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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훔친 바다 위에서

by 윤재



어느 날, 하루가 사라졌습니다.

달력 위에 존재했던 그날이, 날짜 변경선을 넘는 순간 증발하듯 사라졌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하루가 지나간 것입니다.

배는 태평양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었고, 우리는 이 거대한 바다 위에서 한 날을 놓쳐버린 여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날 내가 잃은 것은 단지 하루였을까, 아니면, 시간에 대한 관념이었을까요.


프렌치 폴리네시아령의 무레아를 지나 3일간의 해상일 지나니 8월 12일이 없어지고, 8월 13일로 접어들었습니다. 바다를 건너서 크루즈를 계속하다 보면 2~3일에 한 번씩은 1시간씩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간을 조정하다 날짜변경선을 지나게 되면 하루가 아예 없어지거나 때로는 같은 하루를 두 번 보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루가 없어지는 지역을 통과하게 되었지요.




어릴 적에 펼쳐진 세계지도를 볼 때마다 의문이 들었었지요.

왜 날짜 변경선은 반듯한 직선이 아니고 이렇게 중간에 삐뚤빼뚤 지그재그로 꺾여있는지 궁금했었습니다.



변경선.png



경도 180도 상을 통과하는 이 선은 마치 왼쪽과 오른쪽으로 양분해 나누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알래스카 부근에서 한번, 그 아래 알류샨 열도 근처에서 다시 한번 꺾인 후 곧게 내려오다가 다시 오세아니아 부근에서 삐뚤빼뚤합니다. 날짜를 변경하기 위해 일부러 그어 놓은 경계선은 지구 자전에 따른 ‘시차’를 고려하기 위한 것이며, 직선이 아닌 삐뚤빼뚤한 모습은 섬과 육지를 피해서 그렸기 때문이랍니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위세를 떨치던, 세계의 중심이었던 1873년 바다에 가상의 줄을 긋고 날짜 변경선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직선이었다가 같은 나라가 다른 날짜로 생활할 수는 없어 편의상 섬과 육지를 피해 구불구불 선이 꺾어지게 되었답니다. 전 세계를 24시간으로 나누고 영국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12시간, 왼쪽으로 12시간을 구분하여 각 국가별로 시차를 적용하므로 하루가 통째로 없어지거나 반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시간은 우리 삶에서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가 통째로 사라진다면, 그 공평함도 상대적인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시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로 측정되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흐릅니다. 주관적인 시간은 우리의 감정과 경험에 따라 느껴지는 속도가 달라집니다. 즐거운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지루하거나 힘든 순간은 한없이 길게 느껴지지요.



고대 그리스에는 시간을 의미가 두 가지 개념,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됩니다. 크로노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객관적(물리적) 시간으로, 초와 분, 시간 단위로 흐르며 숫자로 기록되는 시간입니다. 반면 카이로스는 우리가 경험하는 순간의 질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가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면, 카이로스는 우리의 삶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순간들로 이루어집니다. 날짜변경선을 넘어가며 하루를 잃었다는 것은 크로노스의 관점에서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카이로스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날짜변경선을 넘으며 잃어버린 하루는 정말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우리의 인식에서 빠져나간 것일까요?



이 질문을 떠올릴 때, 폴란드 화가 로만 오팔카(Roman Opalka, 1931~2011)의 작업이 떠올랐습니다. 오팔카의 작업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크로노스를 기록하면서도, 그 과정을 통해 카이로스를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폴란드 출신의 예술가 로만 오팔카(Roman Opalka, 1931~2011)는 시간의 현상을 숫자로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시간을 시각화하고 자신의 존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실존의 기록을 한 개념주의 화가입니다. 그의 나이 34살인 1965년부터 로만 오팔카는 바르샤바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검은 바탕에 흰 물감으로 숫자를 빼곡히 적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숫자 1부터 순서대로, 붓에 듬뿍 찍은 물감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적은 뒤 물감을 찍어 또 적었습니다. 1972년부터 그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매일 딱 한 장씩. 작업실에 스스로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놓고, 거기 그 자리에 흰 셔츠를 입고 매일같이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는 “내가 뭘 하든 늘 시간은 간다. 그 시간이라는 나쁜 놈을 한 묶음으로 잡아두고 싶어서 나는 숫자를 적고 사진을 찍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만 오팔카.png



그는 숫자를 쓰는 행위를 반복하며 "나는 단순히 숫자를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삶을 기록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숫자는 단순한 크로노스의 흔적이 아니라, 오팔카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카이로스의 증거가 되는 것이지요.




사진 출처 DailyArt Magazine.png





작업 사진출처 DailyArt Magazine.png

사진 출처 : DailyArt Magazine




말년의 화가는, “우리 삶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시간이 죽음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단순하고 의미 없을지도. … 내가 죽어서 더는 숫자를 쓸 수 없게 될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첫 붓질을 했을 때, 이미 작품은 완성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에서 ‘끝’을 내다봤으니까.”라고 회고했습니다. 로만 오팔카가 젊은 날 세운 목표치는 7777777이었습니다만 마지막 캔버스에 적힌 최후의 수는 5,607,249였습니다. 구도자처럼 시간과 숫자에 자신의 삶과 예술을 녹여낸 그의 작업은 하루가 없어진 날짜변경선을 맞이하면서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하루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고, 기억은 지속됩니다. 하지만 시간의 개념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팔카의 숫자들이 가진 의미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우리가 날짜변경선을 넘으며 사라진 하루를 떠올릴 때, 그것은 단순한 시간의 손실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성찰의 순간이 됩니다. 오팔카가 그린 숫자들처럼, 우리도 사라진 하루를 기억 속에서 계속 써 내려가며 시간을 채워갑니다.


8월 12일이 없어지니, 크루즈 선사에서는 8월 12일이 생일인 승객들을 위해 파티를 열어주는군요. 우리한테는 없어진 8월 12일 대신하여 날짜 변경선을 통과했다는 증서와 함께 적도(Equator)를 통과했다는 증서를 주었습니다. 하루 더 빨리 늙어버린 시간을 갖게 된 우리들을 위로하는 증서가 될까요?


최승호 시인의 시를 <하루로 가는 길>을 읊어보며 잃어버린 하루를 보냅니다.


“하루로 가는 길은

하루를 지나야 하는 법

어제에서 오늘로 오기까지

나는 스물네 시간을 살아야 했다

1분만 안 살아도 끝장나는 인생


하루로 가는 길은

낮과 밤을 지나야 하는 법

어제에서 오늘로 오기까지

나는 소음을 거쳐야 했다


메마른 밤, 오늘의 갈증이

내일 해소된다고 믿으면서

참아낸 하루, 하지만 물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는 낙타처럼

오늘의 짐을 또 내일 짊어져야 한다


발걸음은 계속된다. 하루로 가는 길에서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법

하루에 완성되는 인생도 없지만

아무튼 죽음이 모든 하루를 마무리하고

수평 위로 뜨는 해를 보며

오늘은 숨 크게 밝은 하루를 누려야 한다”



갑판 위에서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해는 완전히 지고, 바닷물 위로 달빛이 은은하게 비칩니다. 잃어버린 하루를 되찾을 수는 없지만, 그 하루가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숫자로 세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루를 잃었느냐가 아니라, 남은 날들을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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