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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by 윤재


이제 일과 여행의 경계는 허물어졌습니다.


Digital Nomads,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크루즈 선내에는 인터넷 카페가 있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면, 노트북으로 화상 회의를 하거나 업무에 집중하는 승객들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심지어 부모가 자녀의 학습을 도와주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 덕분에, 디지털 노매드들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일하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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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크루즈 여행 중에도 인터넷 연결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일부 크루즈는 Wi-Fi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속도와 품질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업무를 계속하며, 일과 여가를 동시에 만끽합니다. 이는 현대인의 삶에서 ‘연결’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킵니다.


기술과 여행이 융합된 시대에 디지털 노마딕 라이프스타일(digital nomadic lifestyle)은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전통적인 디지털 노매드의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럭셔리와 모험, 연결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개척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삶의 무대는 바로 크루즈 선상인 것이지요. 디지털 노매드는 주로 프리랜서, 원격 근무자, 또는 온라인 기반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 연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전 세계의 바다가 호화로운 여행, 휴식, 멋진 풍광을 제시하면서 점점 더 많은 수의 원격 근무자와 프리랜서들이 전문적인 삶과 독특하고 잊을 수 없는 여행 경험을 결합하기 위해 크루즈 선박을 타고 항해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빠른 속도를 제공하고 공해를 항해하면서 원활한 원격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 덕분에 디지털 유목민의 라이프스타일이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이 되고 있습니다. 크루즈 선박은 오랫동안 여가, 휴식, 열악한 인터넷 연결과 연관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유목민 시대에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유람선에서의 생활에는 고유한 어려움이 따릅니다. 크루즈 선박 생활의 리듬에 적응하고, 건강을 관리하고, 간헐적으로 항구 도착이 지연되거나 항구가 취소되는 경우를 처리하는 것이 모두 여행의 일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적응성과 예상치 못한 상황을 포용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그의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유목민을 “다음 세기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기술하며, 외국인 근로자, 정치적 망명자,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 하이퍼 계급의 구성원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유목민이란 가볍고 자유로우며, 타인을 환대하고, 항상 연결되어 있으며, 박애 정신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탈리는 또한 “부유한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여행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이동해야 할 것”이라며, 결국 모든 이가 유목민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유목민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 중심으로 삶을 살고, 그 삶은 끊임없이 움직임을 동반한다고 설명합니다.


현대 정보화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서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 없이는 쉽게 뒤처질 수 있습니다. 이런 특성을 아탈리가 현대를 유목민의 시대로 구별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우리는 이제 수직적 정착에서 벗어나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요구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익숙한 습관과 패턴에 안주하며 자신이 세운 것이 견고한 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워케이션, 즉 “work”와 “vacation”의 합성어는 장기간 여행지에서 일하며 지내는 새로운 형태의 업무 및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제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원격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도 주거와 식사를 해결하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리빙 애니웨어’(living anywhere)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대도시의 높은 거주 비용과 I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해외에서 디지털 노매드로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사무실 없이 전적으로 디지털 노매드로 운영되는 창업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훌륭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 대규모 극장,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스파 및 미용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크루즈 여행은 단순한 휴식의 개념을 넘어서, 디지털 노매드의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과 여가가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닙니다. 바다 위에서 새로운 문화와 경험을 나누며,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신선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선상에서 펼쳐지는 일상적인 업무는 흔히 생각하는 휴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많은 이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하겠지요.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한 회의, 해 질 무렵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진행하는 영상 통화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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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유연한 사고방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대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익숙한 습관과 패턴에서 벗어나 자신을 점검하고 전환하는 발상과 행동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꿈이 있는 자의 보따리는 가볍다고 하지요, 예전처럼 빠르게 내닫지는 못하더라도 부드러운 속도로 무게를 줄이는 작업을 병행해야겠습니다. 이 디지털 노매드의 시대에...

이러한 맥락에서 디지털 노매드 시대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인식의 지형까지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동은 더 이상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이동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정체성의 구성이 되었습니다.



최근 흥미로운 사례로, 한 크루즈 회사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있는 4년 동안 미국을 떠날 수 있는 초장기 크루즈 기획 상품을 출시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여행 기간은 1년부터 4년까지로 구분되며, 1년 상품은 ‘현실 도피(Escape from Reality)’, 2년 상품은 ‘중간 선거(Mid-Term Selection)’, 3년 상품은 ‘집만 빼고 어디든(Everywhere but Home)’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는군요. 가장 긴 4년짜리 상품 이름은 ‘앞으로 건너뛰기(Skip Forward)’인데, 해당 상품을 구매할 경우 트럼프 당선인의 임기 내내 미국을 떠나 있게 된답니다. 크루즈는 4년 동안 140개국 425개 항구에 기항하며, 다음 대선이 치러지는 2028년 11월 미국으로 돌아온다는데 이 역시 디지털 노매드의 시대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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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한 여행 상품을 넘어,
현실에 대한 유머러스한 해석이자 정치적 은유,
그리고 이동과 연결의 시대를 상징하는 극단적 사례로 읽힙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익숙한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재해석하며, 유연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더욱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 여정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구성하는 또 다른 방식의 참여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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