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 당시 자유를 외쳤다가 고난을 당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인간 기관차’라는 별칭의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에밀 자토펙.
그가 남긴 말 중,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라는 말은 달리기를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곤 합니다. 또 그는 이런 멋진 말도 했습니다. “통증과 괴로움이라는 경계선에서 어른은 아이와 구분된다”. 통증과 괴로움을 견딜 수 있거나 이겨내면 어른이라는 것이겠지요.
크루즈 생활 중에도 갑판 위를 걷거나 달리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걷는 사람들 중에는 거북목으로 걷거나, 자라목 상태로 걷거나, 반듯한 바른 자세로 걷는 사람도 있고,
오리걸음처럼 뒤뚱뒤뚱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노화가 진행되면서 바른 자세로 걷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달리는 사람들도 다양한 자세로 달리네요. 가볍게 조깅하는 사람, 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속도를 높이는 사람, 땀에 젖은 얼굴로 자신의 한계와 대면하는 사람. 그들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 인간은 언제부터, 왜 달리기 시작했을까요? 사냥과 대 이주를 위해 직립보행과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책에서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심지어 인류를 인류답게 만든 결정적인 특징은 ‘달리기’라는 학자도 있군요.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빨리 달릴 수는 없어 그 대신 오래 달리기로 전략을 바꿔 진화했고, 또 오래 달릴 수 있어 우리가 생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진화생물학자인 대니얼 리버만은, “자연선택이 인간의 달리기를 선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인간은 원숭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라고 했네요.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여성이 장거리를 달린다는 것은 사회적 금기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지금 우리가 장거리라고 생각하는 거리 정도를 달리는 여성들은 마치 품행이 단정치 못한 것인 양 비난을 받았답니다. “고상한 여성들은 노골적으로 가슴이 움직이게 되는 일을 찬성하지 않았다. 땀을 흘리는 일은 괴이하고 여성스럽지 못하며 매력이 없다고 봤다. “라고 합니다.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저, 정미화 옮김, 북라이프) 심지어,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달리기를 저지당하기도 했답니다.
우리가 머무는 8층에도 달리기를 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혼자 왔는지 일행은 보이지 않고 소매 없는 상의에 짧은 운동복을 입고, 상체를 기울이고 다리를 질질 끌 듯 달리기를 하는 그래서 우리가 ‘하니’라고 별칭을 붙인 여성이 있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입었는지 운동복 색은 햇빛에 바래어 퇴색되고 그 짧은 바지는 원단이 삭아서 민망하게도 그녀의 앙상한 속살이 보이기도 하고요. 앞 이는 빠지고 몸은 매우 가냘픈데 뷔페식당에서 보면, 그녀의 식사량은 제가 먹는 양의 두세 배는 되는 듯하고요. 음식 종류를 보면 고단백 위주로 듬뿍 담아 오곤 하더군요. 그녀는 배가 기항지에 닿으면, 다른 일에는 관심 없고 일찌감치 선박을 벗어나 그 지역을 달리곤 합니다. 선내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이벤트에는 참여하지 않고, ‘달리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저 달리기만 하는군요. 그녀를 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도 생각납니다.
오가다 만나면 가벼운 인사만 나누다가 하루는 그녀에게 다가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오래전에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고 해요. 입맛이 없어지고 잘 먹지를 못하니 몸무게가 다이어트를 원한 것도 아닌데 쑥쑥 빠지고요. 물론 병원에서는 특별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TV에서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달리기의 효능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달리기가 자신에게 좋은 운동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더랍니다. 하여 운동화와 운동복을 구입해서 집 근처를 천천히 조금씩 걷다가 달리다가를 반복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다음 진행 과정은 짐작하시겠지요. 달리기가 그녀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매일 달리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는군요. '달려라 하니' 그녀에게 달리기는 기도이고 치유이며, 존재의 방식이 된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달리기에만 집중하기 위해 크루즈 여행을 계획했답니다.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방해받지 않고 운동할 수 있는 세계 일주 크루즈는 그녀에게 최적의 환경인 것이지요. 그녀가 부자냐고요? 그녀의 해진 운동복과 낡은 운동화를 보면 그렇게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아주 소박하게 검소하게 살고, 여행 중에는 작은 자신의 집을 단기 임대 내놓고,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크루즈에서 가장 저렴한 인사이드 방을 효율적인 가격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이가 듬성듬성 빠진 모습을 가리지 않고 씩 웃습니다.
‘영국 타임스’는 ”60분 달리기를 하면 수명 7년이 늘어난다 “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제시하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요. 그 기사는 ‘심혈관계 질환 프로세스’에 실린 논문을 바탕으로 한 기사였습니다. 더불어 많은 연구에 따르면 걷기 또한 우울감을 낮추는 효과뿐 아니라 창조적인 생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걷기는 심폐 기능을 놓이고 혈액순환을 촉진해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 및 치료에 효과적이고 스트레스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심리적 역량을 증진시킨다고 합니다.
직립 인간은 걷는 동안 몸과 정신이 통합되며 온전해진다고도 합니다. 걸으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걷는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 철학자들은 걷는 길에서 통찰과 영감을 얻는다는군요. 『걷기의 인문학』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이라고 설명합니다.
크루즈에는 산책이나 조깅을 할 수 있는 데크가 7층과 14층에 있는데, 한 바퀴 돌면 약 0.6 km ~ 1km 정도입니다. 심하게 바람이 불거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데크 산책길은 폐쇄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요. 물론 선내에는 체육관이 있어서 그곳 트레드 밀에서 달리기를 하는 많은 승객들도 있습니다. 아름답고 장엄한 일출과 일몰의 시간,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배 안에서 달리거나 걷는 시간은 지상에서의 그것과 달리 독특한 느낌을 주곤 합니다. 친구인지 좋아하는 사이인지 서로 장난치면서 놀고 있는 물개들을 보거나(자신의 발을 가지고 장난치며 배영을 유유히 하고 있더라고요), 물보라 내뿜는 돌고래를 보는 것도 덤이고요. 가까이에 섬이나 육지가 있는지 날아다니는 새를 보는 것도 그 시간을 누리는 즐거움의 하나가 되지요.
장석주는 “걷기는 그림의 여백에 가깝다”라고 말하였을 뿐 아니라 그에 덧붙여 산책은 “사유와 경험과 도착만을 생산하는 육체노동 일뿐만 아니라 휴식, 기분 전환, 시적 통찰의 시간을 선물로 주는 활동이다”라고 걷기를 예찬하였습니다. 승선 전에도 우리는 집 앞에 있는 좋은 산책길을 자주 이용하였지요. 관할 구청에서 깔끔하고 정결하며 예쁘게 관리해 주고 사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산책길이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점심 식사 이후에 산책을 하기 때문에 같은 시간대를 활용하는 커플들을 만나기도 하지요. 우리는 웃으면서 저 팀도 은퇴 커플인가 보다~라고 추론하면서 나름 별칭을 붙여보기도 하는데, 서로 간격을 두면서 걷는 커플은 3 Meter 커플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오늘은 화해를 했는지 간격이 줄어 바로 뒤에 붙어서 가고요,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손을 잡고 걷는 저 커플은 로맨스 커플, 말없이 걷기에 집중하는 그 커플은 직진 커플, 그들도 우리에게 별칭을 붙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