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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날더러........

by 윤재

40 하늘은 날더러...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신경림 시인의 <목계 장터>를 읽던 중

시선을 돌리니,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의 펼쳐진 한 페이지에 가 닿습니다.

그곳은 최지인 시인의 <마카벨리 전(傳)>이네요.



마카벨리 전(傳)


최지인



1

그는 깃발에 적었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물려준 혐오가 모두를 망친다


......(중략)....



5

가난한 사람이든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든 고난을 피할 순 없다

빈민가에서 자란 아이들은 철 지난 옷을 입고 놀이터에서 논다

흙을 잔뜩 묻히고 얼룩이 될 때까지 논다

그러다가 아무도 모르게 인생이 꼬이고 사랑을 하고

결국 시를 끄적이는 것이다


새 삶을 살고 싶다고 흥얼대는 취객처럼

그는 자기가 진짜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서서히 밝아지고


세상을 바꾸겠다, 얘기하면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는 집에서 담배를 태웠고 문틈에 꽂힌 독촉장을 찢었다

일을 구하려고 애썼으나 실패했고 죽으려고 했으나 두려웠다

골방과 거리를 오가면서 확신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중략)...



8

힘없는 자들이

입안에 독한 술을 털어 넣고

가장 아끼는 것을 박살 냈다




9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부랑자였다


그는 정당한 보수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평생 일했다


결과가 어찌 됐건

그것은 왜곡되었다


형제들의 뒤통수는 하나같이

묵사발이 되었다




0

지난 태풍과 달리

이번 것은 별 피해 없이 지나갈 것이다


--신경림 외 지음,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창비시선 500 특별시선집, 2024 중에서



최지인 시인은 1990년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나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제10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을 수혜하고 2022년 제40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등이 있으며, 창작 동인 ‘뿔’과 창작 집단 ‘unlook’에서 활동 중입니다.


‘제40회 신동엽 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동시대 청년들의 고단한 삶의 비애와 항의를 독특한 다변(多辯)의 시적 어법과 리듬”으로 담아냈다고 평가했습니다.


최지인 시인의 시 <마카벨리 전(傳)>은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이들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현실의 부조리함과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개인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독자로 하여금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시의 초반부에서 등장하는 문장은 강렬합니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물려준 혐오가 모두를 망친다.”라는 구절은 세대 간의 고착된 편견과 사회적 불평등이 어떻게 후손들에게 병리적일 수 있는지를 진단합니다. 시인의 염려가 단지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파장과 영향력의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백수저와 흑수저의 대결이 인기를 끌었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가 누구이든 우리는 이들이 삶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표현하려 애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시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그들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시의 중반부에서는 ‘그’가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치지만,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지는군요. 이는 사회가 약자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가볍게 여겨지고 희화화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그는 담배를 태우고 독촉장을 찢으며, 삶의 무게에 짓눌립니다.



8절과 9절에서는 힘없는 자들의 고통과 희생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힘없는 자들이 / 입안에 독한 술을 털어 넣고 / 가장 아끼는 것을 박살 냈다”는 표현은 절망의 끝자락에서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아버지는 부랑자였다”라는 고백은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한 개인의 삶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정당한 보수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 평생 일했다”라는 구절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태풍을 언급합니다. “지난 태풍과 달리 / 이번 것은 별 피해 없이 지나갈 것이다”라는 문장은 현실의 고통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존재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풍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는 단순히 개인의 비극을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카벨리 전(傳)>은 질문을 던지는군요.

잘 듣고 있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구름도 바람도 되지 못한 오늘,

부끄러움에 말을 닫습니다.

구름이 전하는, 바람이 전하는 소식들이 힘들어 한숨을 쉴 때,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 학교』 중에 나오는 <한숨의 크기> 구절을 상기하며

마음 크기를 키워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냇물 흐린다지만,

그 미꾸라지를 억수로 키우면 돈다발이 되는 법이여.

근심이니 상심이니 하는 것도 한두 가지일 때는 흙탕물이 일지만

이런 게 인생이다 다잡으면, 마음 어둑어둑해지는 게 편해야.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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