나 즐거움, 사교적인 오락으로, 여가의 일부로 생각하면서 도박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또한 자신이 도박에서 이길 확률을 높게 간주하고 자신의 통제 능력을 과도하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카드놀이는 대표적인 놀이 문화 중의 하나입니다. 카라바조나 세잔도 카드놀이를 소재로 그림을 남겼지만,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은 이 카드 게임에 임하는 인물들을 선명하게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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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이용한 속임수(Cheater with the Ace of Diamond), 1647년경, 캔버스에 유채, 106 X 146 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그림을 좀 들여다볼까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타인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는 없지요. 따라서 타인의 의도나 인상을 외적으로 관찰되거나 판단되는 정보에 의존하게 되지요. 인상은 우리가 다른 개인과 상호작용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인상을 기반으로 상호작용하고, 그들에 대한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림 속에서 묘사되는 인물들의 은밀한 표정, 몸짓은 관객인 우리로 하여금 이후 전개될 수 있는 예상 스토리를 구성하게 합니다.


화면 속 인물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그들의 눈빛과 손짓, 고요한 긴장감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우리에게 곧 벌어질 사건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카드를 뒤 허리춤에 감추고 슬쩍 숨기며 속임수를 쓰려는 남자, 그 곁에서 은밀한 눈빛과 제스처가 음모를 품고 있는 듯한 여인들, 동석한 타인들에 대한 관심 없이 무심하게 오직 자신의 카드에만 집중하는 오렌지색 공작 깃털을 단 모자를 쓰고 있는 풋풋하고 뽀얀 살결의 부유한 청년. 이제 청년의 앞에 놓인 금화들은 어디로 갈 것인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손동작과 시선으로 심리적 묘사가 출중한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1593 ~ 1652)는 루이 13세 때 궁정화가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로 제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투기와 고리대금업으로 말년에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부유했으나 그는 농부들과 하인들을 상대로 악행을 일삼고 탐욕스러워서 주변의 평판은 대단히 좋지 못했고 그의 속물스러운 욕망과 인간에 대한 불신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이용한 속임수'와 같은 그림으로 매우 잘 표현하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보게 됩니다. 당시 17세기 사람들이 가장 경계한 세 가지가 도박, 여자, 술이었다고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술과 도박은 삶을 파멸로 이끄는 강력한 요인입니다. ’ 하늘이 내린 묘약‘이라고도 칭하는 술은 그 적당량을 유지하는 것이 마치 자기 자신을 아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겠지요.


명암대비를 잘 활용하여 프랑스의 카라바조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거짓과 속임수로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그의 생애는 아이러니합니다.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이용한 속임수> 그림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우리 안의 불신과 욕망, 관계 속 기만의 거울인 것 같습니다


도박 중독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합니다. 많은 경우 도박으로 인한 경제적 파탄은 가족의 관계를 끊어 놓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도박과 관련성 높은 것이 ‘내기’ 일 것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동료들과 내기를 했었다는군요. 실제 일어난 일인지, 당사자가 헤밍웨이였는지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분분분 하지만, 어휘, 단어와 관련된 내기를 했었는데, 내기의 내용인즉 자신이 여섯 단어로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하면서 합석한 동료들에게 10달러를 내기로 걸게 했답니다.


그는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습니다)를 적었습니다.

여섯 단어이군요.

이 간명한 문장을 인상적으로 받아들인 훗날 작가들이 ‘여섯 단어 혁명’으로 수용하면서 여섯 단어 작문이 하나의 문장 작성 기법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고도 합니다.


크루즈 선박 내에는 카지노에 들어가면 커다란 행운이 본인한테는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거나, 그저 심심풀이 게임일 뿐 자신은 중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소모하는 승객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초심자의 행운처럼 첫 카지노 방문에서 돈을 땄던 짜릿한 경험을 잊지 못하거나, 흥미롭지만 위험할 수 있는 짜릿한 불확실성이 주는 도파민 효과를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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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박 내에는 카드 룸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승객들은 카드 게임, 마작을 즐기고, 퍼즐 조각을 맞추며 즐거움을 누립니다. 우리도 가끔 그곳에서 원 카드나 훌라 등의 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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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미래에 대한 내기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책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후의 삶이 내기가 되지 않도록 불확실한 기대는 줄여야겠습니다. 불확실한 기대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빠른 기술 발전과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 변화, 경제적 불안정성 등 외부적 요인은 미래에 대한 심리적 압박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고(故) 존 크롬볼츠(1928 ~ 2019)는 ‘준비된 우연 또는 계획된 우연, Planned happenstances’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우연이 준비되거나 계획될 수 있을까요? 삶에서 만나게 되는 우연적 사건들이 긍정적 효과를 도출하고 그와 같은 준비된 우연을 만나기 위해서는 ‘호기심, 인내심, 융통성, 낙관성, 위험 감수’를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연이나 행운으로 말할 수 있는 것들도 실은 준비된, 계획된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불확실한 기대를 줄이려면, 준비된 이론 이론의 5가지 심리적 구성 요소를 향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개방성과 수행능력, 실행력을 증진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하여 준비되지 않은 우리는 카지노는 스쳐 지나가곤합니다.

이곳은 통과!

그렇지만 끝없는 확률의 바다에서, 나는 또 다른 운명의 문을 두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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